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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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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이제 관객 여러분의 것입니다" 라는 좀 올드한 홍보 카피대로라면 영화는 관객들의 것이겠지만, 그건 말이 그렇다는 얘기고, 관객들 또한 만원 정도의 돈으로 영화의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의 영화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한국 영화의 조금 기이한 특징은 투자자에 대한 과한 배려다. 상영의 시작과 함께 화면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대부분 주요 투자사 대표의 이름이다. 이어, 공동투자자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온다. 마치 이 영화의 소유권은 이들에게 있다고 못박는 듯하다. 그렇다, 영화는 이들의 것일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상업영화 제작의 결정적인 변수이자 영화의 성패를 재는 척도는 결국 돈, 투자자들만이 이 험난한 상업적 성공과 실패의 도박판에서 무한의 책임을 진다.

그러나 하나의 작품으로서, 혹은 영화사라는 박물관에 바쳐지는 역사로서 본다면, 당연히 영화는 감독의 이름과 함께 남겨지고 기억된다. 감독은 종이 위에 구상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이를 영상으로 결론 짓는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고민하고, 설득하고, 유혹하고, 격려하고, 결단하고, 돌진해서 한편의 영화를 손에 쥐는 진흙탕 속의 창조자.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앞에 감독의 이름을 소유격처럼, (혹은 낙인처럼) 붙이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투자자들이 돈의 무한책임을 질 때, 감독은 한편 한편의 영화에 자신의 인생과 이름을 걸고 또다른 무한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감히 누가 영화가 감독의 것이라는 명제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나.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얘기는 또 좀 다르다. 영화가 누구의 돈과 누구의 노력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든,우리가 결국 극장에서 마주치는 것은 배우다. 등장인물이 생각하고,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실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의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는 결국 사람을 보여주는 틀이고, 그래서 배우는 영화의 얼굴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 배우들이야말로 영화의 주인이라고 으쓱할 법하지 않은가.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 영화를 찍으면서 느끼는 점은 배우들은 영화의 주인은 될 수 있겠지만 촬영장의 주인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영화 촬영 현장에는 수십명이 스태프들이 있다. 촬영, 조명, 동시녹음, 현장편집, 의상, 분장, 미술, 소품, 데이터관리, 제작, 연출 등 정말 많은 파트에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을 지킨다. 너무 많아서 각각의 이름은 커녕 얼굴을 다 외우기도 벅찬 이 무리들은 촬영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촬영을 마감하는 마지막 날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한다. 이들은 새벽 가장 이른 시간에 모여서 준비한다. 밤 늦게 혹은 그 다음날까지 꼼짝 없이 현장에서 촬영의 모든 과정을 지킨다. 배우와 감독이 떠난 뒤 긴 뒷정리를 하고 다음 촬영을 또 준비한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현장의 주인이 아닐까?

이들이 주인인 영화 현장에서 우리 배우들은 뭐랄까, 손님? 그렇다 "귀한" 손님이다. 우리는 모든 준비가 끝나가는 현장에 초대되어 느긋하게 등장한다. 손님들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대접이 시작된다. 어서 오시라는 환영의 인사와 함께 손님은 의상실로 안내되어 그날의 의상으로 갈아입혀진다. 손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저, 의상팀이 점검하고 준비해 둔 옷을 입기만 하면 된다.

이어 손님은 분장실로 안내된다. 분장실의 주인들은 손님의 얼굴을 닦아주고, 영양크림과 썬블록을 발라주고, 예쁘게 메이크업을 해 주고, 머리를 만져준다. 때에 따라 멍자국과 흉터, 피칠갑이 추가 서비스로 제공된다. 이 과정에서 무료함을 달래라는 배려인지 연출부 막내는 당일의 촬영일정표와 콘티를 읽을거리로 손님에게 건네준다.

모든 준비가 끝난 손님은 모니터실로 이동해서 거기 있는 감독과 연출부, 동시녹음 감독, 데이터 매니저의 성대한 환영을 받는다. 커피와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촬영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이 시간이 길어지면 까칠한 손님들은 가벼운 짜증을 내기도 한다.

현장 준비가 완료되면 주인들은 더 바빠진다. 밝은 조명을 손님에게 맞춰 조절하고, 카메라는 오직 손님을 쫓아 움직인다. 손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주인들에 의해 기록되고 저장된다. 그렇게 손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힘겹게 수행해 나간다. 짬짬이 카메라가 멈출때마다 주인들은 여름에는 얼음주머니와 부채를, 겨울에는 손난로와 외투를 들고 뛰어다니며 혹시 손님이 불편하거나 힘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주인과 손님 모두에게 치열한 시간들. 그렇게 그 날의 촬영을 마친 손님은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지우고, 여유롭게 현장을 떠난다.

한 손님이 떠나도 주인들은 또 다른 손님들을 모시고 촬영을 계속한다. 혹 모든 촬영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현장의 뒷정리는 손님이 떠난 뒤에도 몇시간 더 계속되게 마련이다.

그들은 손님이 떠날 때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손님도 그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되돌려준다. 하지만 이 인사는 맞지 않다. 손님은 이미 수고를 끝냈지만, 그들의 수고는 아직 진행중이기 때문, 완료형의 인사를 하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 그들의 수고가 훨씬 더 큰데 같은 크기의 인삿말을 나누는게 웬지 미안하다.

몇 년 전 어느 시상식에서 배우 황정민은 밥상과 숫가락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고 영화 제작환경도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밥상을 차리는 주인들의 노고는 크고, 그 댓가는 부족하다. 염치 없이 밥숫가락만 뜨는 손님으로서, 현장의 주인들에게 한마디 전하고 싶다.
"손님 대접 잘 받고 있습니다" 라고.

그리고 항상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외치는 그들에게 내 마음속의 인사를 한번쯤은 들려주고 싶다. "댁들이 더 수고하잖아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