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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이후 상징적인 '오리지널' 영국 여권은 유럽 업체가 만든다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 허완
  • 입력 2018.03.23 12:07
ⓒLPETTET via Getty Images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결정한 이후, 영국 정부는 여권 색상을 전통적인 ‘푸른색‘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브렉시트 찬성파들영국의 ‘아이콘’을 되찾게 됐다며 이를 자주권 회복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런데 새 여권을 제작할 업체로 영국 기업 대신 네덜란드-프랑스 기업이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디언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젬알토(Gemalto)가 영국 업체 데라루(De La Rue)를 제치고 새 여권 제작업체로 선정됐다. 디지털 보안 제품 등을 생산하는 젬알토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증시에 상장되어 있다.

영국 남부 햄프셔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는 데라루는 현재의 영국 여권을 제작해왔다. 금액으로 따지면 여권 제작 업무는 4억9000만파운드(약 7470억원) 규모에 달한다.

영국 여권 제작 업무를 담당해왔던 국영기업이 1996년 민영화된 이후에는 민영기업들이 입찰을 통해 여권 제작 계약을 수주해왔다.

영국 내무부 대변인은 ”철저하고 공정하고 개방된 경쟁”을 통해 젬알토가 새 여권 제작업체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또 이번 계약으로 1억2000만파운드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계약기간은 11년6개월이다.  

반면 브렉시트 찬성파인 보수당 의원 프리티 파텔은 이번 결정이 ”국가적 수치”라고 불평했으며, 같은당 하원의원 빌 캐시는 ”상징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결정)”이라고 혹평했다. 

 

1998년 영국은 1921년부터 써왔던 ‘상징적인’ 진청색 여권을 버건디 색상으로 바꿨다. 

단순히 색생만 바꾼 게 아니었다. 이 여권에는 사상 처음으로 ‘유럽 커뮤니티’가 언급됐고,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9개 회원국가로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EU가 회원국들에게 여권 제작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긴 하지만, 색상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다만 상당수 회원국들은 자발적으로 버건디 색상을 써왔다.

따라서 새 여권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음을 알리는 여권이 될 예정이다. EU와 관련된 문구가 모두 삭제되고 색상도 바뀌는 것. 새 여권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2019년 3월29일 이후 발행될 예정이다.

ⓒHandout . / Reuters
ⓒMatt Cardy via Getty Images

 

새 여권이 어디에서 생산될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FT는 젬알토가 현재 프랑스 방산업체이자 영국에도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탈레스와 인수 협상중이라고 전했다. 

내무부는 여권 제작이 꼭 국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2009년 이후) 여권의 일부분은 해외에서 제작되어 왔다. 여권 내지의 최대 20%는 현재 유럽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안보적 기능적 우려도 없다.”

FT는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데라루가 일감을 상실함에 따라 영국 내 일자리를 축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데라루 CEO 마틴 서덜랜드는 BBC 라디오4에 출연해 ”실망스럽고 놀랍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장관들이 기꺼이 언론에 나와서 푸른색 여권과 이것이 영국의 정체성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러나 이제 이 상징적인 영국의 정체성은 프랑스에서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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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렉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