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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 앞의 프리네와 방청객 앞의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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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19세기 프랑스의 살롱 화가인 장 레옹 제롬의 1861년 작품 <판사들 앞의 프리네>이다. 프리네의 아름답고 완벽한 몸매는 아테네의 유명한 조각가와 화가들 사이에서 미의 여신 비너스의 모델이 되곤 했다. 외모뿐 아니라 지성도 겸비하여 사상가나 철학가와도 말이 통하는 똑똑한 여자였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즐거움을 누리며 살았다.

그런 그녀가 법정에 서게 된 건, 그녀를 '소유'하지 못하게 된 도덕주의자 에우티아스의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그녀의 나체를 십자가에 매달게 되더라도 '내가 갖지 못한다면 남도 주지 못한다'는 결심을 하였고, 포세이돈을 기리는 제례에서 '바다의 신 아프로디테'의 모델이 되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이라며 고발하였다. 그녀는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그녀의 변호를 자처한 그녀의 전 애인이자 웅변가인 히피리데스는 '프리네는 아름다우니 선처해달라'며, 심판관들 앞에서 그녀의 옷을 벗겨버렸다. 프리네는 얼굴을 가렸고, 그녀의 알몸을 본 심판관들은 그 황홀한 모습에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경죄이다", "저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다. 신의 의지에 감히 인간의 법을 적용시킬 수 없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선하다" 라고 자책하며 무죄를 판결하기에 이른다.

여자는 예쁘면 '무죄'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생존 경쟁을 한다. 특히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여자는 예뻐야 해'라는 억압은, 여성들에게만 불공정한 '외모'의 짐을 더한다. 사회는 확고한 미의 기준을 가지고 있고, 이 기준에 따라 여성의 외모에 서열을 매긴다. 기준에 부합하는 여성에게만 '인간' 대우를 해주고, 그렇지 못한 여성에게는 가차 없이 차별과 멸시가 뒤따른다. 실제로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는 그렇지 않은 여자보다 연봉이 5~10%가 높다고 한다.

왜 사회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도대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넌 참 예뻐"라는 말이 왜 칭찬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상대방으로부터 '예쁘다' 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이미 내가 사회적, 혹은 타인의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불공정한 평가에 쏟아내고 싶은 질문, 아니, 항의가 많다. 왜 내가 타인으로부터 평가받아야 하는가. 왜 평가의 기준은 외모인가. 왜 여성에게만 외모의 아름다움을 평가 기준으로 내미는가. 왜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능력과 성과는 모두 뒷전인 채 외모로만 평가당해야 하는가. 왜 남성들과 사회는 나는 설정에 참여한 적도 없는 기준을 나에게 들이미는가.

이 항의는 모든 여성들의 입에서 유효하다. 어느 누구도 남에게 멋대로 '평가'받는 것을 달가워할리 없다. "사회적 기준/내 기준에서 봤을 때 넌 정말 이뻐. 칭찬이야"라는 말에 여성들이 거부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은 외모와 관련하여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혹하게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 '예쁘다' 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여성에게 강요되어 왔던 프레임을 덧씌우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권력도 경쟁력도 아니며, 우리는 이를 강요하는 프레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잘먹는 소녀들>과 '창녀 프리네'는 누가 만들었나?

최근 논란이 된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JTBC의 <잘 먹는 소녀들>이다.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방식은 이러하다. 여자아이돌 두 명이 나와서 마주 보고 앉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야식을 가져다 놓고, 자신이 이 야식을 좋아하는 이유나 사연을 말한다. 그것이 그녀들은 자신들이 카메라와 방청객들 앞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녀들 주위에는 MC 3명과 수많은 방청객들이 둥그렇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경쟁이 시작되면, 10분 동안 그녀들은 그 수많은 방청객들의 시선과 평가를 들으며 '맛있게' 먹어야 한다. 이 방송은 텔레비전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까지 된다. 따라서 스튜디오 안에 있는 방청객뿐 아니라 인터넷에 접속한 수천수만 개의 눈이 그녀들의 식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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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된 JTBC <잘 먹는 소녀들>

그녀들은 먹으면서 카메라에 얼굴이 잡힐 때마다 애교를 부린다든지, '귀여운' 리액션과 함께 대사를 쳐줘야 한다. 그래야 표를 얻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평가단이 외치는 '맛있게 먹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탕수육 하나를 먹어도, 자신이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없다. 부어 먹는 것과 찍어 먹는 것을 모두 만족시켜주기 위해 한 번은 찍어 먹고 나머지는 부어 먹는다. "짜장면에 만두를 말아서 먹어!" 라는 훈수에 또 그렇게 먹는다. 그제서야 "그렇지, 먹을 줄 아네!" 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제대로 먹은' 여자 아이돌은, 카메라에 "만두야 짜장해~" 하며 애교를 부린다. 애교를 부리자 여기저기서 칭찬과 감탄 세례가 터져 나오며 '귀여워하는 표정'의 방청객이나 연예인의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예뻐야 하고,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은 것이 맞는지 걱정이 될 정도로 빼짝 말라야 하고, 가수니까 노래도 잘 해야 하고, 춤도 잘 춰야 하고, 개인기도 애교도 있어야 하고... 이미 한계치에 다다를 정도로 많은 것을 강요당하는 여자 아이돌들이 이제는 음식을 섭취하는 모습과 방법까지 강요당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지만, 실제 촬영시간이 4시간 가까이 된다. 그동안 그녀들은 수백 개의 눈 앞에서 쉼 없이 계속해서 먹어야 하고, 훈수질에 평가까지 당한다. 무섭고 이상하다 못해 기괴하다.

<잘 먹는 소녀들>은 인터넷 방송에서 시작되어 텔레비전 방송으로 넘어오면서 열풍을 일으킨 '먹방'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전의 다른 '먹방'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전의 먹방이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요리하는 법, 재료의 맛을 살리는 법, 장인들의 요리 대결, 전국 맛집 정보 등등 지식과 더불어 먹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방송이었다면, <잘 먹는 소녀들>은 도대체 시청자들과 무엇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여기서 <판사들 앞의 프리네>를 다시 보자. 프리네는 남자들의 기준에 의해 '창녀'가 되었고, 한 남자의 소유욕으로 인해 사형을 당할 위기에까지 처하게 된다. 전 애인인 히피리데스는 남자로서 판사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프리네의 몸을 이용한다. 이는 같은 남자인 판사들과의 '남성 연대' 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자들에 의해 그녀의 몸은 철저히 이용당했다. 그리고 남자들의 기준에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었던 프리네는 또 다시 남자들의 기준에 의해 '무죄' 가 되었다.

<잘 먹는 소녀들> 에 출연하는 잘 먹는 소녀들과 프리네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남자들, 혹은 남성 중심 사회의 기준에 의해 먹는 모습을 평가당해야 하는 저 여자 아이돌들과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오로지 남자들의 기준에 의해 법정에 서고 남자들의 기준에 의해 무죄가 된 프리네는 무엇이 다른가? 오로지 '눈호강'을 위해 잘 먹는 여자 아이돌들의 모습을 관음하는 것과 프리네의 몸을 관음하는 것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잘 먹는 소녀들>은 기괴하다.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소녀가 잘 먹는 것이 기괴한 게 아니라, 모두들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소녀가 내 눈에 예쁘게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이 기괴하다. 여성의 모습이 남자의 기준에 예쁘면 숭배하고 그렇지 않으면 멸시하는 것은 프리네가 살았던 시공간과 여자 아이돌들이 살고 있는 시공간에 똑같이 적용된다. 즉, 외모를 통해 여성을 성녀-창녀로 나누는 것은 아주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인 것이다. <잘 먹는 소녀들>은 이 오래된 여성 혐오를 아주 기괴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프리네의 인권이 판사들 앞에서 맨몸으로 유린당한 것처럼, 여자 아이돌들의 인권이 방송을 통해 수많은 관람객들 앞에서 전시되고 있다.

*참고문헌: 유혜선의 인문학 살롱 -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글쓴이: 고예성

편집자: Shyvon

* 이 글은 <페미디아>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