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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인공들은 왜 섹스를 하지 않는 걸까?

기예르모 델토로는 자신이 구축한 판타지에 자신감이 없다.

  • 강병진
  • 입력 2018.03.09 11:44
  • 수정 2018.03.13 12:06
ⓒhuffpost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건 ‘섹스’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 사이의 사랑과 섹스. 이것은 그동안 쉽게 탐구될 수 없었던 영역이다. 이들의 사랑이 가능하려면, 인간이 아닌 존재도 인간의 모습을 해야만 했다. 과거 ‘새엄마는 외계인’(1991) 같은 영화를 보자, 외계인이 무려 킴 베이싱어다. 또 톰 행크스 주연의 ’스플래시’(1984)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는 무려 대릴 한나가 연기한 인어였다. (하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또한 아름다운 반인반어다.)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은 존재는 로맨스의 대상이 되기 어렵고, 그래서 이 경우에는 주로 ‘우정’을 그린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E.T’(1984)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1988), 그리고 봉준호의 ‘옥자’(2017) 까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랑을 그린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는 피터 잭슨의 ‘킹콩‘(2005)이다. ‘킹콩’(2005)은 분명 괴물과 미녀의 비극적인 로맨스였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킹콩이 추락사한 후, 앤 대로우와 잭 드리스콜이 포옹을 하는 장면에서 어떤 관객들은 “저렇게 금방 배신할 수가 있냐”며 분노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피터 잭슨도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섹스’를 그려내지는 못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섹스’는 그만큼 독보적이다. 이 섹스는 정신적인 교감이 아닌, 진짜 육체적인 사랑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이 되거나,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신하지도 않는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셰이프 오브 워터’를 연출한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은 오로지 이 섹스를 성사시키기 위해 캐릭터와 미술, 음악, 색감 등 모든 부분에 공을 들였다. 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괴생명체를 만나기 전에도 매일 욕조에서 자위행위를 하며 성적 욕망을 분출해온 여자다. 그녀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그녀의 욕망과 관계가 깊다.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옆집 남자 자일스(리차드 젠킨스)는 게이이고, 그녀가 청소부로 일하는 우주과학연구소의 보안책임자 리차드(마이클 섀넌)은 그녀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지만, 교감 대신 폭력적인 언행으로 그녀를 위협한다. 그래서. 엘라이자에게는 연구소에서 만난 괴생명체만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들의 섹스를 통해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냉혹한 시대에도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고 두 번 말한다. 그리고 이들의 섹스를 통해 그 사랑에는 경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에서 엘라이자와 괴생명체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 영화에는 둘이 섹스를 하는 장면이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섹스를 했다는 은유가 있을 뿐이고, 섹스의 감각과 감흥이 없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괴생명체와 엘라이자가 함께 욕조에 들어간 후, 커튼을 닫는 장면이 이들의 첫번째 섹스신이다. 커튼을 닫음과 동시에 버스를 탄 엘라이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전날 밤, 그와의 섹스를 떠올리는 중이다. 영화는 그녀가 되새기는 섹스의 감각을 붉은빛의 조명과 버스 창문에 뿌려지는 빗방울로 묘사한다. 바람에 따라 유리 위를 움직이는 물방울은 서로 엉기고 엉기면서 점점 커진다. 섹스의 기억을 전하는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이 감각을 느낄 새도 없이 영화는 젤다(옥타비아 스펜서)가 엘라이자에게 웃는 이유를 묻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굳이 엘라이자가 손가락 하나를 꺼내보이며 괴생명체와 어떻게 섹스가 가능했는지를 설명하게 만든다. 아마도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은 관객들이 궁금해 할 질문을 젤다를 통해 던졌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기어이 설명한다. 영화 속 엘라이자는 섹스 후의 감각을 더듬고 있지만, 보는 이들은 그녀가 섹스를 했다는 설정만을 떠올리는 상황이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두 번째 섹스신은 더 강렬한 감흥을 줄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장면이다. 욕실문을 잠그고, 수건으로 문 아래를 막아 욕실 전체를 물로 가득 채워서 둘이 함께 물 속에서 섹스를 하는 설정은 그자체로 판타지다. ‘종속과목강문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말하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단 하나의 장면만을 남긴다면 바로 이 장면이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E.T’에서 엘리엇과 E.T가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 혹은 ‘킹콩’에서 미녀와 킹콩이 해골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만끽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욕실 바닥에서 물이 떨어지고, 이 물이 건물 아래층의 극장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보는 그대로 사랑의 흘러넘침을 묘사한다.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 자신에게는 ‘영화’란 매체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일 수도. 하지만 이때도 영화는 정면으로 섹스와 마주하는 걸 두려워한다. 이 상황에서 영화가 섹스 대신 보여주는 건, 판타지 밖의 세계다. 옆집의 자일스가 잠에서 깨어나 다시 나기 시작한 머리카락에 놀란다. 그때 아래 극장주인이 올라와 앞집 문을 두드리면서 물이 떨어지는 것에 항의한다. 그 사이 물 속으로 들어간 엘라이자와 괴생명체가 서로를 마주보고 껴안는 장면이 묘사된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하지만 바로 이어 자일스가 엘라이자의 집에 들어와 욕실문을 열어버린다. 그 다음에 보이는 건, 온 몸이 흠뻑 젖은 채 괴생명체를 안고 미소짓는 엘라이자의 모습이다. 욕실문을 걸어 잠그고 만든 두 사람의 만의 섹스는 그렇게 욕실 바깥의 사람들에게 방해를 받는다. 이건 영화 속의 엘라이자의 상황인 동시에 이들의 섹스를 바라보는 관객의 상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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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토로는 자신이 구축한 판타지에 자신감이 없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기 때문에 상영을 멈추지 않는 이상 관객에게 어떤 장면이든 보여주어야만 한다. 아예 암전된 화면이거나, 아예 적나라한 섹스장면이거나, 아니면 그외 어떤 장면이든 말이다. 섹스와 사랑의 감흥을 섹스신이 아닌 다른 장면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기예르모 델토로는 (‘섹스 장면’ 대신 보여준) 다른 장면에서 둘이 나누는 섹스의 감흥을 전하지 않고, 설명을 한다. 앞서 말한 두 개의 섹스신 만이 아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처음부터 이 섹스가 얼마나 있을 법한 것인지 애써 설명한다. 주인공은 말을 못하는 사람이고, 그의 상대는 인간의 언어 자체를 모르는데도 ‘셰이프 오브 워터’가 말이 많은 영화처럼 느껴진다면 그 때문이다. 연구소의 보안책임자 리차드 스트릭랜드와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을 둘러싼 냉전시대의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이들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역시 두 번 말한다. 그 사이 엘라이자와 괴생명체가 교감을 나누는 순간은 몇몇 장면으로만 요약되어 버린다. 앞서 언급한 ‘E.T’가 어느 한적한 마을의 또 어느 한적한 가정집만을 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킹콩’ 또한 괴물과 앤 대로우의 교감은 해골섬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외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우리’만의 세계에서 교감은 더 증폭된다. 그들의 사랑이 전하는 감흥도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인간과 괴생명체가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한다는 설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 영화만의 세계를 다른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침범하게 놔두고 있다. 섹스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섹스의 실제적인 감각과 감흥이 없다면, 그건 섹스를 하지 않은 거다. 엘라이자의 욕실 문은 좀 더 늦게 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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