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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에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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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인공지능 기계들이 아마겟돈과 같은 전쟁을 벌인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도래할 것인가? 누구는 인류 쪽이 이기고 누구는 인공지능 기계들 쪽이 이길 거라고 제각기 나름의 일리 있는 주장들을 내놓을 터이다. 만약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후자가 전자를 멸망시키리라고 본다. 결코 인간이 한심해서가 아니라, 기계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그 후유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영혼이 없으므로 당연히 영혼의 소모나 황폐 또한 없다. 일단 적으로 입력되어 있으니 무조건 그 적을 계산 값이 나오는 바대로 무정하게 죽이면 그만인 것이고, 적에 의해 동료가 파괴됐다고 한들 한 치도 흔들릴 까닭이 없다. 행여 인간의 증오 내지는 복수심이 기계와의 사생결단에 도움이 되리라는 반박은 가당치 않다. 작은 싸움이라도 제대로 치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 모든 전쟁은 힘과 냉정함 그 두 가지에 의해 좌우됨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인간들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마음을 뺏길 동안, 기계군단은 인간의 살에 불을 지르고 뼈를 바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위와 같은 내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정말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아닌지에 관하여 기실 나는 아무런 관심 없다. 내 저 말들이 맞건 틀리건 저 말들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정작 따로 있다는 소리다. 요즘의 나는 차라리 내게 감정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랄만큼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이 눈물은 타인에게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눈물이다. 보이지 않는 눈물은 보이는 눈물보다 때로 더 아프고 외롭다. 이승의 상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숨지기 한 시간쯤 전이던가. 어머니는 반혼수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나 코앞에 있는 나를 허공 대하듯 하며 자꾸만 나를 찾고 또 찾았다.


내 어머니가 죽었을 때 나는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국어교사였던 어머니는 유방암 수술을 받으며 10년 정도 앓았고 그중 3년은 재발 기간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병실에서 단둘이 지냈다. 나는 어머니의 대소변까지 받아 내면서 열심히 간호했다. 이십 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사내놈이 혹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암 환자를 돌보며 좁은 병실 안에 갇혀 있는 일은 직접 겪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어둠이었다. 병수발 3년에 효자가 없다는 소리는 결코 싸가지 없는 과장이 아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아무런 호전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어느새 나는 계속 이런 식이라면 어머니의 삶이 차라리 이쯤에서 마무리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은밀한 생각까지 품게 되었으니까. 이건 고백성사 이전에 내 있는 그대로의 과거다.

그리고 그날 그 저녁, 나는 죽음을 보았다. 진통제로 절은 어머니의 육신은 소시지에 마구 난도질을 해 놓은 듯했다. 나는 그 무수한 흉터들의 내력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어머니의 얼굴 속에서 괴로워 소리치는, 일그러진 인간의 수만 가지 얼굴들을 읽었다. 요컨대, 구원을 바랄 수 없는 완벽한 절망이란 바로 그런 것, 지구는 단두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과나무로부터 아무 생각 없이 떨어지는 살찐 사과처럼, 어떤 그림자 덩어리가 내 정수리에서 쑤욱─ 빠져나와 발등을 때리곤 병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낮에 어머니는 젊은 여의사에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자신은 천국에 갈 것이므로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저 고통만 없애 달라고 애원했다. 젊은 여의사는 진통제 주사를 놓았다. 어머니가 어머니에서 시체로 변하는 순간, 나는 얼음이 되어 가는 어머니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젊은 여의사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어머니의 열려진 항문을 확인하고는 쓸쓸한 표정으로 사망선고를 하였다. 역시 후일담일 뿐이지만, 그 경험 이후로 내게는, 사제(司祭)처럼 행동하지 않는 의사들을 저주하는 버릇이 생겼다. 숨지기 한 시간쯤 전이던가. 어머니는 반혼수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나 코앞에 있는 나를 허공 대하듯 하며 자꾸만 나를 찾고 또 찾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유일한 아들이 독일 쾰른에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둘러싼 모두를 향해 내 아들에게 잘못하면 자기의 원수가 될 거라고 말하였다. 어머니는 다시 누웠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하 시체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끝없이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아이고, 아이고, 서럽게 우는데, 밀랍인형처럼 생긴 대머리 시체실 관리인은 이렇게 위로했다.

"학생. 걱정하지 마. 이거 냉동고 아니야. 냉장고야."

어머니의 시신은 육중한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쿵, 하고 은빛 냉장고 문이 닫힐 때, 나는 내 인생의 한 시절이 막을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현대무용가 김화숙 선생이 중고 턴테이블을 선물해 준 덕택에 클래식광이던 어머니의 LP들을 자주 듣는다. 요즘도 가끔씩 그런 식으로 어머니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어느 원로 연극배우는 어머니의 표정을 그대로 흉내 내며 눈시울을 붉히더라. 나중에 어머니의 유품들을 정리하는 와중에, 어머니의 수첩 커버 안쪽에 내 사진이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1년여 대학교를 휴학한 채 머물었던 독일 쾰른의 대성당 앞에 서 있는 스물두세 살 무렵 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직은 인생의 큰 슬픔에 오염되지 않았던 내 낯선 얼굴이었다. 어머니의 49제까지 치른 뒤 그저 나는 언젠간 내게도 어김없이 닥칠 것을 미리 보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후로 3년 가까이 마치 월남전에서 귀환한 야전병사가 심리적 외상에 시달리듯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가끔씩 나는 그날 그 저녁 문득, 내 정수리에서 빠져나와 발등을 때리곤 데굴데굴─ 병실 바닥을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갔던 어떤 그림자 덩어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이 거기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워 간다. 내 안에 있는 것들도 내 밖에 있는 것들도, 무엇보다 나 자신마저도 다 사라지게 만든다. 시간은 어머니의 죽음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나를 보고 누구는 안락사를 시키라는 소리도 했다.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나의 나머지 인생이 어떠할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인생은 결국 망한다.


그리고 얼마 전. 지난 16년간 나를 위로해 주고 지켜 주었던 내 강아지 토토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버렸다. 토토가 치매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토토를 돌보기 위해 거의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짐승도 나이가 들면 사람이 노환을 앓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 굉장히 핍진한 슬픔을 환기하고 있었다. 토토는 머리를 요란하게 흔들고, 정처 없이 헤매며, 어두운 구석으로 처박히듯 들어갔다가는, 이윽고 함정과 늪에 빠진 것처럼 되돌아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작은 늙은이가 나의 아들이라는 게 너무 이상했다. 애잔함이 고통보다 더 괴로워질 즈음 나는 토토에게 기저귀를 채워 주었다. 태어난 지 석 달 된 강아지였을 적에도 채우지 않았던 기저귀. 토토는 다시 어려진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슬프기 직전에서 생각을 멈추고 오로지 행동하기 위해 애썼다. 쓸데없는 질문보다는 그것이 강해지는 훈련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대화가 필요치 않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노환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으려드는 토토에게 그 마지막 3주 동안 온갖 맛있는 것들을 뒤섞고 빻아서 버무린 특식을 나무숟가락으로 떠먹였고 심지어는 의료기기 상가에서 사람 환자들이 쓰는 스포이트까지 사와서 음식 농축액을 억지로라도 먹이게 되었다. 나중에는 토토를 간호하다가 내가 몸살감기에 걸려 한참 고생을 했다. 그러는 나를 보고 누구는 안락사를 시키라는 소리도 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 그것이 나와 토토를 위하는 말일지라도 무조건 절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나의 나머지 인생이 어떠할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인생은 결국 망한다. 게다가 암 같은 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환이라면 나는 토토를 토토의 죽음까지 잘 배웅해 주어야 했다. 녀석이 단 하루라도 더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 나는, 단 하루만큼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였다. 꼭 끌어안고 있는 우리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는지, 토토는 그 혼란 속에서도 이제 더 이상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표시를 분명히 내었다. 나는 토토와 눈으로 말하며, 그럼 그렇게 해 주겠다고,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말자고 말했다. 그날부터 나흘간 나는 토토의 곁에 누워 토토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잠들고 깨어 있었다. 나는 오로지 녀석의 얼굴과 눈동자만 들여다보면서 지냈다. 반려동물들은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간다고 한다. 그리고 후일 주인이 죽으면 가장 먼저 달려와 반긴다고 한다. 나는 반려동물이 죽고 나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가 과장이 아님을 체험하고 있다.


죽음도 암기과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을 잊지 않으면 삶의 허튼짓거리들을 그만하게 된다.


『대반열반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35세에 깨달음을 얻어 장장 45년 간 팔만대장경 분량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다니던 석가모니는 80세의 노구로 자신이 영면에 들 때가 되었음 스스로 알았다. 인도 쿠시나가르의 히란냐바티 강가에는 사라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제자 아난다는 그것들 사이에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해 삶에 지친 스승을 가만히 뉘였다. 아직 꽃 필 때도 아닌데 주변의 모든 사라나무들은 활짝 꽃을 피워내 흰 꽃잎들이 눈보라처럼 천지에 휘날렸다. 부처는 자신의 제자가 돼 수행하고 있는 속세의 아들 라후라가 울고 있자 이렇게 말한다.

라후라여, 슬퍼할 것은 없다. 너는 아버지에 대하여 할 일을 다 했다. 나도 너에게 할 일을 다 했다. 라후라여, 마음을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대들과 함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두려워하는 일이 없이 또 애써 원한을 짓지 않았고 또 해를 끼치지 않았다. 라후라여, 나는 지금 멸도(滅度)에 들면 다시는 남의 아버지가 되지 않는다. 너도 또한 반드시 멸도에 들어 다시는 남의 자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와 너와는 다 같이 난(難)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또 노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라후라여, 불법은 상주(常住)하는 것이다. 너에게 부탁하건대 무상한 모든 법을 버리고 다만 해탈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곧 나의 가르침이다.


부처는 울고 있는 제자 아난다에게도 말했다.

울지 마라. 내가 이르지 않았더냐. 누구든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이라고, 그것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고. 아난다여. 나의 죽음을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내가 항상 말하지 않았느냐.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일지라도 마침내는 완전한 이별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너는 지금 무엇을 슬퍼하고 있느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느냐. 아난다여! 무너져 가는 것들에게 아무리 무너지지 말라고 만류한들 그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죽어 가는 토토를 보듬어 안고 며칠간 반복해서 읽어 주었다. 이윽고 7월 1일 밤 10시경 토토는 내 품 안에서 평온하게 무지개다리 저 너머로 건너갔다. 나는 반려견 화장장 직원이 보여 주는 토토의 따뜻한 유골을 만져 보았다. 겨우 이게 토토라니.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과 그 풍경을. 죽음도 암기과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을 잊지 않으면 삶의 허튼짓거리들을 그만하게 된다.


토토는 그간 내가 자기 방어적으로 잊고 있던 죽음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 주었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 들이 모조리 새삼스럽다.


언젠가 명왕성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1930년 발견된 이후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었으나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의 행성분류법이 바뀜에 따라 행성의 지위를 잃고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강등당한 명왕성. 그런데 그 사진은 지구에서 명왕성을 바라본 게 아니라 명왕성에서 지구를 바라보았을 때를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시뮬레이션 한 사진이었다. 어느 경우든 명왕성과 지구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다. 나는 우리가, 어머니와 내가, 토토와 내가, 그토록 아득히 멀리 헤어졌다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리석게도 나는, 그들이 완전히 소멸해 버린 게 아니라, 이 우주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다면 좋겠다는 허망한 바람에 더욱 쓸쓸해졌다. 깨달은 자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의 아들에게 너는 윤회의 사슬을 끊고 앞으로 누구의 아들로도 태어나지 말라, 이제 나는 누군가의 아버지로도 태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으나, 또 나는 그의 그런 말을 죽어 가는 토토에게 읽어 주었으나, 사실 나는 그들과 지금의 여기와는 다른 어딘가에서 지금의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서라도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토토는 명왕성에서 내가 있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어머니는 어머니의 명왕성에서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나의 명왕성에 홀로 서서 '영원히'라는 외로운 단어에 기대어 그들을 사랑하고 있듯이. 이것은 힘찬 말이 아니다. 분명 서글픈 말이지만, 그리고 가슴 저미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유를 불문하고 어쨌든 견뎌야한다. 산속의 그 어떤 짐승들도 스스로에게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는다. 존재는 의미에 선행하는 것. 의미를 자꾸 추적하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무의미에 도달하게 되고, 그것은 곧 죽음이다. 살아 있으니, 무조건 사는 것이다. 이것이 삶의 기본이다. 반면 또한 우리는 우리 각자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몸을 단련하고 영혼을 정돈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이 수많은 인파 속을 걸어가면서도 나의 명왕성에 우두커니 홀로 서 있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 말고는 늘 확실한 진리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날 그 저녁 문득 내 정수리에서 빠져나와 발등을 때리곤 데굴데굴─ 어머니의 병실 바닥을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갔던 어떤 그림자 덩어리인 것만 같다. 토토는 그간 내가 자기 방어적으로 잊고 있던 죽음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 주었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 들이 모조리 새삼스럽다. 이것이 토토가 내게 주고 간 선물이라면 이것도 한 깨달음일 것이고 그렇다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보석이다. 하지만 나는 이 보석이 너무 아프다. 하루의 어느 순간에는 너무 화가 나 차라리 세상이 온통 불살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거리에서 소리치고 싶다. 누가 먼저 시작한 수작인지는 몰라도, 흔히들 죽음을 긍정적으로 포장할 적에, 그리스 신화 속의 영생하는 신들과 인간을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스의 신들은 오히려 인간들을 부러워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인간에게는 죽음이 있어서라는 것이다. 죽음이 없는 신은 마네킹에 불과하다고. 정말 그러한가? 그리스 신들에게 물어는 봤는가? 지금 나는 내가 영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죽음이 너무 괴로워 차라리 우리가 마네킹이어도 좋겠다. 아쉽게도 슬퍼하고 있는 나는, 기계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서 네 일기장에나 끼적일 일이 아니냐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쓴 것은, 결국 죽음에 대한 고찰은 그 어떤 세상의 이야기보다 소중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기실 우리는 살아 있어도 타인으로부터 늘 죽임을 당한다. 타인이라는 것은 지옥 이전에 하나의 죽음과 같은 벽이다. 사랑이라는 마약 같은 착각에 빠졌을 때나 그가 나의 타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뿐, 그러나 그것마저도 오래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먼 타인이 아니라 가까운 타인인 가족끼리는 곧잘 상처 주고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죽음만큼 어려운 숙제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서 네 일기장에나 끼적일 일이 아니냐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쓴 것은, 결국 죽음에 대한 고찰은 그 어떤 세상의 이야기보다 소중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고작 사람이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아둔하고 잔인한 짐승들이지만, 타인의 상처를 함께 나누면서 치유 받는 용한 존재이기도 하니까.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타인을 위로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타인 역시 스스로를 치유하게 되길 기도했다. 꼭 일기가 아니더라도, 모든 글이란 어떤 의미로든 자기고백의 성격을 지니게 마련이다.

지난 8월 18일 토토의 천도제가 있었다. 조용히 합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십년 가까이 축축한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검도 장비들을 꺼내 햇살 아래서 말리고 닦아 냈다. 새로운 검도 도장도 곧 알아볼 생각이다. 토토가 그러는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견디기 힘든 슬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란 결국 마음을 강하게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 이 글은 민음사 격월간 문예지 『릿터』 제2호(2016. 10)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