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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를 마주한 인간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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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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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이 작곡한 교향곡을 연주합니다." 경기 필하모닉이 전해온 새 소식을 듣자마자, 얼마 전 열렸던 '로봇과 인간의 피아노 배틀'이 떠올랐다. 인간과 로봇 중 어떤 연주가 뛰어난지 청중의 투표를 통해 평가했던 특이한 음악회였다. 이제는 연주를 넘어 창작의 영역까지 잠식하다니, 그것도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앞장선 기획이라니, '인간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론 흥행을 염두에 둔 자극적인 무대라는 생각도 들었다. 경기 필하모닉은 '블라인드 테스트' 형식을 음악회에 도입한다고 했다. 청중은 인공지능이 작곡한 모차르트풍의 작품과 실제 모차르트 작품을 연이어 듣고, 어떤 곡이 더 아름다운지 가늠하게 될 터였다. 그만큼 인공지능과 인간의 작품이 구별하기 어렵다는 자신감의 피력일 것이었다. 허나 지난번 로봇과 인간의 피아노 배틀에서 청중은 인간의 연주에 몰표를 행사했었다. 예술은 뭐니 뭐니 해도 감성과 공감이 절대적인 정신의 영역이란 반증과 같아 안도했지만, '인간 음악가'로서 막연한 위기감과 그보다 더 막연한 우월감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어느 공학교육혁신센터로부터 '인공지능 시대의 음악'을 주제로 강연할 것을 제안받았다. 막연한 우월감과 위기감을 구체화시킬 절호의 기회일지 몰랐다. 우선 경기 필하모닉이 연주할 '에밀리 하월'부터 파고들었다. 얼핏 여성 작곡가 이름처럼 들리지만, 에밀리 하월은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이용한 작곡 프로그램이다. 유시(UC) 샌타크루즈 대학의 데이비드 코프 연구팀이 개발한 이 인공지능은 정보를 저장하고 계산하는 능력에 있어 인간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인간은 하월만큼 수많은 작곡가의 악절을 한꺼번에 기억해 저장하지 못한다. 이렇게 수집한 대량의 악절을 통해 하월은 음악적 규칙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작곡가 특유의 악풍을 스스로 학습한다. 그러곤 박자와 음정, 음계 등 음악 요소를 조합해 작곡하는데 이때 소요되는 시간과 체력은 인간이 도무지 범접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테면 교향곡을 작곡하는 데 인간은 수개월 혹은 수년을 몰두하지만, 이 인공지능은 단 15분 만에 완결해 낼 수 있다. 휴식이나 충전이 필요하지 않으니 슬럼프도 없다. 그뿐인가, 자신의 곡에 대한 뭇사람의 평가까지 반영해 계속 업데이트하는 성찰의 능력마저 겸비하고 있다.

오늘 공학자들을 상대로 인공지능 시대의 음악을 강연하면서 하월의 작품들을 소개해보았다. 사람이 만든 음악과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강연 대상이 음악가라고 달랐을까.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인공지능은 음악을 '창조'하기보다 이해하여 '조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단 사실이다. 최초이자 최종적인 창조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라 주장하자 곧바로 공학자들의 반문이 답지했다. "음악가들은 인공지능과 함께할 숙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가상 오케스트라(VSTi)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전자악기 한 대로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대체될 것이라 우려했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예술을 위한 새로운 도구로 활용해왔다. 수학적 확률이론을 음악에 접목시켰던 작곡가 크세나키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예술과 과학의 공존은 헤게모니 다툼이 아니다. 인간을 더욱 깊이 이해할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 새로운 기술을 이해할 유연한 사고와 감각은 인공지능 시대를 마주한 인간 음악가의 고뇌를 상쇄해줄 것이다. 막연한 위기감과 우월감을 그렇게 극복하고 싶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