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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차 스포츠 국제대회 전문가가 본 평창올림픽

'평창은 소치와는 달랐다.'

  • 박수진
  • 입력 2018.02.25 12:42
  • 수정 2018.02.25 13:02

[허프 인터뷰] 2020 도쿄올림픽조직위 마케터 하오키 타카유키

ⓒsujean park

평창동계올림픽 현장에는 다음 올림픽들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강원도를 찾은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관계자들 중에는 경력 17년차 스포츠 마케터이자 현 일본 프로 아이스하키팀 니코 아이스벅스의 최고운영책임자인 히오키 타카유키씨도 있다. 2002한일월드컵부터 지금까지 숱한 국제 대회와 프로 대회를 경험해온 전문가가 본 평창올림픽은 어땠을까? 허프포스트코리아가 올림픽 막바지를 맞은 강릉올림픽파크에서 그를 만났다. 

 

- 평창에 온 이유는?

 

= 2020 도쿄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을 담당하고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 폐회식 중 일본 파트에 참여한 바 있다. 또 스포츠 마케터로서 이런 국제 대회에 관심 있는 기업 클라이언트들과의 일 때문에 오기도 했다.

 

- 2016 리우올림픽 폐회식에서 도쿄를 소개하는 영상과,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슈퍼 마리오가 돼 폐회식장에 나타난 게 큰 화제가 됐다. 정치인이 주인공급으로 등장하는 데 대한 반대는 없었나? 일본 내 반응이 궁금하다.

 

= 아주 좋았다. 그 정도로 좋을지 몰랐다. 국제적으로도 반응이 좋았지만 일본에서는 훨씬 더 좋았다.

치인을 스포츠 행사의 한가운데 세우는 데는 장단점이 있다. 특히나 아베는 현직 총리였다. 그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팀에서도 많은 회의를 했다. 누군가 한 명이 (슈퍼 마리오가 돼) 일본으로 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역할을 한다면 누가 좋을까? 수영선수? 아티스트? 아니면 그냥 슈퍼마리오 인형이 튀어나오는 걸로 할까? 국왕은 과한 선택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가 파이프 안에 들어가 마리오처럼 튀어나오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베 총리를 처음 제안한 건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이었던 모리 요시로 전 총리다.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대찬성이었다. 논쟁이 있을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오케이를 받았고 리우 폐회식 당일에는 더욱 엄중한 보안 속에서 모든 게 진행됐다. 아베 총리는 군 기지에서 대기했다.

 

2016 리우 올림픽 폐회식에서 파이프에서 튀어나온 슈퍼 마리오를 연기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2016 리우 올림픽 폐회식에서 파이프에서 튀어나온 슈퍼 마리오를 연기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David Ramos via Getty Images

 

- 평창 개회식은 어떻게 평가하나?

 

= 잘 했다. 공연도 좋았다. 물론 엄청나게 춥기는 했다. 서너시간 동안 천장 없는 곳에 앉아있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방한 키트를 나눠줘서, 그 덕분에 살았다.

무대 디자인도 아름다웠지만 특히 좋았던 건 성화 봉송이었다.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성화를 들면서 화합의 메시지를 보여줬고, 김연아의 등장도 좋았다. 김연아는 여전히 아름답고, 너무나 멋지고, 천사 같았다. 성화도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평창 개회식을 두고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저렇게 했으면 나았겠다는 비판들을 쉽게 하지만 정부로부터의 제약, 시설면에서의 제약, 날씨로 인한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일 거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평균 이상이고, 좋았다.

 

- 개회식에 대해 어떤 비판들이 나왔나?

 

= 선수 입장이 너무 평범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좀 새롭게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건데 자칫 지나친 연출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객석에서 자막을 보여준 건 나는 좋았지만, 빛이 너무 강해서 관중석이 텅텅 비어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케이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게 한국이니까 괜찮다고 본다. 참, 미국 선수단 입장 때 ‘강남스타일’이 나온 게 정말 웃겼다. 아주 좋은 조합이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성화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양옆으로 관객석에 밝은 조명들이 보인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성화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양옆으로 관객석에 밝은 조명들이 보인다. ⓒStefano Rellandini / Reuters

 

- 개회식과 운영을 아울러서, 평창올림픽이 다른 올림픽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 올림픽은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창은 그런 면에서 소치올림픽과 달랐다. 소치는 엄청난 돈을 써서 새 경기장, 새 부대시설을 지어 더 크고, 더 대단한 러시아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평창은 그보다는 정신적인 면에 집중했다. 한반도의 평화 신호를 보이는 데 주력했고, (개회식에서 부른) 존 레논의 ‘이매진’의 메시지와도 통한다. 과거 올림픽들보다 성숙해졌다.

예전 시대의 올림픽은 준비 과정에서 건물이나 고속도로 같은 기반시설을 확충하며 나라 발전의 계기로 삼던 행사였다. 물론 평창올림픽도 여러가지를 새로 짓기는 했지만, 그걸로 ‘우리는 이제 강한 나라’라는 걸 보여주는 데 주력하지는 않았다. 한국은 이미 발전한 나라다. 앞서 말한 것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했다. 그때 서울이 되고자 추구했던 모습의 도시를 여럿 가지고 있다. 이제는 다른 걸 보여줘야했을 때가 됐고, 평창올림픽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스포츠에는 공정, 건강, 공익, 글로벌, 다양성의 이미지가 있다. 여기에 더해, 올림픽 같은 대회는 그 사회가 가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도 한다. 평창올림픽은 평창을 위한 해법, 한국을 위한 해법, 나아가서는 인류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 1984년 LA올림픽이 강조했던 건 다양한 국적과 인종 간의 화합이었다. 그게 그때 그곳에서 필요했던 해법이었기 때문이다. 평창도 그런 역할을 하려한 것 같다.

 

- 2020년 도쿄올림픽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은 건가?

 

=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는 중이다. 서울이 1988년에 한 것을 도쿄는 1964년 첫 올림픽 때 했다. 고속도로를 깔고, 새 건물을 짓고, 컬러TV를 보급하는 경제개발기는 이제 지났다. 2020 도쿄올림픽 역시 성숙하고, 또 미래를 보여주는 올림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건 전체 스포츠계가 가야할 방향이기도 하다.

일본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인구도 줄고,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고, 갈 곳이 점점 없어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 같은 큰 나라와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만의 비전과 미션을 세상에 보여야하는 게 일본의 과제다. 그 열쇠는 아이들이 될 것이다. 일본 아이들뿐 아니라 전세계 아이들. 이들에게 희망과 기회, 도전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42살이다. 나같은 사람들이 선수들과 경기들을 보며 배울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이 도전 정신, 건강함, 노력 같은 스포츠의 기본 가치들을 올림픽을 통해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 ‘다음 세대’들이다. 

 

개회식 공연 중
개회식 공연 중 ⓒDamir Sagolj / Reuters
개회식 공연 중
개회식 공연 중 ⓒToby Melville / Reuters

 

- 현재 일본 프로 아이스하키팀 아이스벅스의 COO(최고운영책임자)다. 한국 선수들과도 교류가 많은 걸로 안다. 아이스하키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인가?

 

= 2009년 재밌을 것 같아 하키팀에 합류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안양한라, 하이원 같은 한국팀들과 일본 내 팀들이 다 같은 아시아리그 소속이다. 나는 스카우터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든 선수들과 다 알고 지낸다. (지난해 은퇴했고 이번 올림픽에서 KBS 해설위원로 활동한) 송동환 전 선수는 베프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무렵까지, 일본에서 아이스하키는 야구, 축구 다음으로 인기가 있었다. 물론 야구는 한참 더 인기가 있기는 하지만. 나가노 이후 아이스하키의 인기가 죽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J리그가 커지고 인기가 올라가면서 방송국들이 아이스하키 대신 프로축구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한 것. 아이스하키 팬이었던 당시 일본올림픽위원장이 퇴임하면서 조직적인 관심이나 지원이 줄어든 영향도 컸다. 이때는 경기가 나빠진 시기이기도 했다. 아이스하키팀들은 모두 기업 소속이었는데, 기업들이 아이스하키팀을 없애면서 10개였던 프로팀이 4개로 줄었다. 4개팀 가지고는 리그를 못 만드니 일본, 한국, 러시아, 중국 팀들이 모인 지금의 아시안리그가 생긴 것이다. 16년 전 일이다.

 

-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의 경기를 봤나? 소감은?

 

= 아이스하키는 모르는 사람끼리 경기할 수 있는 유일한 동계올림픽 팀종목이다. 컬링은 항상 같은 멤버끼리만 팀을 구성하지 않나. 아이스하키는 선수 교체가 된다. 그러니 정부가 단일팀을 만들라고 주문하기 쉬운 종목이었을 것이다. 대회 직전에 급하게 단일팀을 만들어야했던 양팀의 감독과 선수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정부는 승리보다 통합과 화합의 가치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한쪽이 낫다고 말하기 민감한 주제다.

 

- 승부보다 화합을 택한 것이 좋은 결과를 보였다고 생각하나?

 

= 양쪽의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 단일팀이 만들어진 게 1년 전이었다면, 그래서 같이 훈련도 하고, 경기도 했다면 나는 100% 찬성하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대회에서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수는 모든 팀이 똑같아야 한다. 이번 단일팀의 엔트리는 다른 팀들보다 많았다. 그런 면도 문제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올림픽은 프로 대회가 아니다. 반드시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돈이 걸려있는 것도 아니다. 잘하고 이기는 것보다 세계가 화합하는 게 중요한 대회이기 때문에 좀 다르게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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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Hong-Ji / Reuters

  

- 이제 폐회만이 남았다. 평창 폐회식에서 기대하는 게 있나?

 

= 폐회식은 개회식과는 다르다. 말그대로 클로징(closing)이니까. 지난 3주간의 기억을 한두시간 안에 소화하는 행사다. 폐회식에서는 승자의 감회와 패자의 감회 모두 한 세트다. 마음을 녹이고, 낭만적이면서, 향수를 자극한다. 개회식이 ‘메달 따러가자!’는 파티 같은 거라면 폐회식은 주최국 사람들이 세계에 ‘그동안 즐거우셨나요?’라고 묻는 인사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TV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 순간을 누리면서 한국에 고맙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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