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배은지 Headshot

1년 만에 카페 문을 닫으며 | 만인의 꿈, 카페 운영의 시작과 끝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2017-04-03-1491194486-3386235-qpdms2.PNG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나의 카페 셜록


딱 작년 오늘, 카페를 오픈했다. 그리고 1년뒤 카페를 접었다.
이제 다음주면 사라질 카페셜록 1주년 톺아보기.

사무실 겸 카페는 나의 로망

사무실 겸 카페는 나의 로망이었다. 8평짜리 원룸에서 사무실을 구할 수 있는 보증금이 모이자마자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카페셜록이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70만원,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꽤 괜찮은 18평짜리 1층 부지를 권리금 없이 사무실로 쓰게 되면서 카페 운영의 꿈이 스멀스멀 올라왔었더랬다. 15평짜리도 월세 100만원이 넘는 강남 / 홍대 사무실을 생각하면 무척 저렴한 조건의 1층 사무실이었다. 그리고 인테리어도 어딜 가든 어차피 할 거였다. 월세가 80만원, 카페로 운영해도 월세 50만원은 충당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엔 정말 잃을 게 없었기에. 그래서 더, 별로 고민 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가난하면 그냥 다 본인이 하면 된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나는 가난해서 카페 인테리어를 거의 셀프로 했다. 실구입비에 핵심 인부들까지 2천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카페 인테리어를 했다. 페인트칠, 사포질, 재료구입, 그외 등등 모두 셀프로 했다. 당장 나가는 인건비는 아꼈지만 병원비가 늘었다. 인테리어 비용은 인건비와 같은 말이었다. 내가 인테리어를 하면서 포기한 워킹 타임, 나의 인건비, 무료로 제공된 나의 남편 인건비, 친한 동생들의 인건비.. 등을 생각하면 인테리어 인건비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맡길걸..ㅠㅠ)

작년 이맘 때 셀프 인테리어가 한참 이슈였는데, 나는 카페 인테리어를 하면서 다시는 셀프 인테리어를 꿈꾸지 않기로 했다. 전문가에게 마땅한 노동비를 지불하고 맞기기로 했달까. 그게 시간도, 돈도, 내 체력도 아끼는 지름길이다. 세상의 모든 마스터님들 존경합니다.

2017-04-03-1491194710-3661823-qpdms3.jpg


업의 본질을 생각하다.

1. 커피의 세계

커피를 배웠다. 커피는 맛, 향, 압력의 조화가 이뤄낸 하나의 예술이었다. 만성비염에 향을 못맡고 요리에도 잼병인 나는 커피를 잘 못 내렸다. 자연스럽게 개코에 후각이 예민한 다른 동업자가 커피 부분을 맡게 됐다. 커피장인들이 왜 자부심을 갖는지 알았다.

카페를 차린 건, 커피가 고부가가치 물장사라고 생각했었기 때문도 있었다. 원가 대비 판매가를 생각하면 기본 2배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인테리어비에 인건비까지 계산해보면 하루에 100잔 이상 테이크아웃으로 팔리는 곳이 아니면 본전도 못 건지는 것이 커피장사다. 판매가가 최저임금보다 평균 2.5배 정도 낮기 때문에, 한 시간에 최소 3잔은 팔아야 본전이라는 얘기다. 우리 카페의 손님은 평균 30명정도. 커피가 마진율이 높아도, 가격이 높지 않다면 박리다매 상품과 다를 바가 없다. 싸게 많이 팔 것이냐, 비싸고 여유 있게 팔 것이냐. 그걸 정하는 건 사장의 몫이었다.
(나는 신길동 주거지역에서 장사해 아메리카노 2500원에 팔았다. 목표가 월세 회수였기 때문에 부담없이 정한 가격이었지만, 예상대로 수익적인 면에서는 큰 실패였다.)


2. 가게의 본질을 경외하다.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는 디지털노마드는 내가 꿈꾸던 삶이었다. 그 꿈이 박살 나는 데에는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직접 내려 마시는 커피는 일부였고, 주된 업무는 설거지, 쓸고 닦기, 청소하기, 광내기, 재고체크하기, 손님 응대 등의 '서비스'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세상의 모든 요식업 사장님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가게에서 운영시간은 핵심이다. 오픈시간과 마감시간이 늘 일정해야 꾸준히 찾아오는 손님과 묵언의 약속을 할 수 있다. 이건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런데 나는 카페사장 감투를 쓴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이 나의 카페운영목적의 본질이어서, 오픈 시간도 내맘대로, 마감시간도 내맘대로 했다. 특히 해외, 제주도 출장이 많은 시즌에는 아예 일주일간 닫기도 했다. 딱히 맛집도 아닌데 들쭉날쭉 운영시간을 가진 카페를 여유 있게 방문할 단골은 없었다. 내가 원하면 문 열고, 가끔 친구들이 방문하고, 문 닫고 파티도 하는 그런 개인적인 의미의 공간으로서는 성공했지만 동네카페의 본질적인 기능은 상실하게 된 셈이다.

2017-04-03-1491194782-7689759-qpdms3.PNG


3. 맛, 그리고 지구력

꾸준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가게의 본질. 맛집이 맛집인 이유는 그 자리에서 '똑같은 맛'을 몇 년 째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 줄 가게를 하면서 알았다. 커피 원두도 살아 있어서, 상태가 매일 다르고 공기나 날씨 환경도 매일 달라져서 맛도 매일 달라진다. 본업이 광고홍보업이던 우리는, 노동력에 대한 퀄리티, 아이디어에 대한 수준에 대해서는 자신 있었지만, 요식업은 달랐다. 똑같은 맛을 꾸준히 내는 것 자체가 챌린지였다.

또,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나는 카페인에 매일 절어있었다. 카페의 첫 업무는 '그날의 커피 맛'을 정하는 분쇄도를 맞추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3~4잔의 커피는 마셔야 일정 수준의 맛을 낼 수 있다. 주로 그 간잽이는 나였는데(커피를 잘 못 내려서), 항상 아침마다 3~4잔의 커피를 매일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만성 두통과 오한에 시달리게 되었다. 눈이 항상 빨갛기도 했다. 쉬는 날에는 웬만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언젠가 신길동 매운짬뽕 사장님에게 너무 매워서 이거 맨날 드시냐고 화를 낸 적이 있다. "나는 진라면도 순한 맛만 먹어~" 라고 사장님이 대답해주셨는데, 그땐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 달 만에 커피가 질려버린 나를 보며, 그 사장님의 마음을 떠올렸다.


4. 원래 운영하던 본업에 대한 환기

사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잘 되면 광고홍보업을 때려치우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비겁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첫 달에는 하루에 50잔이 넘게 팔리면서, 진짜 대박이 날 것인가. 나면 어떻게 하나, 라는 걱정도 했지만, 이 생각은 금세 박살 났다. 우리 카페 아메리카노 가격은 2500원, 50잔을 팔면 125,000원 정도. 하지만 내가 원래하던 본업의 광고홍보일의 매출은 그 당시 6개월 만에 3억 매출을 냈는데... 오히려 광고홍보업이 천직임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달까. (지금은 매일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굳이 이 말을 쓰는 이유는 카페가 망했다고 동정받기 싫어서이니 동정하지 마시라ㅋㅋㅋㅋㅋㅋ!!!!!!)

요식업은 기다리고 정성을 다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업종. 앞서 말한 것 처럼 지구력이 많이 필요한 편인데, 나는 지구력보다는 순발력이 필요한 업종에 더 맞는 사람이란 걸 가게를 운영하면서 알았다. 오히려 원래 권태기였던 광고 홍보업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달까.

카페를 운영할 때에도, 나는 우리 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머그잔(아래 사진 커피잔)을 만들거나, 조명, 인테리어를 하는 일, 카페를 꾸미고 홍보하는 일에 더 재미를 느꼈다. 천상 광고인이란 걸 새삼 깨달았달까.


2017-04-03-1491194750-7412690-qpdms1.PNG


5. 서비스 업종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 장착

생각보다 나는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카페는 매번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해야만 하는데, 나는 공평하게 모든 이에게 그럴 수 없었다. 진상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친절한 손님'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 뒤로 카페나 어딜 가든 너무 친절하지 않으려 애쓴다.


시작하는 건 쉬워도 끝내는 건 어렵다

1년 만에 카페를 완전히 접기로 한 건 온전히 '책임감'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오토'(주인은 개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 위주로 운영)로 돌아가게 하면, 카페를 운영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성격상 오토는 허락하기 쉽지 않았다. '영혼 없는 커피를 팔면서까지 해야 하나'의 근본적인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무실 겸 카페'가 동기였는데 '카페'가 메인이 되면서 생긴 고민이다. 처음 생각한 사무실 겸 카페에서의, 본질은 '사무실'. 그래서 본업이 기본인 '사무실'을 따로 구하는 것으로 고민 하나는 덜었다.

주객전도를 바로잡기 위해 부동산에 가게부터 내놓았다. 소위 인테리어비인 시설비, 가게 권리금도 붙이지 않은 터라 바로 나갈 줄 알았는데,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나가지 않았다. 이제부터 보증금이 까이는 시기랄까 ㅠㅠ 해보지 않았을 땐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오히려 더 큰 고민이 됐다.

나영석pd의 〈윤식당〉이 매력적인 이유는 '현실이 아니라 잠깐 재미로 운영하는 식당'이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 되면 이야기는 다르다. 아직도 카페는 나가지 않았다. 이번달부터는 본격적으로 문을 닫을 예정이다. 완전한 실패를 선언한다. 누군가 카페를 생각하거나 '사무실 겸 ㅇㅇ'를 생각한다면 나를 떠올리시라. 끝내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 흙.ㅠ

그래도 해봐서, 후회는 없어서, 낭만적인 시간들이었다. 회사 대표 타이틀보다 카페 사장이란 감투를 더 좋아했던 우리 엄마, 카페 운영한다니까 다육이 사들고 오던 친구들, 카페 오면 자동으로 무급 알바로 일해주던 언니 동생들, 작은 공간이지만 좋아해주던 클라이언트, 미팅 손님들... 은 아주 좋은 추억으로 평생 간직하며 살겠다.

카페셜록, 이제 안녕!


(*신길동 도신로53길 15, 1층 권리금 없음, 보증금 3000에 월세 80 관심 있는 분들 연락 부탁드려요ㅋㅋ*)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3월 29일 실린 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