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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하여 통치하라, 성녀와 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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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워마드발 #나는창녀다 프로젝트가 최근 며칠 동안 화제였다. 이 프로젝트가 남자들이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여성을 (성녀가 아닌) 창녀라고 멸시하는 실태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창녀' 라는 단어가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어느 한 쪽도 완전히 틀렸거나 무의미하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창녀다 해시태그에 호의적이든 비판적이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삶의 맥락에서 다양한 현실 인식을 갖고 본인의 주장을 정리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이 중요한 논의는 아직도 온오프라인 곳곳에서 계속 진행 중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너희들' 은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창녀'라고 하느냐" 라거나, "'너희들' 은 '성매매 산업' 에 종사하고 있지 않으니 스스로를 '창녀'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 는 말을 꺼내는 순간, 논의는 소모적인 싸움으로 전락한다.

우에노 치즈코는 저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녀는 '창녀 취급하지 말라'며 창녀에 대한 멸시를 드러내고 창녀는 '양가집 부녀자'와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직업 부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을 통해 '아마추어 여성'의 의존성과 무력함을 비웃게 되는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p.57

남성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두 측면으로 나누어 착취하는데, 그 두 가지는 생식과 쾌락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같은 책에서 "실제 살아있는 여성에게는 몸도 마음도 그리고 자궁도 보지도 달려 있지만, '생식용 여성'은 쾌락을 빼앗긴 채 생식의 영역으로 소외되고 '쾌락용 여성'은 쾌락에 특화되어 생식으로부터 소외된다"(p.53)고 말한다. 여성을 '생식용'과 '쾌락용'으로 분할하여 착취하는 시스템은 성녀는 창녀를, 창녀는 성녀를 혐오하게 만든다. 남자의 눈앞에서 서로를 혐오함으로써 자신이 '생식용' 혹은 '쾌락용' 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는창녀다 운동이 성공적인지, 애초에 이 집단행동이 '운동'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점에 '창녀' 라는 단어를 대체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창녀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는 성산업 종사자를 타자화하는 말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동안 오로지 남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숱하게 창녀라고 불려왔던 경험에 따르면, 창녀라는 단어는 일종의 백지 답안 같은 느낌이다. 마치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가 되는 것처럼. 남성들 사이에서는 '창녀' 는 성을 판매하는 여성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호칭이며, 그 호칭을 이용해 남성의 젠더 권력을 위협하는 여성을 경멸-징벌한다는 룰이 굳건한 것 같다. 그런데 여자 입장에서 볼 땐 도대체 남자들이 말하는 '창녀' 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안 오는 것이다.

한국 남자들에게 여자는 돈을 많이 벌어도 창녀, 적게 벌어도 창녀다. 특정 브랜드의 옷이나 화장품을 사용하면 창녀이고, 오피스텔에 혼자 살면 창녀이며, 입술을 빨갛게 하면 창녀다. 손톱을 기르면, 문신을 하면, 메갈리아 사이트를 이용하면, 직업이 '경리' 이거나 '보육교사' 이거나 '간호조무사' 면, DSLR을 이용하면, 패밀리레스토랑을 자주 가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외제차를 몰거나 명품백을 들면 모두 창녀다. 그뿐인가. 직장에서 치마를 입고 '남자를 유혹하면', 몰카를 찍히거나 성범죄를 당해도, 남자들은 여자를 창녀라고 부른다. 실제로 성판매자든 아니든, 그냥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전부 '창녀'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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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더러 '아다창녀' 라고 (나름대로)욕을 한 사례는 유명하다

남성의 입으로부터 '창녀'라는 단어가 발화될 때, 정말 성판매하는 여성만을 경멸하는 효과를 가진다면 왜 남성은 가시적으로 성판매 행위가 드러나지 않는 여성에게도 '창녀' 라고 부르는 것일까. 남자들이 생각하는 '성판매'의 범위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창녀' 라고 낙인 찍는 것은 젠더 권력의 기득권인 남성이 젠더 위계의 약자인 여성에게 내리는 최고의 형벌이다. '창녀' 낙인이 찍힌 여성은 공동체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젠더 폭력을 문자 그대로 '온몸으로'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한 여성을 '창녀'로 낙인 찍는 과정에서 그가 실제로 성판매자인지 아닌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성판매 행위는 '멸시당해도 싼 것' 이 아니라는 주장, 즉 창녀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성판매자를 멸시하지 말라는 주장은 그러므로, 매우 온당하지만, #나는창녀다 프로젝트와는 논점이 살짝 다르다. 여기서는 누군가를 '창녀'라고 규정하는 행위 자체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휘두르는 젠더 권력이고 폭력이라는 점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직접적으로 성판매에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남성 사회 속에서 낙인 찍히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 노력에는 분명 성녀로서 '창녀'를, 혹은 창녀로서 '성녀'를 혐오하는 과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본인이 생식용 여성/쾌락용 여성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나는창녀다 해시태그는 남성이 여성에게 강제하는 프레임이 얼마나 황당한 동시에 섬뜩한지를 증언하는 말이며, 이제는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 고통스러운 '증명의 몸부림'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선언이다. 샤넬 립스틱을 썼다는 이유로 (자기가 볼 때) 성판매자(라고 판단되는 여자)를 멸시하는데 사용되는 호칭을 이용하여 (자기가 볼 때) 성판매자가 아닌 여자(라고 판단되는 여자)를 모욕-징벌하려는 시도, 즉 지가 남자랍시고 여성을 '분할하여 통치하려는' 시도는, 정말이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같잖은지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비록 과정의 미숙함은 있었고, 아직도 비판의 여지가 남아있는 부분은 있지만, #나는창녀다 해시태그는 '개념녀' 찬양과 '김치녀' 사냥에 질식하기 직전이었던 한국 여성들이 성녀나 창녀나 똑같이 혐오당하는 여성들이라는 걸 깨달았음을 보여준다. 각자 다른 경험을 고백했지만 여성들이 보내는 메시지의 핵심은 명확하다. 분할하지 말라. 감히 통치하려 들지 말라. 누군가를 창녀라고 규정하기 전에, 창녀라고 규정된 존재를 멸시하기 전에, 여성들에게 성녀-창녀 이분법을 들이대는 그 오만함부터 돌아보라.

글쓴이: Shyvon

* 이 글은 <페미디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