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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정말 미투 운동을 보도할 준비가 되었을까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에서도 피해 상황을 흥미 위주로 소비하는 언론행태

ⓒhuffpost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검찰 성추행 은폐 의혹 사건 제기로 촉발된 미투 운동이 정치권과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으로 꾸준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투 운동을 전하는 보도에서도 여전히 문제 보도는 속출하고 있습니다. 민언련은 성폭력 관련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 및 준칙(이하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검찰 성추행 은폐 의혹 사건 이후의 미투 운동을 다룬 보도’와 ‘같은 시기 성폭력 사건 보도’의 문제 사례를 검토해 보았습니다. 모니터 대상은 방송 보도에 한정하지 않고, 온라인 보도를 포함하였습니다. 

아래 내용에서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과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은 2014년 여성가족부, 한국기자협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이 함께 만든 ‘성폭력 사건 보도수첩’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은 2012년 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은 한국여성민우회가 2012년에 발표한 것입니다. 

 

문제 보도 유형 ① 피해 사실에 대한 선정적·구체적 묘사 

사생활 침해, 잘못된 통념 재생산, 2차 가해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사건 보도에서 피해 정황을 지나치게 상세히․선정적으로까지 묘사하는 행태는 고질적으로 반복되어왔습니다. 때문에 현행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에는 모두 ‘이러한 보도를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02. 피해자 보호 우선하기

•언론은 경쟁적인 취재나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언론은 피해자의 피해 상태를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함 에 있어, 피해자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야 한다.

•언론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라고 해서 피해자나 가족의 사생활이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03. 선정적, 자극적 지양하기

•언론은 성폭력 범죄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는 것을 지양하여야 한다.

•언론은 성폭력 범죄의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 행위 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 중 ‘기사 작성 및 보도시 주의사항’

02. 피해자의 피해 상태를 자세하게 보도하는 것을 자제하여야 한다.

•피해자가 입은 상해 등 피해 상태를 자세히 보도할 경우, 피해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될 소지가 높고, 일반인들에게도 성폭력은 극복할 수 없는 피해라는 잘못된 통념을 심어줄 수 있다. 또한 기사를 접하는 피해자에게 사건을 다시 상기하게 하고 공포심과 성적 수치심을 재경험하게 하는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

03.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는 하지 않아야 한다.

• 이슈가 된 사건의 피해자라고 해서 사생활 영역까지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중 ‘실천 요강’

3.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4. 언론은 성범죄 사건의 이해와 상관없는 범죄의 수법과 과정, 양태, 그리고 수사과정에서의 현장 검증 등 수사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도하지 않는다.

9. 언론은 사진과 영상 보도에서도 피해자 등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특히 삽화, 그래픽, 지도 제공이나 재연 등에 신중을 기한다.

 

여러 가이드라인에서 성폭력 상황과, 피해자가 입은 폭력 피해 양상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도록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받을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폭력 상황을 상세하게 부각하고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피해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고, 성폭력 자체를 ‘하나의 성적 스토리’로 소비되도록 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성폭력에서 폭력 묘사는 최대한 ‘건조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현행 가이드라인만 봐도 ’명백한 문제점’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 대부분

그러나 현재 언론보도에서는 가이드라인의 권고가 거의 지켜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미투 운동을 다룬 보도, 혹은 미투 운동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와중 밝혀진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에서도 피해 상황을 흥미 위주로 소비하는 언론행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피해자가 자신의 SNS에 적어 둔 피해상황’을 ‘언론사가 모조리 따옴표로 긁어 인용하는 과정’에서 주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언론사는 피해자가 쓴 글이니 전부를 게재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개인은 자신의 피해상황을 최대한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SNS에 피해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언론인이 아니기에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에 맞춰 글을 써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인이 피해자들이 올린 SNS글을 인용해 보도에 활용할 때에는, 개인의 글 중 ‘언론이 묘사해도 될 수위와 표현을 정제하여’ 보도해야 합니다.

단편적으로 보면, 상세한 피해상황 묘사가 빠른 대중적 공분을 이끌어 내는 데는 효과를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정적 묘사는 성폭력 근절을 위해 도움을 주기보다는 사건을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소모시켜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자 인터뷰 보도 속 피해상황 묘사는?

피해자가 직접 출연해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인터뷰 보도 역시 보다 신중한 편집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JTBC <인터뷰/피해자 분노 키운 ‘이윤택 회견’…또 다른 폭로>(2/19)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피해자 인터뷰였는데요. 피해자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또 충격적인 피해 사실을 여과 없이 증언하자 손석희 앵커는 “지금 그 이 내용을 방송으로 해도 될지 여부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참담한 그럼 상황인 것 같은데. 일단 알겠습니다”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JTBC는 이후 홈페이지에 해당 영상을 다시 올릴 때에는 피해자 발언 중 일부에 비프음을 넣고, 스크립트에서는 상세한 증언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방송을 통해 해당 증언이 여과 없이 나가 버렸고, 수많은 인터넷 언론은 ‘손석희 앵커도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피해사실만을 부각한 선정적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이번 JTBC의 피해자 인터뷰는 전문적 방송인이 아닌 피해자와 편집이 불가능한 생방송 인터뷰를 하게 될 경우, 최대한 피해자와의 발언 수위에 대한 사전 조율 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줍니다.

이것은 인터뷰 진행 이전에 피해자 발언을 억압하거나 검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무릅쓰고 피해상황을 복기하며 용기 있게 인터뷰에 응해준 피해자가 원하는 ‘성폭력 사건 해결 및 범죄 재발 방지’라는 본질이 가십성 이슈로 소모되지 않도록 언론이 책임감을 가지고 세심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문제 보도 유형 ② 피해자·폭로자의 신상 정보 부각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신상은 주로 언론 보도를 통해 외부에 유출됩니다. 때문에 기존 가이드라인은 피해자의 신상과 관련한 그 어떤 정보도 사실상 노출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피해자의 신분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 발생 장소나 주변인 인터뷰’ 등의 정보도 모두 포함이 됩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02. 피해자 보호 우선하기

•언론은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 이름, 나이, 주소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보도 내용 중 근무지, 경력, 가해자와의 관계, 주거 지역 등 주변정보들의 조합을 통해서도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 하여 보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03. 선정적, 자극적 지양하기

•언론은 성폭력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취향, 직업, 주변의 평가 등 사적 정보를 보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야 한다.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 중 ‘기사 작성 및 보도시 주의사항’

1.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피해자의 얼굴, 이름, 직업, 거주지 등을 직접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법적 의무이다.

•문제는 간접적인 노출! 신원 노출을 막아주는 안전한 모자이크란 없다!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 간접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피해자의 나이, 직업, 신분, 피해자의 거주지, 범죄 발생 장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주변인 인터뷰, 간접정보들의 조합)

*정보들이 많을수록, 구체적일수록, 범주가 좁을수록 노출될 위험이 높다.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중 ‘실천 요강’

언론은 취재와 보도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의 2차 피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피해자의 신상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미투 운동의 경우 ‘이미 피해자가 자신의 신상 정보를 대중에 공개’하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고 해서, 언론이 ‘피해자 신상을 마음껏 부각’해도 되는 걸까요?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 유명세를 얻기 위해 신분을 공개한 것이 아닌, 가해자가 응분의 대가를 치루고, 나아가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연대에 나선 이들의 ‘신상’에 집중하는 것은 운동 그 자체의 취지에도 크게 어긋나는 행태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언론은 미투 운동을 통해 ‘이미 피해자가 자신의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는 것을 빌미로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부각한 보도를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가해자는 제대로 부각되지 않으면서 서지현 검사의 사진과 그의 이름은 지속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데요. 이후에도 이 문제는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채널A는 <괴물이 촉발한 문화계 ‘미투’>(2/7) 보도를 통해 최영미 시인의 폭로 내용을 전했는데요. 최영미 시인의 문제제기 내용을 중점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에도 이 보도의 온라인 송고용 제목은 <최영미의 ‘미투’ 폭로…‘괴물’ 시인이 누구길래?>입니다.

애초 방송용 제목부터가 ‘괴물’이라는 자극적 별명을 이용해 폭로 당사자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려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미투 운동을 소재로 ‘저열한 클릭수 장사’에 나선 꼴입니다.

그 외에도 연합뉴스 <‘16세 성폭행 의혹’ 극단 대표 미성년자 성폭행 또 폭로돼>(2/21)처럼 성폭행 피해자의 나이 관련 정보를 반복적으로 부각하거나, KNS뉴스통신 <‘어두운 마수’ 김지현, “과거 연기 지도 빙자한 여고생 00 추행 사연은?”>(2/19), 스페셜경제 <언론계 번진 ‘#미투 열풍’…전직 여기자의 고백>(2/10) 등의 사례처럼 별 의미 없이 이름과 성별을 조합해 선정적 제목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국민일보 <“이 사람이 내 아내”… ‘이윤택·김소희’ 폭로한 홍선주 남편이 올린 글>(2/23)처럼 미투 운동 참가자 지인의 사건 본질과 무관한 발언을 인용하면서 이름, 결혼 유무를 부각하고 보도 내에 피해자 사진까지 첨부하는 ‘최악의’ 사례도 적지 않게 등장했습니다.  

 

문제 보도 유형 ③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하고 부담주기

성폭력 가이드라인들은 성폭력 발생 과정에서 ‘피해자의 처신’을 문제 삼는 2차 가해성 보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범죄 사건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측 책임을 따져 묻는 보도가 거의 나오지 않는 반면, 유독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저항 여부, 피해자의 복장 및 사건 발생 시간, 피해 장소에 더해 피해자의 평소 행실까지 들먹이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보도가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01 잘못된 통념 벗어나기

•언론은 성폭력 범죄가 피해자의 잘못된 처신으로 발생하였다거나 피해자가 범죄에 빌미를 제공하였다고 인식될 수 있는 보도를 지양하여야 한다.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 중 ‘기사 작성 및 보도시 주의사항’

4.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 측*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범죄 발생 당시 피해자의 직업, 평소 행동이나 성향, 결혼여부, 음주여부, 옷차림, 피해자 거주지와의 접근 가능성 등 성폭력 사건과 관계없는 비본질적인 내용에 관하여 언급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하여서는 안 된다.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중 ‘총강’

3. 언론은 성범죄를 사회적 성역할에 관한 잘못된 통념에 기초해 피해자의 도적 관념과 처신의 문제로 인해 빚어진 사건으로 보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중 ‘실천 요강’

2. 언론은 성범죄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 등을 보도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범죄 유발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하지 않는다.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한국여성민우회)

잘못된 통념 재생산

6. 성폭력을 딸 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로 다루지 않는다

7. 성폭력 사건 예방을 위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여성 개인의 예방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피해자 행실 부각’은 현행 가이드라인도 금지했지만…

이러한 상황은 최근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 제주지역에서 게스트하우스 투숙객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용의자는 이미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게스트하우스 관리자로, 공개수배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채널A <경찰 보고 사라진 관리인>(2/13)은 이 사안을 전하며 “피해여성이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특히 20대 젊은이들이 주로 찾았는데, 1~2만원 내면 매일 밤마다 식사하면서 서로 어울려 놀 수도 있어 특히 인기였습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이웃 주민의 “파티를 하는 게스트하우스다 보니까 술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서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가게 되죠. 동네 어르신들이 그 집 시끄럽게 했다,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20대 중반 이렇게 혼자 온 여자들이 많이 캐리어 끌고 올라갔었고요. 소등도 없고” 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살해 용의자의 행실이 아닌 이런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사람들. 즉, 피해를 당한 사람의 ‘선택’에 초점을 맞춘 설명입니다.

새벽까지 어울려 놀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건 해가 지면 바로 소등을 하는 게스트 하우스건 성폭력이나 살인 사건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반대로 대낮에 사람이 몇 없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고요. 따라서 ‘그러게 왜 그런 게스트 하우스로 놀러갔느냐’는 부적절한 반응을 유도하는 이러한 무의미한 설명을 보도에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미투 운동 이후 ‘문제 해결까지 피해자에게 떠넘기기’ 등장

미투 운동을 다룬 보도에서도 다양한 피해자 책임전가성 보도가 등장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범죄 발생’을 넘어, ‘이후의 문제 해결 책임’까지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유형의 보도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의 <사설/사회 도덕률 바꿀 더 많은 #미투를 기다리며>(2/19)는 이런 유형의 보도 중에서도 상당히 노골적인 축에 속합니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미투 운동을 ‘기다리겠다’며 수동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고요.

사설 내에서도 “누군가 나서서 외치지 않으면 일탈은 관행으로 포장되고, 범죄는 특권으로 둔갑한다. 여승무원의 미투가 있었기에 ‘내 불찰이고 책임’이라는 박삼구 회장의 사과가 나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미투 사례만 봐도 성폭력이 특정 분야, 조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이 확실해지고 있다. 제도적 보완책과 더불어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더 많은 미투와 공개 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라며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구조적 문제 해결의 책임을 사실상 ‘미투 운동’에 떠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피해를 당한 누군가가 나서서 외치지 않았기 때문에 구조적 문제가 지속된 것’이라는 주장이 되어버립니다.

얼핏 미투 운동을 치켜세우는 듯한 이런 ‘미투 만능주의’는 본질적으로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해자와 방조자의 역할과 책임을 지워 버리고 맙니다.

또 과연 언론은 그동안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성폭력 만연과 이에 대한 불감증적인 행태를 몰랐을까요? 이를 감시하고 지적하고 개선해야 했을 언론이 자신들의 역할을 방기해왔던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도대체 무엇을 더 요구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정적 평판’ 받아쓰기도 그대로 반복

폭로 이후 업계나 주변인의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 개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받아쓰는 보도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평판’을 부각한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또 최영미 시인의 JTBC 인터뷰 이후, 갑작스럽게 개인의 ‘품성’을 문제 삼은 이승철 시인의 SNS 글을 ‘논란’이라는 글자만 붙여 그대로 퍼다 나른 보도 역시 이런 유형의 보도입니다.

이중에는 심지어 ‘2차 가해’라는 지적을 제목에 붙여놓고도 기사 안에는 이런 ‘2차 가해성 인신공격’을 여과 없이 소개한 기사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질과 무관한 2차 가해적 언사를 ‘이슈’가 된다는 이유로 그대로 보도 내에 ‘복붙’하여 소개하는 것은 그 범죄행위에 적극 가담하는 것입니다. 

 

문제 보도 유형 ④ 가해자 측에 온정적 시선 보내기

피해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보도와 더불어, ‘가해자 혹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해서는 매우 온정주의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현행 가이드라인은 이와 관련해 주로 ‘가해자, 혹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일방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데요. 이 최소한의 규정조차 당연히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04 신중하게 보도하기

•언론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마치 확정된 진실인 것처럼 오인될 수 있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 중 ‘기사 작성 및 보도시 주의사항’

8.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및 변태적 성향, 절제할 수 없는 성욕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성폭력 범죄의 원인이나 범행 동기에 대하여 잘못된 통념을 심어주는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7.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진실인 것처럼 여과 없이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잘못된 통념 재생산

9. 자신의 가해를 변명하는 가해자의 말을 부각시켜 보도하지 않는다.

 

‘가해자 변명 여과 없이 받아쓰지 말라’는 현행 지침부터 ‘외면’ 

최근 이런 상황은 연출가 이윤택 기자회견 보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다른 유형의 보도에서는 비교적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 온 저녁종합뉴스에서조차 무차별적인 따옴표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가해자 일방의 주장을 따옴표로 제목에 무작정 받아쓰지 않은 방송사는 <화만 키운 사과 연극계 제명>이라는 제목을 붙인 MBC 단 한 곳뿐이었는데요. 이런 MBC조차 온라인 송고용 기사 제목은 <이윤택 “성추행, 죄의식을 가지면서 욕망 억제 못해”>였습니다.   

7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의 19일 이윤택 기자회견 관련 첫 보도 제목 
7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의 19일 이윤택 기자회견 관련 첫 보도 제목  ⓒ민언련

 

그러나 이미 기존 가이드라인은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는 식의 이런 가해자의 황당한 변명을 부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변명들로 성폭력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성욕으로 인한 실수라는 식의 기존 통념들을 강화하고 가해자의 폭력을 정당화할 빌미를 제공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피해 사실 폭로로 인한 업계 피해 부각’ 보도도 범람 

더 심각한 것은 아예 대놓고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를 두둔하는 보도입니다. 주로 ‘피해자의 폭로로 인한 가해자나 업계의 상처나 피해’를 부각해 보도하는 유형을 말하는데요. 이는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가 아닌 미투 운동에 동참한 피해자를 문제적 인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악질적입니다.  

우선 ‘피해 사실 폭로로 인한 업계 피해’를 부각하는 보도로는 조선일보 <‘최영미 미투’에 문단이 두 쪽>(2/8)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보도는 성폭력 범죄가 아닌 ‘최영미 시인의 미투 운동 동참’이 문단을 두 쪽 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최영미 시인의 ‘미투(Me Too)’를 둘러싸고 국내 문단이 두 갈래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이 미투 운동에 대한 문단 내 부정적 발언을 여과없이 나열하고 있기도 합니다.

문화일보 <최영미 ‘미투’ 폭로에 동조·반발… 발칵 뒤집힌 문학계>(2/7) 역시 범죄 행위보다 ‘미투 폭로’에 문학계가 발칵 뒤집힌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충청투데이 <연극계 ‘미투’ 바람 연극제도 역풍 맞나>(2/22) 또한 연극제 위기의 원인으로 ‘이윤택 연출가의 범죄행위’가 아닌 ‘연극계 미투 바람’을 꼽고 있습니다.

심지어 해당 보도는 한 집행위 관계자의 “연극제를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선 혹시라도 대전지역에서 비슷한 폭로가 이어질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지역 내 미투운동이 확산되면 올해 대한민국연극제는 그야말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미투 운동이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노골적 소망을 담은 발언을 여과 없이 전달하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 이런 상황에서 업계에 피해를 끼친 것은 가해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보도의 제목이나 글의 맥락은 ‘가해자나 범좌 행위 그 자체’가 아닌 ‘이를 세상에 알린 행위’가 문제적 행위자인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미투 운동으로 인한 가해자 피해’ 부각 보도도

업계의 피해보다 가해자로 지목된 그 ‘개인’의 피해 양상에 초점을 맞추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뉴시스 <‘성추행 논란’ 이윤택 “공개 사과하겠다”…극작가협 “제명”>(2/18)입니다.

이 보도의 기존 리드문은 “미투가 면극계 대부로 불리던 이윤택 연출가를 박살내고 있다”인데요. 무고함이 증명된 상황이 아님에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를 사실상 피해자로 묘사한 셈입니다. 가해자를 박살내는 ‘원흉’으로 ‘미투’를 꼽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해당 보도는 이후 슬쩍 리드문이 수정되었는데요. 수정된 리드문은 “‘연극계 대부’로 불리던 이윤택(66)연출가가 성추행 논란에 대해 직접 사과하겠다고 밝혔다”입니다.

 

‘업적․재능’ 강조하며 가해 행적 물타기

가해자가 사회적 저명인사로 ‘나름의 업적’이 있을 경우, 이를 부각하며 범죄 행위를 희석시키려는 경향도 두드러집니다. 이번 미투 운동이 문화예술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이런 보도 역시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전북도민일보 <고은 시인 미투 논란, 군산 시민들 당혹>(2/8), 스카이데일리 <고은 밉다고 작품까지…성추문에 멍드는 ‘민족영혼’>(2/19) 등의 보도가 이런 유형인데요. 모두 고은 시인의 업적을 부각하며 ‘미투로 그의 업적이 손상될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범죄행위에 대한 평가와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를 별개로 하자는 주장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내 거장으로 평가받던 인물을 대상으로 쉽지 않은 폭로가 제기된 시점에 곧바로 이런 고민을 내놓는 것은, 해당 매체가 성폭력이라는 범죄와 이로 인한 피해의 무게를 얼마나 가볍게 보고 있는지를 증명할 뿐입니다. 

 

‘개인적 인연’까지 들먹이면서도 피해자 고통만은 외면

재능 및 업적 부각 보도의 연장선상에서, 가해자 개인과의 사적인 인연이나, 사건과 전혀 무관한 개인의 긍정적 특성을 부각하는 보도 역시 이런 가해자 감싸기 보도로 분류됩니다.

시빅뉴스 <충격적인 이윤택 성추행 파문...부산 문화계에 불어 닥칠 찬바람이 걱정스럽다>(2/21)는 표면적으로는 ‘문화계’를,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성추행 파문에 휘말린 이윤택’을 걱정하는 보도인데요. 이 과정에서 놀랍게도 필자는 ‘이윤택과 자신의 과거 개인적 관계’를 늘어놓으며 어딘가 그리운 옛 추억에 잠기고 있습니다.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그와의 개인적 관계를 얘기한다는 것은 객적인 일일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이윤택 씨와 인연이 많다. (…) 세상을 비웃는 듯한 시니컬한 눈매, 카랑카랑한 하이톤의 목소리는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줬다. (…)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풍모와 성격을 가진 사람이 글을 쓰면 기가 막힌 시어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 이윤택은 외모는 그래도 시는 해맑고 아름다웠다”

이처럼 이윤택 씨를 두둔하느라 애를 쓴 필자는 성추행 범죄 행태와 관련해서는 과거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얘기를 나누던 공간인 “아지트 역시 후배 여자 단원들로부터 안마를 받던 성추행의 현장이었지 않았나 싶어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든다”고 표현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받았을 성폭력의 고통을 ‘본인의 기분’에 초점을 맞춰 ‘조금 찝찝한’ 정도로 진단한 것부터 어이가 없습니다.

기사 말미에는 연희단 패거리 해체와 창작극 공연 취소에 대한 아쉬움까지 드러나 있는데요. 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 외형적인 연극계 손실에만 방점을 찍는 이런 보도는 우리 사회의 성폭력 근절에 역행하는 심각한 문제 보도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 보도 유형 ⑤ 부적절한 용어 사용으로 범죄의 심각성 희석  

현행 가이드라인은 언론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가해자의 책임을 희석하지 않더라도 ‘범죄 행위에 대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범죄자를 부를 때 희화화된 속칭을 사용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용어처럼 사건의 폭력성을 희석시키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

잘못된 통념 재생산

10. 폭력성을 희석시키는 용어를 사용해 사건이나 가해자를 지칭하지 않는다

 

‘폭력성 희석시키는 용어’ 사용은 여전

그러나 이러한 가이드라인 역시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 <‘슈퍼 갑 교수’의 나쁜 손 고발합니다>(2/26)는 대학 내로 이어진 미투 운동의 사례를 보여주며, 명백한 범죄인 교수 성희롱을 ‘나쁜 손’이라는 유아적 표현을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역시 <‘이윤택의 나쁜손’ 폭로한 000>(2/19), <검은손·나쁜입으로 울고웃겼나…연예계 덮친 ‘미투’>(2/23) 등의 제목을 통해 성폭력이라는 범죄 행각의 폭력성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몰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언론이 오용하는 대표적 범죄 용어 중 하나입니다.

몰카라는 용어 안에는 불법적 의미 뿐 아니라 유희적 의미도 함께 담겨 있어 범죄의식 약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불법 촬영, 불법촬영장비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언론이 관련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굳이 ‘몰카’라는 용어를 부각하고 있습니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측에서의 표현이 ‘몰카’였다고 해도 중앙일보 <서울예대에 번지는 ‘미투’ 불길… ‘강간 몰카’ ‘동물 짝짓기 흉내’ 피해 고백 이어져>(2/21) 등에서처럼 이를 그대로 제목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급적 기사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제목에서는 불법 촬영 등의 공식 용어를 사용하고, 본문 안에서도 각주를 달아 정확한 표현이 무엇인지를 정리하여 주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최악의 보도는 온라인 송고용 제목이 <후배 여경 알몸 ‘몰카’ 찍은 경찰 ‘징역 3년’>이기도 한 TV조선 <후배 여경 ‘몰카’ 성추행…50대 경찰 징역>(2/1)으로 보입니다.

해당 보도는 ‘몰카’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경’이라며 피해자의 성별 특성을 부각하고, 심지어 온라인 송고용 제목에서는 ‘알몸’이라는 정보까지 함께 부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료화면을 통해 피해 당시 상황을 재연까지 하고 있는데요. 관련 소식을 전한다는 빌미로 저녁종합뉴스에서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 보도 유형 ⑥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성폭력 사건 활용 

성폭력 사건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사건이 특정 집단에 미치는 영항’이 아닌, ‘어떻게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입니다.

가해자가 소속한 집단 자체를 낙인찍고 비방하기 위한 ‘소재’로 성폭력 사건을 이용할 경우, 일차적으로는 사건의 본질이 왜곡될 수 있으며, 나아가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를 향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상황이 불거지면서 피해자 및 폭로자들의 인권 역시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피해사실을 공개한 이들 뿐 아니라 피해 사실 공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타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현행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은 언론이 성폭력을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이용하는 것은 물론, 공격의 소재로 이용하는 행태를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것’ 조차 금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성폭력 사건 이용

성폭력을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이용하거나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이용하는 행태를 여과 없이 보도하지 않는다

 

피해자 인권보다 ‘정치적 목적’이 앞선 보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도 ‘성폭력 사건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성폭력 의혹제기가 불거지자 ‘동문’이었고, 적극적 지지자라는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 책임론을 적극 부각한 보도입니다.

문 대통령이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력 행위에 조력했거나, 그러한 성폭력 행위를 할 배경(권위)을 조성하는데 직접 기여했거나, 성폭력 행위를 인지하고도 방치하거나, 추후 그를 공적으로 기용했다면 책임을 물어 함께 언급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윤택은 문 대통령의 동문이거나 지지자이기에 그간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며, 문 대통령이 이를 사전에 인지하고도 외면했다고 볼 근거 역시 전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인연과 정치인들의 공세, 네티즌의 반응을 들먹이며 이윤택 성폭력 의혹 보도에서 문 대통령을 의도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성폭력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의 정치적 공세에 더 관심을 둔 행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윤택 성폭력 의혹을 전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함께 언급한 보도 검색 양상
이윤택 성폭력 의혹을 전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함께 언급한 보도 검색 양상 ⓒ네이버

조선일보 <작년 9월 문대통령 방미때… 파견 공무원이 여인턴 성희롱… 청, 쉬쉬 하며 직위해제로 매듭>(2/7)의 경우 기사 내용만을 놓고 보면 ‘청와대 순방 과정에서 성희롱 사건이 있었으나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청와대 측 입장을 전달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다만 ‘쉬쉬하며’라는 표현을 통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청와대 측 은폐 의도를 단정․부각하고 있으며, 이후 청와대가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이 원하지 않아 사건이 공개되지 않았을 뿐 가해자에 대해서는 곧바로 징계절차가 이뤄지는 등 사후조치가 이뤄졌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이후에도 이를 반박할 근거나 정황 없이 사건 자체를 언급한 관련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놓았다는 점은 성폭력 사건의 정치적 활용 의심 여지를 남깁니다.

또한 이와 관련해 TV조선이 내놓은 <청, 성희롱 사건 ‘쉬쉬’…야 “은폐 의혹”>(2/7) 역시 청와대가 ‘피해자가 사건 공개를 원치 않았으며, 2차 피해를 우려해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이후임에도,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사건을 숨기지 말았어야 한다’ ‘윤창중 대변인 사건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공세를 그대로 나열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정치권 공세 소개에 의존한 것인데요. 만일 피해자가 정말 사안 자체가 이슈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왜 숨겼냐’는 이러한 정치권 공세 자체가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도 바른미래당이 정부여당의 잇단 성추문에 대한 논평이라며 내놓은 ‘더듬어민주당’이라는 제목의 논평은 성폭력 범죄를 명백히 희화화시킨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뉴스1 <바른미래당, 정부·여당 잇단 성추문에 “더듬어 민주당”>, 동아일보 <심기준 비서관 ‘성추행 혐의’…野 “국격 실추” “더듬어 민주당”>, 조선일보 <여의원 비서관, 평창서 성추행… 야 “더듬어민주당”>, 머니투데이 <정부·여당 잇단 성추문 파문에…야 “더듬어민주당” “목불인견” 비판> 등이 이를 문제의식 없이 제목에 인용하여 받아쓰기도 했습니다.

 

‘미투 운동, 진보 공격 프레임 악용’ 주장은 괜찮을까?

성폭력 사건의 정치적 악용 양상에 대한 우려는 최근 방송인 김어준 씨가 팟캐스트를 통해 ‘진보적 지지자를 공격하기 위해 미투 운동을 진보를 공격할 프레임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하면서 다시 크게 불거졌습니다. 

물론 앞서의 사례 뿐 아니라 뉴데일리 류의 매체는 이미 <성(性)의 민주화? 좌파 성추문 침묵 카르텔>(2/26) 등의 보도를 통해 피해자 인권이나 사건 해결보다 가해자 소속 집단을 범주화 시킨 뒤 정치적 비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는 명확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보적 지지자 공격 프레임’을 특정하여 우려할 경우, 향후 ‘진보적 인사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들’은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 뿐 아니라 ‘진보 공격 의도’를 함께 의심 받는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습니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역시 사건 공개 이후 그 집단이 겪게 될 피해 상황보다는 ‘피해자 인권과 사건 해결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공개된 사례에 대한 정치적 악용 행태는 단호하게 지적하고 ‘진영’보다 ‘성폭력 사건’이라는 사안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두가 감시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언론과 정치권의 ‘성폭력 사건 정치적 이용 행태 책임’을 피해사실을 공개한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성폭력 가이드라인 및 취재 보도지침 보다 구체화하되, 언론의 인권 감수성 높여야  

앞서 유형으로 분류한 문제 보도와 이러한 문제 보도는 크게 △현행 가이드라인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언론사가 어긴 것 △가이드라인에 원론적인 지침정도만 명시되어 있는 것 △아예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나뉩니다. 

이 외에도 사안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내놓지 않거나, 반대로 허술한 분석으로 문제를 ‘적당히 해설’하고 끝내버리는 보도,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보다 그 사건으로 인한 주변인들의 경제적 손실을 부각하는 보도 등 적지 않은 문제 보도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투 운동’을 직접적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탓하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희화화하거나 축소 해석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 예시는 경향신문 <장도리/2018년 2월 15일>을 들 수 있습니다. 이날 장도리는 위 두 컷에서는 “나도 당했다” “미투 바람이 야만의 시대를 몰아내고 있다”라며 여성들의 미투 운동 참여 모습을 그린 뒤, 아래는 “남자들도 미투”라며 명절에 전을 부치며 “나도 일할 줄 안다”고 말하는 한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만평의 소재로 미투 운동을 활용한 것이라지만, 이는 ‘미투’라는 말 자체의 1차적 뜻을 활용한 언어유희일 뿐입니다. 

특히 한겨레 <“미투 지겹다” “미쓰리”…성폭력 피해 도 넘은 조롱>(2/7) 등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음식을 주문하면서도 보란 듯이 미투를 외치는’ 등의 방식으로 미투 운동에 대한 각종 조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미투 운동이 향후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한 폭로를 넘어 이후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폭로하고 고발하는 운동으로 확장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미투 운동이 개인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연대하고 문제를 개선해나가자는 본 취지와는 무관한 말장난으로 소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미투 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불거진, 피해자 개인이 아닌 피해자 운동 자체에 대한 폄훼․비판 표현이나 사건 진상 규명에 대한 피해자 책임론 등과 관련해서는 현행 가이드라인의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 문제 보도 속출의 근본 원인을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성폭력 가해자와의 과거 인연을 부각해서 범죄 사실을 희석해서는 안 된다고 가이드라인에서 말해주지 않아 그런 기사가 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00’ 관련 보도의 클릭수가 더 높고, 성폭력 관련 보도 댓글을 통해 사건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 엄연한 현실에 대한 책임을 개별 언론사와 개별 기자들만의 탓으로 모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봐야 합니다. 성폭력 관련 가이드라인을 보다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수정 보완해야 하며, 만들어진 규정을 언론인들이 충실히 인지․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언론인의 인권 교육이 시급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떤 보도를 문제 보도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감시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이 글은 민언련이 2018년 2월 1일부터 26일까지 관련 보도를 분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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