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8년 02월 07일 17시 41분 KST

평창올림픽을 위해 깃발을 들고 노래를 불렀던 10대들의 이야기

학창시절 내내 '평창!'을 애타게 외쳤던 이들이 있었다.

오는 2월 9일, 2018 평창 올림픽이 개막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만의 올림픽이다.

올림픽의 영광을 위한 노력은 강원도민의 몫이었다. 강원도민들은 2001년부터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수많은 학생들의 노고가 컸다.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차출돼 추위 속에서 올림픽을 염원했고, 평창을 홍보했고, 꿈을 노래했다.

평창 올림픽 개최는 2011년 7월에 확정됐다. 그 전까지 학창시절 내내 평창을 애타게 외쳤던 학생들은 지금 20대 중반이 돼 사회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에게 평창올림픽 유치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허프포스트코리아가 학창시절 내내 ‘평창!’을 외쳤던 강릉, 평창 출신의 20대 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 '평창 올림픽'에 대한 가장 오래 전 기억
Pyeongchang County Office

″’2010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가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안 됐던 때에 났어요.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가, 월드컵 당시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체육관에 주민들이 다 같이 모여서 경기를 보곤 했어서 그 발표도 거기 다 모여서 봤어요. 학생들부터 선생님들, 할아버지 할머니 등 어르신들까지 다 모여 있었고요. 사실 그 당시에는 당연히 다들 될거라고만 생각했죠.

평창에서 처음으로 국제적인 큰 행사를 준비해보는 거였고, 그래서 기대가 컸던터라 발표 후에 눈물 흘리시는 분들도 계시고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 때는 전국적으로는 반응이 적었는데 오히려 동네 주민으로서는 분위기가 가장 핫하고 다들 기대가 많았던 터라 크게 기억에 남네요.” (김새미, 평창 출신)

″중학교 때부터였어요. 보통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에 학교를 등교하면, 동계올림픽이 반드시 유치돼야만 한다는 교육을 듣는 동시에 부족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유혹을 받곤 했어요. IOC 위원들이 오시는 날, 나가서 깃발을 흔들면 봉사시간을 3시간씩 준다는 그런 달콤한 제안이었죠.

Jo Yong hak / Reuters

결국 그 추운 날씨에 나가서 ‘예스 평창’ 적힌 깃발 흔들고, 그 분들이 버스로 이동하시면 우리는 도보로 이동해서 깃발 흔들고. 막 환호하다가 버스가 지나가면 조금 뭔가 허탈함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우리의 열정을 보여주면 이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 움직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처음엔 봉사활동 시간을 받아야 하고, 동원되기도 해서 갔지만 그 자리에 있는 순간만큼은 잘 됐으면 좋겠다, 이 순간에 내가 있을 수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유치가 확정되기 전까지 매년요. 저뿐만 아니라 강릉·평창 출신들은 모두 이런 기억이 하나 이상씩은 있을 것 같아요.” (전소희, 강릉 출신)

2. '올림픽 유치 노력' 중 가장 큰 기억
YTN
'강원도민대합창' 당시 임단비 씨.

″수능이 끝났을 때 이야기예요. ’2018 강원도민대합창‘이라는 행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2018명의 강릉 시민들이 빙상장에 모여 IOC 위원들 앞에서 ‘꿈’을 노래한다는 그런 행사였어요. 2018명의 시민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다가 아니라, 드레스 코드도 있었어요. ‘스키를 타고 내려와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이 컨셉이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화려한 민트색 패딩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갔죠.

갔더니 연령도 성별도 다양하게, 할머니부터 어린 아기까지 2018명이 스키복을 입고 희망찬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밑에 빙상장에서는 어린 피겨 꿈나무들이 더블악셀을 돌고 스핀을 하고 있고요. 아주 기괴한 풍경이었어요. 그러다가 IOC 위원들이 입장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2018명이 지휘에 맞춰서 ‘I have a Dream’을 희망찬 표정으로 불렀어요. IOC 위원 분들도 재미있다는 얼굴로 사진을 찍어가시더라고요. 아마 그 분들도 평생 그런 장관은 처음 봤을 걸요?” (임단비, 강릉 출신)

″깃발 흔들기를 할 때 어르신들께서 동네마다 버스를 대절해서 모이셨어요. 자발적으로요. 정말 내 지역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그리고 큰 행사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 한번쯤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과 성원으로 오신 거죠. 그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항상 강릉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나와있는 것 같았어요. 저 역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게 진짜 큰 행사고 꼭 이뤄져야 하는 행사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전소희)

3. 올림픽이 평창과 강릉에서 열려야만 했던 이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웃음) 정확한 이유는 잘 몰랐어요. 너무 여기저기에서 올림픽을 이번엔 해야 한다, 이번엔 꼭 해야 한다, 이번엔 반드시 해야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임단비)

″어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좀 주입식 교육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어쨌든 이게 국제적 행사인데 강원도에서 이뤄지는 거고, 그 외에 여러가지 경제적인 효과가 발생한다고 하니까요. 그 밖에 개인적인 이유가 한 가지 있긴 했는데, 죽기 전에 김연아 선수의 피겨를 한 번 실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웃음).” (전소희)

The Chosunilbo JNS via Getty Images

″왜 라는 건 딱히 없었던 것 같고요, 그냥 계속 도전하면 언젠간 될 거라는 그런 암묵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2010년이 떨어지면 2014년에 또 도전하고, 2014년이 안 되면 2018년에 또 도전하면 언젠간 될 것이라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김새미)

4. 두 차례의 실패, 그리고 세 번째 도전
POOL New / Reuters
2011년 7월 6일(한국시간), 2018 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결정됐다.

“2007년이었나? 2014 올림픽 개최지가 ‘소치‘로 선정된 거예요. 되게 쿵 하고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될 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4년이 흘렀죠. 2011년 7월, 4년 전과 똑같은 상황에서 딱 ‘평창’ 그러더라고요. 근데 크게 신기하진 않았어요. 다들 좋아하니까 저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임단비)

″어린 나이에도 유치 실패 소식은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군민 분들이 너무 속상해하시는 걸 방송으로 다 지켜봤거든요. 연세도 지긋하신 분들이라 더 마음이 안 좋았죠. 유치 소식 들었을 땐 정말 기쁜 데다가 뿌듯했어요. 모두가 염원하던 거였고, 실패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꿈이 이뤄진 거니까요.” (전소희)

Jo Yong hak / Reuters
2014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러시아 소치로 선정됐을 당시, 슬퍼하는 평창 지역 학생들.

″대학교 1학년 때, 2018 올림픽 개최지가 선정되기 전에도 고향 친구들과 술자리에 가면 건배사 대신 평창군의 슬로건인 ‘해피700(*평창군의 고도가 700m이기 때문)’을 외칠 정도로 염원이 컸어요. 유치가 딱 된 게 한국 시간으로 밤이었는데, 친구들한테 축하한다는 전화가 계속 오더라고요. 사실 저는 너무 오래 전부터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해서 큰 감흥은 없었어요.” (김새미)

Jo Yong hak / Reuters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확정된 순간, 평창 군민들.
5. 개최를 앞둔 강릉·평창의 모습
NurPhoto via Getty Images

″우선 KTX가 개통돼서 교통이 편해지고 관광객분들도 늘었고요, 공중화장실 같은 경우에도 시설이 좋아졌어요. 다만 숙박 요금이라든지 음식 가격이라든지 바가지 논란이 있잖아요? 그런 부정적인 모습은 조금 우려가 되네요.” (전소희)

″우선 사람이 많아졌고, 관광지나 공공 시설물이 좋게 개선된 건 사실이예요. 다만 저는 대학원생인데, 학교 안에 아이스하키장이 생겼거든요. 그러다보니 학교생활에 조금 영향을 받고 있어요. 정문에서는 차량통행만 가능하다든지, 올림픽 관계자들이 교내에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정문 근처의 카페 가격이 올랐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한다든지, 그런 부분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임단비)

″동네가 좀 더 깔끔해지고, 예뻐지고, 조형물이라도 하나 더 생기고, 이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 것만 봐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김새미)

6. 개최를 앞둔 심정
Huffpost Korea
강릉 시내에 위치한 전광판이 '평창동계올림픽 D-3'을 알리고 있다.

″강릉 시내의 큰 거리에 올림픽 개최 D-데이를 표시하는 전광판이 있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D-200이고 이랬는데, 이제 한자릿수가 됐죠. 일단 강릉에서 살고 있다 보니 현실적으로 교통 문제가 제일 걱정돼요. 택시 같은 경우에 관광객이 늘면서 잡히지 않기 시작했거든요. 사람이 많이 오는 게 지역발전 활성화에 도움은 되지만, 또 많아지니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임단비)

″사실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아요. 물론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제가 가장 많은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하고, 가장 많은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성원보단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큰 걸로 알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강릉, 평창 주민들이 기대한 경제적 효과가 있는데 그런 효과가 만약 미치지 못했을 경우에 가장 염원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거든요. 또 숙박료나 음식 가격 상승 문제 때문에 이 곳을 방문한 분들이 등을 돌리지 않을까, 그런 부분 때문에 부정적 흐름으로 흘러가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이 있어요.” (전소희)

″중간에 준비가 좀 덜 된 모습들을 많이 봐서 걱정스럽기는 했는데, 그래도 지금 마무리가 잘 되고 있어서 모든 우려들을 덮을 만큼 더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김새미)

7. 최순실 이권 개입부터 자원봉사자 착취, 단일팀 등 올림픽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생각

″씁쓸했죠. 하나된 꿈, 하나된 열정이라고 했는데 안쪽으로 보면... 특히 최순실 이권 개입은 우리 모두의 꿈인 것처럼 포장이 돼 있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많은 뒷이야기가 있는데 올림픽을 해도 될까?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또 그렇지만 이왕 했으니까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임단비)

″안타깝죠. 많이 안타까워요. 이게 이뤄지기 전부터도 자연이냐 경제발전이냐, 이런 두 가지의 관점부터 해서 음악감독, 퍼포먼스 감독 등 논란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 사이에서 국정농단이라는 큰 사건이 터졌고요. 저뿐만 아니라 올림픽 유치는 평범한 시민들이 노력해서 개최한 거잖아요. 그 사람들이 정말 염원을 담아서, 그추운 날씨에 손을 불면서, 그 뜻을 밝히며 준비해서 이뤄진 거잖아요. 국정농단은 그래서 정말 화가 나요.

‘이미 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 고장에서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논란에 휩쓸리지 말고,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평창 걱정 많이했는데 잘 됐네,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올림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소희)

″망할 거다, 실패할 거다, 그런 이야기 듣다 보면 많이 속상하죠. 저는 평생 잘 될거라고만 생각하고 한 번도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의견들이 나오는 게 조금 많이 아쉽고요.

국정농단 당시에, 싸이와 효린이 나오는 ‘아라리요’ 홍보 영상을 봤을 땐 이게 정말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좀 많이 바뀐 상황이지만요.

주변 평창군민들 중에 정말 열성을 띄고 열심히 준비하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이런 논란을 딛고, 어떻게든 잘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더 커요.” (김새미)

8. 평창올림픽의 성공 여부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성공할 거라는 큰 믿음이 있어요. 평창군민 입장에서 잘 돼야만 하고요. 밖에서는 안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부정적인 모습도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안에서는 사람들이 굉장히 노력하고 있어요. 준비도 과정에 맞춰 진행되고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군민들이 직접 발로 뛰며 준비한 모습들을 봐 왔기 때문에 올림픽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렇게 믿고 있어요.” (김새미)

″사실,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바깥에서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정적인 생각을 하실 수 있다고 봐요. 어떤 노력이 이뤄졌고, 어떤 성과가 나왔는지 잘 모르실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조금만 더 믿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전소희)

″음... 망하면 어떡하죠?(웃음) 아니예요, 망하지 않을 거예요.” (임단비)

9. 올림픽 이후의 강릉과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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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가 가톨릭 관동대학교 내에 설치된 아이스하키 센터 건설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올림픽 시설물 사후관리가 안 돼서 이걸 다 허문다는 이야기가 도시괴담처럼 내려오고 있어요. 관리가 안 되니까 올림픽 이후에 폭파시킨다든지 허문다든지,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게 걱정되더라고요. 논문을 하나 봤는데, 그런 시설물들을 향후에 강릉과 평창에 사는 노인분들을 위한 복지 시설로 만들거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카지노로 만들면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관광 혹은 복지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임단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요. 일단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교통편이 잘 마련됐으니까 이제 그런 지리적 접근이나 사람들의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을까 싶고요. 그러면서 강원도도 좀 이전보다는 개방적인 지역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찌될 지 모르겠네요.” (전소희)

″사실 평창동계올림픽이 평창 최고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그 밖에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는 지역 축제들도 활성화돼 있으니까 이런 것들을 보러도 관광객들이 올림픽 이후로도 많이 오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새미)

10. 학창시절을 '평창 올림픽'과 함께 보낸 것에 대한 소감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초, 중, 고 학창시절 내내 중간중간 계속 올림픽에 대한 시도와 좌절, 또 시도가 있었죠. 그 당시 제가 학생이라 참여를 했지만, 만약 그 당시 성인이었고 직장인이었다면 그때처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학창시절을 올림픽과 함께 보낸 그 시간이 정말 값진 것 같아요. 그 큰 행사가 정말 내 고향에 이뤄지는 그 과정 속에서 내가 하나의 시민으로서 역할을 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의의라고 생각하고요. 다시 시간을 되돌려도 추위에 떨면서 깃발 흔들 것 같아요. 저한텐 올림픽이 있어서 값진 학창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전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