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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사상 최초 '이것'을 이끄는 수녀가 건네는 중요한 이야기 (인터뷰)

올림픽 최초로 설립된 성폭력 상담센터의 총괄 책임을 맡은 김성숙 수녀는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용기 있는 미투 운동의 불길이 꺼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다.

9일 개막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 타이틀이 붙은 게 하나 있다. 올림픽 경기장 4곳에 설치된 ‘성폭력 상담센터’가 바로 주인공이다. 아쉽게도 홍보 부족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림픽 중 성폭력을 당했을 때 자원봉사자든 선수든 관람객이든 누구나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경기장 내에 센터를 설치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다.  

한국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으나, NBC 등 외신은 “올림픽은 아주 오랫동안 선수들의 실력을 겨루는 자리였을 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거의 논의되지 못했다”며 “미투 시대에, 한국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에는 성폭력과 맞서 싸우는 센터가 개설됐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성폭력 상담센터의 중심에는 21년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문제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김성숙 수녀(여성 긴급전화 1366 강원센터장, 1366 전국협의회장)가 있다. 성폭력 상담센터 총괄 책임을 맡은 김성숙 수녀는 가정폭력, 성폭력, 인신매매, 성매매 등 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착한목자수녀회 소속. 착한목자수녀회는 미혼모 복지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 춘천 ‘마리아의 집’을 운영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성숙 수녀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인 2017년 4월경부터 센터 설립이 준비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로 20대 초반의 여성이 70% 넘게 몰리면서, ‘여성이 안전한 올림픽’ ‘성폭력 없는 올림픽’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최초로 시작되었다. 평창조직위의 고민을 넘겨받은 강원도청이 지자체의 성폭력 상담소와 협력해 센터를 열게 되었다는 것.

‘올림픽 최초’이기 때문에 매뉴얼 등 기존에 마련된 게 전혀 없어, 모두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패럴림픽 기간인 3월 18일까지 운영되는 센터에는 성폭력 전담 상담원 27명이 근무한다. 모두 여성 인력이다. 이들은 올림픽 종합상황실/ 경찰/ 의료진 등과 연계하여 관련 대응을 해나간다.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자리임을 고려하여, 13개 언어를 지원하는 성폭력 상담 및 조사 통역 체계가 구축되었다.

최초 설립된 센터를 보기 위해 차기 올림픽을 치를 베이징 측에서도 다녀가는 등 평창올림픽의 상담센터는 이후 올림픽에서도 이어질 성폭력 상담소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Huffpostkorea/Yooninkyung

 

아래는 김성숙 수녀와의 일문일답.

- 성폭력 신고는 얼마나 들어왔나요?

20일 오전 기준으로 총 14건의 신고가 들어왔어요. 성폭행은 없고, 성추행/성희롱 사건이 접수됐네요. 피해자, 가해자 유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특정인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노출되면 안 되니까요.

- 신고가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저희는 우선 상담을 통해서 ‘경찰에 신고하자’고 피해자를 설득합니다. 반드시 피해자의 동의가 필요해요. 그리고 사건 접수가 이뤄지면, 경찰에서 정식으로 조사하게 되는 거고요. 저희는 일단 경기장 안에서만 움직여요. 피해자가 만약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면 언제든지 재상담 가능하고, 피해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계속 사후 모니터링을 하면서 지원합니다. 이 센터는 ‘빠른 초기 대응’을 위한 곳이죠.

ⓒHuffpostkorea/Yooninkyung

 

- 그런데 영어 명칭이 성폭력 상담센터가 아니라 ‘성평등 지원센터‘(Gender Equality Support Center)네요. 영어 명칭에 ‘성폭력’이 아닌 ‘성평등’을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흠..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너무 세다’는 반응 때문에…. 영어 명칭이 성평등 지원센터이다 보니, 외국인들이 지나가다가 ‘도대체 여기가 뭐 하는 데냐?’고 매우 궁금해하면서 들어와요.(웃음)

물론 저희는 성평등을 지향하지만, 어떤 서비스를 지원하는지 명칭만 보고선 알 수가 없을 테니까.. 너무 포괄적인 표현이 명칭으로 쓰인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네요. 센터 홍보도 더 잘 이뤄졌더라면, 피해자들이 좀 더 저희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 21년 동안, 여성 폭력 문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긴 시간 동안, 무엇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흠.. 이 일은 끝나지 않는 길과 같다는 것이요.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제가 피해 여성을 위해 싸우는 ‘투사‘인 줄 알았어요. 좀더 지나서는 (투사가 아닌) ‘협조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들의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가는 동반자. 아주 잠깐 그들의 삶에 들어가 (피해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계획해 주고, 함께 빠져나오는 거죠.

힘든 사건이지만, 그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고 주변의 도움이 있다면 결국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세상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표현하는데요. 저는 그 표현에 대해 반대합니다. 상처는 씻어낼 수 있습니다. 상처를 이겨내고 더욱 건강하고 멋있게 살아가는 여성을 저는 많이 보았거든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여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친족 성폭행을 당한 여성 한분이 기억나요. 자살 시도를 많이 했고, 몇번의 낙태와 유산 경험이 있었고. 그 여성 분이 어느 날 새벽에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서’ 낮에는 움직이지 못하고, 이른 아침에 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저한테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가 살 수 있을까요?’라고. 저는 ‘그렇다면, 나와 함께 살아보자’고 했고..

그렇게 함께 4년을 살았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지금은 마트에서 열심히 사회생활 하면서 살고 있어요. 일년에 한번씩 저에게 싱싱한 과일을 보내주기도 하고. 저로선 정말 감사한 일이죠.. (웃음)

ⓒHuffpostkorea/Yooninkyung

 

- 다른 폭력 사건과 달리 성폭력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집중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가 강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왜 노출이 심한 곳을 입었나’ ‘밤늦게까지 술은 왜 마셨나’는 반응을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성평등을 위한 교육도 없고,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에, 여성이 일어서기 아직도 힘든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풍토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피해자를 보고 ‘그래도 저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겠지’ ‘여자가 먼저 꼬리 친 거 아냐?’는 왜곡된 시선들이 우리 사회에 깊이 퍼져 있잖아요. 피해자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국민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어야 하고, 건강한 성평등 의식이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성평등 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물론이죠. 왜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할까요? 왜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병들어야 할까요? 왜 피해자의 대인관계가 불편해지는 걸까요? 왜 피해자가 때때로 자살시도까지 하게 될까요? 주위에서.. ‘네 잘못이 아니야’ ‘(피해를 드러낸) 너는 참 용기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해요.

요즘 저는 ‘공범자’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피해자를 냉랭하게 바라보는 눈이 우리에게 있지 않았나? 저 또한 이 일을 하면서도 그들의 아픔에 더 깊게 공감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쳐다보지는 않았나? 우리는 피해자의 아픔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가? 공범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게 됩니다.

ⓒHuffpostkorea/Yooninkyung
ⓒhuffpostkorea/Yooninkyung

 

-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음.. (폭로된 내용이) 새롭지 않았고요. 그동안 피해 여성들이 꾸준히 이야기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늘 조용했으니까.

- 서 검사의 폭로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용기 있다고 생각하고, 부디 이 불길이 꺼지지 않길 바랍니다. 최근 들어 여성 권익이 전보다 많이 향상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저희의 활동 역시 여성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거고요.

이제는 여성들이 성폭력을 겪어도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강한 용기가 있어요.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가해자로부터 사과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젊은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인식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때랑은 정말 다르죠.

ⓒHuffpostkorea/Yooninkyung

 

-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느낀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억울했어요. 매우 억울했고... 음.. 힘들었어요. 지금도 힘들고. 너무나 많은 피해 여성들이 ‘가족‘을 지킨다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아픔을 그냥 참아버리고... 이런 모습이 ‘미덕‘이자 ‘인내’로 포장되는 걸 많이 보았죠.

‘네가 너무 예민한 것 같다’는 반응 때문에 피해자들은 이야기할 곳이 없어요. ‘누구한테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며 상담하러 올 때 정말 안타까웠어요. 너무 쉬쉬하려고만 하고,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다’며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짐을 얹으니까. (미투 운동으로 인해) 계속 (폭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과연 100분의 1이라도 터진 걸까?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Huffpostkorea/Yooninkyung

 

- 폭력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꼭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하고, 절대로 인생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역 사회마다 성폭력 상담소가 있거든요. 가기 힘드시다면, 1366으로 전화 한통이라도 주시길 바랍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전화상담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피해를 안으로만 삼키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으시길.. 저희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여성 긴급전화 1366의 지역별 전화번호를 보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여성 긴급전화 1366은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1차 긴급 지원 센터로 상담 및 피난처를 제공하며 전문상담소, 각 지역의 정부 기관, 경찰, 병원, 법률 기관과 연계해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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