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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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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憂國)」,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 주우(主友) 세계문학20, 주식회사 주우, P.233. (1983년 1월 25일 초판 인쇄, 1983년 1월 30일 초판 발행.)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창작과비평사, P.240-241. (1996년 9월 25일 초판 발행, 이후 2005년 8월1일 동일한 출판사로서 이름을 줄여 개명한 '창비'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로 소설집 제목만 바꾸어 재출간됨.)


자, 이제 눈을 감고, 내가 말하는 장면을 각자의 머릿속에 그려보자. 대한민국 최고의 유명, 유력 소설가 신경숙은 문단의 까마득한 선배인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일본의 대표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주우 세계문학 전집 제20권)에서 단편소설 「우국(憂國)」의 한 부분을 가만히 펼쳤다. 이어 신경숙은 자신이 청탁을 받아쓰고 있는 중인 단편소설 「전설」의 원고에 「우국(憂國)」의 그 한 부분을 거의 그대로 옮겨 타이핑한다. 이 원고는 1994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실린 뒤 1996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에 대한 표절로 저렇게 적발되고 있는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분은, 한 소설가가 '어떤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설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 '소설이 아닌 문건자료'의 내용을 '소설적 지문(地文)'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활용하는 등'의 이른바 '소설화(小說化) 작업'의 결과가 절대 아니다. 저것은 순전히 '다른 소설가'의 저작권이 엄연한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 넣어 위장하는', 그야말로 한 일반인으로서도 그러려니와, 하물며 한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인 것이다.

특히, 과연 경륜 있는 시인답게 김후란은, 1996년 6월 30일 초판이 발행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제2권 '죽음의 미학' 편에 실린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에서는 "한 달이 채 될까 말까 할 때, 레이꼬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라고 번역된 부분에서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라는 밋밋한 표현을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라는 유려한 표현으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언어조합은 가령, '추억의 속도' 같은 지극히 시적인 표현으로서 누군가가 어디에서 우연히 보고 들은 것을 실수로 적어서는 결코 발화될 수가 없는 차원의,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도용(盜用)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인 것이다.

만약 신경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 적다보니 시인 김후란 번역의 「우국(憂國)」 속 저 부분을 표절한 「전설」의 그 부분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 거라고 주장하려면, 가령, 자신의 집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밤 태풍이 몰아쳤고 이튿날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그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모양으로 간밤 비바람에 깎여 있더라는 해괴한 어불성설을 명쾌한 사실로 증명해내야만 할 것이다.

원래 신경숙은 표절시비가 매우 잦은 작가다.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은 고인의 부친 안창식이 쓴 것인데 이를 신경숙이 자신의 소설 「딸기밭」에 모두 여섯 문단에 걸쳐 완전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장으로 무단 사용한 것1)이나,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소설 「작별 인사」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 속 문장과 모티프와 분위기 들을 표절했다는 고발2) 등등은 필경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표절한 것과 비슷하거나 같은 노릇을 여기저기서 상습으로 일삼던 와중에 흩뿌려진 흔적과 증거 들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우리는, 신경숙이 미사마 유키오를 표절한 저 방식으로 다른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많이 표절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의심'을 충분히 품을 수 있다. 예리한 독서가들 여럿이 작정하고 장기간 들러붙어 신경숙의 모든 소설들을 전수조사(全數調査)해보면 위와 같은 사례들은 얼마든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무라카미 류의 유쾌한 장편소설 『69』에는 이런 명언이 나온다. "똥에는 사상이 없다." 표절도 마찬가지다. 표절은 '똥'이다. 똥에 사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듯 표절에는 사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문단에서는 그런 문학적 야만이 버젓이 벌어졌다. 그래서 신경숙의 '표절'은 그저 '치워버리면 끝이 나는 똥'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치명적인 상처'가 돼버렸던 것이다.

소설가 신경숙은 시인인 나보다 5년 정도 문단에 먼저 나왔다. 우리는 20세기의 끄트머리에서 한국문단 생활을 함께 시작한 셈이다. 그러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문인들의 표절에 대한 염결함이 유독 신경숙에게만 무감각하거나 다르게 해석될 리 만무하다. 본시 한국문단은 요즘처럼 표절에 관해 널널한 입장을 취하는 그런 개념 없는 동네가 절대 아니었다. 가령, 어느 밤 동료 문인과 단 둘이 술자리를 갖다가 그에게서 어떤 흥미로운 경험담을 들었을 때 다음날 아침 술이 덜 깬 상태에서조차 그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어젯밤 내게 말했던 그 이야기를 내가 내 시나 소설에 써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는 정도가 내가 데뷔하던 당시 우리 한국문단의 표절에 대한 경계(警戒)의 수준이었으니, 공적인 자리나 매체에서의 표절에 대한 엄격함이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가령 소설가 이인화처럼 표절과 페스티쉬(혼성모방)의 논쟁들3) 사이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문인이 있었고, 한 번 표절작가로 찍힌다는 것은 문인으로서의 죽음을 은유하는 것을 넘어서 자연인으로서의 자살까지 고려할 만큼 심각한 부끄러움이었음을 나와 나의 문우들은 자명하게 술회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신경숙의 남편(1999년도에 결혼. 신경숙의 표절 시비들은 200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터져 나옴.)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남진우는 하일지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을 표절작가라며 그토록 가혹하게(아아, 정말로 가혹하게!) 몰아세우고 괴롭혔던 것 아니겠는가?4) 참으로 기적적인 것은, 그랬던 그가 자신의 부인인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서는 이제껏 일언반구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나처럼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작가도 당연히 알고 있던 한국문단의 저 호흡 같은 '문학헌법 제1조'를 신경숙처럼 고매하고 대단한 작가가 몰랐다고 우기려면 적어도 그때 신경숙의 문단은 화성에 있었고 신경숙은 화성인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신경숙은 「전설」이 실린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의 제목을 『감자 먹는 사람들』로 바꿔서 재출간했다.5) 절판된 책을 재출간하는 경우도 아닌데 굳이 왜 그랬을까. '오래전 집을 떠날 때'라는 제목이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보다 못생겨서?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은 그 오리지널이 고흐의 그림 제목인데도 왜 굳이? 참으로 요상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신경숙과 같은 극소수의 문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문인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버겁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작가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려는 까닭은 비록 비루한 현실을 헤맬지라도 우리의 문학만큼은 기어코 늠름하고 진실하게 지켜내겠다는 자존심과 신념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빈센트 반 고흐가 광기에 젖어 온갖 패악을 부렸다고 한들 누구도 예술가로서의 그를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흐가 누군가의 그림을 표절 했다면 문제는 사뭇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평생 지독한 성욕에 시달렸던 피카소의 마성(魔性)에 가까운 여성편력을, 마약 과용으로 요절한 바스키아를, 장주네의 도둑질과 비역질을, 가족을 내팽개치고 타히티로 가버린 이기주의자 고갱을, 절친한 친구 부부와 동거하며 그 친구의 부인을 사랑했던 마야코프스키를, 랭보와 베를렌느의 무자비한 퇴폐와 일탈을 예술사가 심판했다는 민망한 소리는 이제껏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으나 만약 저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남의 작품을 표절했다면 지금 우리는 그를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의 범죄자로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예술가에게도 도덕은 있으니, 그것은 '예술에 대한 도덕'인 것이다. 문인이 안하무인일 수는 있다. 그러나 문인이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안하무인일 수 없다. 문인이 범죄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인이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범죄자여선 안 되는 것이다. 종이책마저 사라져가는 21세기 디지털 시대, 문학에 싸늘해진 세상보다 막상 더 섭섭하고 화가 나는 것이 문학인들이 문학을 두고 부끄러운 짓들을 서슴지 않을 때인 까닭 역시 그래서이다.

표절은 시대와 시절에 따라 기준이 변하거나 무뎌지는 '말랑말랑한 관례'가 아니다. 만약 표절에 대한 엄중한 잣대를 무시하고 그 벌을 농락해 지식과 지성과 과학과 문화와 예술 등의 사법체계가 무너지면, 인간과 인간이 공부하고 노동하고 창조하는 모든 것들은 '모럴 헤저드'에 빠져들고 만다. 가장 양심이 없다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마저도 논문표절을 하면 장관이 안 되고 산악 14좌 등반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각되면 그 인정이 취소됨과 동시에 산악인으로서의 명예가 박탈된다. 인기 절정의 대중강연자는 논문표절로 인해 모든 방송 프로그램들에서 일거에 퇴출되고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도 도핑 테스트에 걸리면 평생의 업적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리는 세상이다. 그러나 표절을 저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문단이다. 단, 조건이 있다. 책이 많이 팔린다거나 그것과 음으로 양으로 연관된 문단권력의 비호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설혹 표절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더라도 그저 약간의 소란 아닌 소란을 거쳐 다시 납득할 수 없는 평온으로 되돌아갈 뿐인 것이다. 어느덧 표절에 대한 도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한국의 순수문학 안에서 표절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치밀하게 진행돼 몽롱하게 마무리 된다. 개인적인 표절 말고도, 가령, 거대 출판사의 사장과 편집부가 작가에게 이거 써라 저거 써라 제시하고 조종하다가 유리잔이 엎어져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표절사건이 터지기도 하며 이러한 와중에 자신의 작품을 표절당한 한 신인 소설가는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매장당하기까지 하건만 한국문단의 어느 문인도 시원스럽게 나서서 입장을 표명해 도와주지 않는다. 왜냐. 일종의 '내부 고발자'가 돼버려 자신의 문단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한국문단의 이러한 '표절의 환락가화(歡樂街化)'가 2000년 가을 즈음부터 줄줄이 터져 나왔던 신경숙의 다양한 표절 시비들을 그야말로 그냥 시비로 넘겨버리면서 이윽고 구성되고 체계화된 것임을 또렷이 증언할 수 있다.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한국문단의 '뻔뻔한 시치미'와 '작당하는 은폐'는 그 이후 한국문단이 여러 표절사건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 악행을 고질화, 체질화시킴으로서 한국문학의 참담한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한국문인들은 신경숙의 표절 사실을 알건 모르건 간에 어쨌든 '침묵의 공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문학은 표절을 용인하는 집단이 돼 버린 것이고 한국문인들을 그러한 자괴의 콤플렉스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이는 자결할 기운도 남겨두지 않는 낙담이다. 우리 한국문인들과 한국문학의 독자들은 이제 이 폭압 같은 좌절로부터 기필코 해방돼야 한다. 신경숙의 표절로 인해 한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다른 많은 문인들도 수치심을 느꼈다. 어떤 경로로든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도 수치심을 느꼈다.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까지 문학의 순수함과 숭고함과 엄격함에 대해 감동적으로 설파하곤 하는 신경숙의 모습은 우리에게 극심한 충격과 자책, 한국문학 자체에 대한 환멸을 안겨준다.

신경숙은 단순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다. 신경숙은 한국문학의 당대사 안에서 처세의 달인인 평론가들로부터 상전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으며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등등'의 요인들로 인해 한국문단 최고의 권력이기도 하다. 그러한 신경숙이기에 신경숙이 저지른 표절이 이른바 순수문학에 대해서는 순진할 수밖에 없는 대중, 특히 한 사람의 작가만큼이나 그 개개인이 소중하기 그지없는 한국문학의 애독자들과 날이 갈수록 하루하루가 풍전등화인 한국문학의 본령에 입힌 상처는 그 어떤 뼈아픈 후회보다 더 참담한 것이다.

뿐인가. 신경숙의 소설들은 다양한 언어들로 번역돼 각 외국 현지에서 상업적으로도 일정한 가시적인 성과를 올린 바 있다. 그런데 만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 뉴욕에 알려진다면? 파리에 알려진다면? 영국에 알려진다면? 일본의 문인들이, 일본의 대중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는 감춘다고 감춰질 문제도 아니며, 감추면 감출수록 악취가 만발하게 될 한국문학의 치욕이 우리가 도모할 일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대표 소설가가 일본 극우 작가의 번역본이나 표절하고 앉아있는 한국문학의 도덕적 수준을 우리 스스로 바로잡는 것 말고는 한국문학의 이 국제적 망신을 치유할 방법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누가 누구의 흠결을 잡아내 공격하는 성격의 일이 정녕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지난 십 년 가까이의, 그리고 앞으로의 문단생활을 스스로 포기하면서까지 이 글을 쓸 이유란 애초에 없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나와 나의 문우들이 문학을 처음 시작했을 적에 신앙했던 문학의 그 치열하고 고결한 빛을 되찾는 일일 뿐이다. 신경숙의 개인사가 아니라 한국문학사 전체를 병들게 하는, 나아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한국문학 작가들과 그들의 독자들에게까지 채워질 저 열등감의 족쇄를 바수어버리는 일일 뿐이다.

한국문단과 한국문학은 이 글을 통해 표절에 대한 패배감과 우울증을 치유 받아야 하고 그것이야말로 이 글의 사회적, 문화적 공익성이 될 것임은,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작가란 표절을 하지 않는 존재라고, 또한 비록 작가가 아닐지라도 누구든 남의 작품을 표절하는 것은 도둑질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아니고서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칼로 무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악한 사람이기도 하고 선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악한 일과 선한 일은 있다. 나는 나의 이 글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에 악영향을 끼칠 어떤 악한 일을 바로잡는 선한 일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보통의 경우 나는 용감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가 죽으면서 나는, 내가 용기 없는 문인이었다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진정한 문학은 세상을 능욕하는 더러운 시스템을 무시하고 무너뜨린다. 또한, 인간의 영혼을 기만하고 예술의 가치를 짓밟는 야만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결의는 유별난 한 문인만의 것일 수도 없는 것이다. 세상은 법률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다. 세상은 인간의 모순과 슬픔을 예술의 순수를 통해 사랑하고 위로하면서 제 핵심을 사수한다. 예술가의 예술에 대한 윤리가 예술가의 본분임은 바로 그 소치인 것이다.

고로, 신경숙이라는 한국문학의 우상(偶像)이 저지른 표절에 관해 한 작은 문인이 정식으로 써서 그 사실과 의미를 일깨우는 일은 한국문인들의 긍지를 회복하는 길이자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피눈물과 땀방울로 한국문학을 일궈낸 선배작가들과 독자들에게 사죄하려는 오늘의 한국문인들 모두의 모습이다.

글이란 비록 그 글을 쓴 자가 죽은 다음일지라도 오히려 새 생명을 부여받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신의 무거운 책무를 감당한다. 어떤 대단한 권력이 협박하고 공격하고 회유하고 은폐하고 조작한다고 한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순정한 마음으로 혼신을 다해 기록한다면 그 기록은 그 기록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의 진실을 필요할 적마다 매번 소환해 영원히 증명해낸다는 뜻이다. 이것이 곧 온갖 어둠을 이용해 당대에 설치는 거짓보다 훨씬 강한 참된 글의 빛이며 문학의 위대함이다. 나는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우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 오로지 그것만을 믿고 싶은 것이다.

글 | 이응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외 9편의 시로 등단했고, 1994년 계간 『상상』 가을호에 단편소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3년 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중앙선데이」에 21편의 칼럼을 연재하면서 정치․사회․문화 비평을 시작했다. 시집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애인』, 소설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무정한 짐승의 연애』, 『약혼』, 연작소설집 『밤의 첼로』, 장편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소설선집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논픽션 시리즈 '이응준의 문장전선' 제1권 『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 등이 있다. 2008년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 「Lemon Tree」(40분)가 뉴욕아시안아메리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파리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2013년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SBS 16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문화무정부주의 조직 '문장전선'을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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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재봉, 「왜 신경숙씨 '딸기밭'에 남의 글이 그대로 담겼나」, 한겨레신문, 1999년 9월21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2100289124008&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9-09-21&officeId=00028&pageNo=24&printNo=3614&publishType=00010
이 일이 드러나 문제가 커지자 신경숙은 고(故) 안승준의 유족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해 소설집 『딸기밭』의 그 다음 인쇄본부터는 "유의 어머니 편지는 故 안승준 씨의 유고집 서문의 일부를 변형한 것임."이라는 문구를 단편소설 「딸기밭」의 말미에 달았다. 신경숙, 「출처 안밝힌 인용은 죄송, 표절혐의 이해할 수 없다」, 한겨레신문, 1999년 9월28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2800289124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9-09-28&officeId=00028&pageNo=24&printNo=3618&publishType=00010

2) 이는 주로 문학평론가 박철화가 주장한 것들인데, 계간 작가세계 1999년 가을호에 실린 「야성성의 글쓰기, 대화와 성숙으로」와 이후 한겨레신문에 발표한 그의 기고문들을 참조할 수 있다. 특히 박철화는 신경숙의 단편소설 「작별인사」가 마루야마 겐지의 장편소설 『물의 가족』의 여러 요소들을 그저 멋 부리기 위해 가져다가 표절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박철화, 「비슷한 문장과 모티프 모든 것이 우연인가」, 한겨레신문, 1999년 10월 5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00500289124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9-10-05&officeId=00028&pageNo=24&printNo=3624&publishType=00010

3) 최재봉, 「국내 포스트모더니즘 거센 내부 비판」, 한겨레신문, 1993년 3월 13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31300289109010&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3-13&officeId=00028&pageNo=9&printNo=1500&publishType=00010

4) 소설가 하일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남진우의 공격이 문학평론이 아닌 인신공격적 언어폭력이라고 일갈했다. 또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강준만과의 공저 『문학권력』 (개마고원, 2001) 속 자신의 글 「심미적 비평의 파탄―남진우의 반론에 답한다」에서 남진우가 하일지의 장편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 로브그리예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아무런 증거를 내세운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남진우의 하일지 비판(특히 로브그리예에 대한 표절 시비가)이 그야말로 인신공격적 언어폭력에 불과하다고 소설가 하일지와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고미석, 「문학평 인민재판식 안된다」, 동아일보, 1991년 9월 30일자 참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93000209213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9-30&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606&publishType=00020
윤성노, 「권성우·강준만 공저 '문학권력서' 재비판」, 경향신문, 2001년 12월 17일자 참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0112171931211

5) 「문화단신」 문학, 연합뉴스, 2005년 8월 9일자 참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1070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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