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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끝없이 이어지는 로힝야 탈출기

콕스 바자르 반도 남쪽에 위치한 사브랑 진입 지점. 미얀마에서 온 로힝야 난민들이 도착하는 곳이다.
콕스 바자르 반도 남쪽에 위치한 사브랑 진입 지점. 미얀마에서 온 로힝야 난민들이 도착하는 곳이다. ⓒSara Creta/MSF

최근 로힝야족이 대규모로 이주한 것이 벌써 6개월도 넘었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자 미얀마를 떠나 방글라데시로 들어오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월 한 달에만 총 3236명의 난민들이 방글라데시로 들어왔고 이로써 2018년 들어 5000여 명이 방글라데시로 새로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8월 25일 이후로 이 나라에 들어온 사람이 벌써 70만 명에 가까웠고, 과거 미얀마에서 벌어진 여러 소요를 피해 온 사람까지 합하면 총 90만여 명의 난민이 방글라데시로 들어온 셈이다.

보트 확보, 뱃사람들이 부르는 비용, 이전에 강을 건넌 친척들이 준 정보, 국경 감시 등 여러 요인에 따라 그날그날 들어오는 난민 수와 강을 건너는 지점이 각각 다르다. 들어오는 사람이 전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매주 수백 명의 로힝야 난민들이 방글라데시 해안에 도착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사람 대다수는 당국의 인도에 따라 콕스 바자르 반도 남쪽 사브랑 진입 지점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국경없는의사회는 매일 이동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새로 온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건강 검진, 일반 진료, 영양 상태 검사를 실시한다. 수용 센터까지 이어지는 이 서비스에는 성인·아동 진료, 중증 환자 확인, 심리적 응급 처치, 환자 이송도 포함된다. 새로 오는 사람 대다수는 맨발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의료팀들이 치료하는 가장 흔한 상처 중 하나는 발이 찢어진 상처다. 방글라데시에 들어오는 로힝야 난민들은 몹시 지치고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2018년 3월 7일, 88가족, 총 332명이 각기 다른 무리로 사브랑 진입 지점에 도착했다. 몇 주 만에 큰 수가 온 것이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또 다른 600~1000명이 나프 강을 건너려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한 그룹은 오는 길에 도둑들을 만나 구타를 당하고 가진 것을 뺏겼다. 아래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이야기

ⓒSara Creta/MSF

3월 7일, 모하메드 라피크 가족은 미얀마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사브랑 근처에 도착했다. 이들은 3월 3일 부티다웅을 떠나 강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후 그들은 샤 포리르 드윕 섬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방글라데시에 도착했다.

“상황은 날마다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더 이상 우리 땅에서는 갈 곳이 없어서 방글라데시로 떠났습니다. 이곳에는 친척이 아무도 없습니다.”

ⓒSara Creta/MSF

같은 날인 3월 7일, 39명의 로힝야 난민들이 미얀마 국경을 건너 방글라데시 쪽 나프 강가에 도착했다. 전날부터 이들은 방글라데시 국경 수비대에 붙잡혀 마그파라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 모하마드 살리프 역시 가족 4명과 함께 도착했다. 모하마드는 가족을 잃어 버린 6세 소년도 데리고 있다. 여기 모여 있는 난민 중에는 생후 2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있는 여성(24세)도 있다.

“우리는 사흘 전에 부티다웅 시내에 있는 알리 차웅이라는 우리 마을을 떠났습니다. 배가 없어서 해안가에서 하루를 기다렸고, 어젯밤에 여기 도착했습니다.” _모하마드 살리프

ⓒSara Creta/MSF

누르 라민(25세)과 그 어머니 수비 카툼(70세)도 미얀마 국경을 건너 방글라데시 쪽 나프 강가에 같은 날 도착했다.

“상황은 무척 나쁩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몹시 복잡했죠. 일하기도 어렵고, 먹을 것을 사러 시장에 나가는 것마저 불가능합니다. 제 형제는 여전히 미얀마에 있습니다. 국경을 건널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한 사람당 5만 짜트(한화 약 4만 원)가 들거든요. 그는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지금도 거기 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부티다웅에 있는 우리 마을 호르무라 파라를 떠났을 당시, 때는 밤이었습니다. 강둑에 도착해서 12시간을 기다려야 했죠. 돈칼리 해변에 머물렀어요. 짐은 다 두고 오고, 옷가지만 몇 벌 챙겨 왔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Sara Creta/MSF

같은 3월 7일, 수비 카툼(70세)은 미얀마 국경을 건너 방글라데시 쪽 나프 강가에 도착했다.

“남편은 살해 당했고, 사위는 사라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살해 당하거나 없어졌죠. 언젠가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지만 앞날은 알 수가 없겠죠.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우리 마을, 우리 집, 우리 땅, 우리 가축을 다 포기해야 했어요. 사람들은 절박하게 떠나길 원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너무 지쳤고 이제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어요. 사흘간 먹지도 못했어요. 너무 힘들어요.”

ⓒSara Creta/MSF

이제 생후 1개월 된 누르 파레마는 3월 7일 사브랑 진입 지점에 도착한 사람 중 가장 어리다. 엄마 누르 안키스가 아이를 데리고 나프 강을 건넜다. 아이 아버지는 5개월 전에 사라졌다. 엄마와 아기는 부티다웅 시내에 있는 고향 마을을 떠나 여기까지 왔다.

ⓒSara Creta/MSF

3월 7일, 알리마는 미얀마 국경을 건너 방글라데시 쪽 나프 강가에 도착했다. 알리마는 부티다웅 시내에 있는 고향 마을을 떠나 왔다. 알리마는 어머니 수비 카툼(70세), 두 아이(모르파이살/4세, 사데카 아비비/2세)와 함께 도착했다.

“이번 위기가 벌어지기 전만 해도 저는 굉장히 단순한 삶을 살았어요. 작은 밭을 일구었고 남편도 사업을 했죠. 그러다가 5개월 전에 남편이 사라졌어요. 어디로 갔는지, 체포를 당했는지, 살해를 당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다들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애썼고, 많은 이들이 사라졌어요. 방글라데시에 오려고 사흘을 걸었어요. 강가에 도착한 이후로 몇 시간을 더 기다렸다가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어요.”

ⓒSara Creta/MSF

같은 3월 7일, 마지다 카툰은 미얀마 국경을 건너 방글라데시 쪽 나프 강가에 도착했다. 마지다 카툰은 부티다웅 시내에 있는 고향 마을을 떠나 왔다. 마지다는 남편과 어린 세 자녀와 함께 도착했다. 막내는 이제 고작 생후 2개월이다.

“떠나는 게 과연 옳은 결정인지 많이 생각해 봤어요. 몇 달을 기다린 끝에 떠날 결심을 했죠. 우리 마을에 있는 모두가 떠났어요. 제 남편은 원래 고기를 잡았는데 최근 들어 일을 할 수 없게 됐어요. 게다가 돈을 구하기도 무척 어려웠어요. 가진 것을 모두 팔아야 했죠. 그렇게 해서 사흘 전에 집을 떠났어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으면 돌아갈 거예요.”

ⓒSara Creta/MSF

같은 날, 자민탄 누르(78세)는 미얀마 국경을 건너 방글라데시 쪽 나프 강가에 도착했다. 자민탄 누르는 부티다웅 시내에 있는 고향 마을을 떠나 왔다.

“최근 3개월 동안 몸이 너무 안 좋았어요. 그렇다고 병원에 갈 수는 없었죠. 어디라도 가려고 하면 체포를 당하거나 검문소에서 붙잡히니까요. 저는 아무런 의료 지원도 받지 못했어요. 약도, 도움도 받을 수 없었죠. 그래서 우리는 고향을 떠나 방글라데시에서 도움을 청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나이도 많고 몸도 아파요. 고향을 떠난 뒤로 해안가에 도착했어요. 거기 가 보니까 음식을 나눠주는 단체들이 좀 있었어요. 배가 없어서 우리는 사흘이나 기다려야 했어요. 그러다가 30~40명이 빽빽하게 함께 배를 타고 이동했어요. 강을 건너는 데 7~8시간 정도 걸렸어요. 사람들이 해안가에서 총을 쏘길래 우리는 배 밑으로 몸을 숨겼어요. 미얀마 강둑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도 며칠 안에 여기 왔으면 좋겠어요. 제 아들 셋도 거기 있어요. 며칠 안에 다들 만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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