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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의 시대에 아라키 노부요시는 어떤 질문을 갖게 하는가

그의 사진 수백점이 현재 뉴욕의 성 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 강병진
  • 입력 2018.02.27 15:53
  • 수정 2018.02.27 15:56
Nobuyoshi Araki, “Marvelous Tales of Black Ink,” 2007. Sumi ink on black and white photograph.
Nobuyoshi Araki, “Marvelous Tales of Black Ink,” 2007. Sumi ink on black and white photograph. ⓒPrivate Collection

뉴욕 - 일본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 수백 점이 현재 뉴욕의 성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이 작품들을 일본에서 뉴욕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의 작품 하나가 출국금지를 당했다. 1985년 작, ‘도쿄 럭키 홀’이다. 출국 금지 이유는 ‘너무 음란하다’는 것이었다.

‘도쿄 럭키 홀’은 동명의 일본 섹스 클럽에서 벌어진 노골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젊은 여성이 ‘해피 베이비’라는 요가 자세로 다리를 벌리고 소변을 본다.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가는 소변은 흥분한 구경꾼이 들고 있는 우산에 떨어진다. 아라키 자신도 등장한다. 소변을 보는 여성의 다리를 잡고 있다.

큐레이터 매기 머스터드와 마크 스나이더에 의하면 일본 세관은 이 이미지가 ‘외설적’이라며 성 박물관으로 보내질 작품들 중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소유주인 도쿄의 타카 이시이 갤러리로 돌아갔다. 성 박물관은 다른 곳에서 이 사진의 다른 판을 조달해야 했다.

당국에서 반대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지는 않다. 스나이더는 “아라키의 작품들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다”고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1970년대에 데뷔한 아라키(77)는 일본의 사회적 규범에 대놓고 저항하며 노골적이고 때로는 비도덕적인 섹슈얼리티를 담은 사진들을 발표했다. 성 박물관은 “아라키 노부요시는 변태, 광인,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글에 적었다. 하지만 머스터드와 스나이더는 어떤 호칭이 가장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라키의 사진에 대한, 또 이 사진들이 지금 갖는 의미에 대한 논의를 일으키고 싶을 뿐이다.

일본 세관에서의 에피소드는 순수 예술과 포르노 사이의 선을 긋는 건 아주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일본에서 외설은 터부일 뿐 아니라 불법이다. “일본의 외설 관련 법에 따르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매체에서도 성기는 모두 블러 혹은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한다.” 1992년에 일본 경찰이 이 법을 적용해, ‘포토마니아 다이어리’라는 제목의 아라키 전시를 중단시켰다. 1천 점 이상의 35mm 사진을 라이트 박스에 전시했던 행사였다. 사진 중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성기가 등장한 사진이 8점 있었다.

“경찰들은 사진 하나하나를 돋보기로 관찰했다!” 아라키가 2011년에 한 말이다. 당시 그는 풍기문란으로 체포되었다.

 

ⓒToby Melville / Reuters

검열과 구류는 아라키의 명성을 높여주는 결과만 낳았다. 50년에 걸친 활동을 통해 그는 비뚤어진 반신반인의 위치에 올랐다.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사진악마’다. (그는 그에 맞춰 백발을 뿔 모양으로 하고 다닌다.) 팬과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들을 그렇게 받아들여 왔다. 아라키의 렌즈에 잡히면 인도의 갈라진 부분과 지나치게 익은 무화과도 성애화된 여성 신체로 보인다.

“땅의 사진을 너무나 버자이너처럼 보이게 찍어서 자위할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 토모 코스가가 2008년에 바이스에 쓴 글이다.

아라키가 ‘사진악마’ 페르소나를 내세운 것, 예술계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권력 불균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남성들이 ‘천재 선동가’를, 여성들이 수동적인 뮤즈를 맡는 경우이다. 또한 이 불균형에 깔린 역학을 명백히 드러낸다. 남성들은 여성의 이미지 뿐 아니라 신체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아라키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스스럼없이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카메라를 카마라라고 부른다. 일본 속어로 ‘마라’는 페니스를 뜻한다. 2011년에 모델들과 어떻게 그렇게 가까워지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섹스는 전희와 같다. 사진은 나중이다. 혹은 그 반대다”라고 답했다.

“물론 나는 모델들과 전부 섹스한다. 그건 확실하다.”

그러나 아라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사진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성차별적인가? 너무 노골적인가? 너무 변태적인가?

“오랫동안 사진가-모델 사이의 좋지 않은 관계는 논의에서 제외되어 왔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언제나 중심 요소일 것이다. 어떤 역학이 작용하는지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다.” 머스터드의 말이다.

 

Nobuyoshi Araki, “Winter Journey,” 1989-90/2005. Gelatin silver print.
Nobuyoshi Araki, “Winter Journey,” 1989-90/2005. Gelatin silver print. ⓒCourtesy of Taka Ishii Gallery Tokyo

 

2018년은 아라키 회고전을 열기엔 어떤 면에서는 묘한 시기다. 막강한 남성 아티스트들이 모델을 희롱하고 공격했다는 이야기들이 자꾸 나오고 있다. 테리 리처드슨, 브루스 웨버, 척 클로스가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전부 부인하고 있다. 아라키의 사진들을 가능케 했던 행동, 관계, 권력 역학을 고려하지 않고 아라키의 작품을 논하기란 쉽지 않다. 아라키의 작품은 전세계 유명 미술관들에 있으나, 어떻게 봐도 전통적인 미술관이라 할 수 없는 성 박물관(로비에 섹스 토이 가게가 있다)에서 전시한다는 점에서 대화가 시작된다.

성 박물관의 두 개 층에서 열리는 “The Incomplete Araki: Sex, Life, and Death in the Work of Nobuyoshi Araki”라는 제목의 전시에서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 아라키의 여러 작품들을 보여준다. ‘논란’(controversy)을 가이드로 사용하고 있다. ‘논란: 아라키 vs. 일본’, ‘논란: 아라키 vs. 서구’, ‘논란: 사진가-모델 관계’를 세 가지 주제로 삼아 수백 점의 프린트, 폴라로이드, 사진집들을 관람자가 이해하도록 돕는다. 아라키가 집착하는 주제들에 따라 분류된 작품들도 있다. 킨바쿠(묶는 것. 결박), 우키요에(17세기 춘화), 사망한 아내 요코 등이다.

요코는 아라키가 최초로 시리즈 작업을 한 대상 중 하나였다. 요코를 찍은 사진들이 아라키의 가장 감상적인 작품들이다. 일본 광고회사 덴츠와 회의하다 만난 두 사람은 1971년에 결혼했다. 아라키는 스냅샷으로 신혼여행을 기록했다. 누드, 낮잠, 조용한 보트 타기 등이다. 비극적이게도 요코는 1990년에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아라키는 관에 누운 요코의 얼굴을 찍었다. 난초 꽃이 주위를 뒤덮고 있고, 작별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손이 함께 나와있다. 요코 사망 후, 아라키는 모델 세 명과 오래 사귀었다. 시노, 코마리, 카오리다. 카오리는 지금도 그의 파트너이자 뮤즈이다. (성 박물관에서는 세 여성들의 성은 빼고 이름만 밝히고 있다)

“이러한 관계들은 모두 동의에 의한 것이며 감정적이었다고 묘사된다. 이 모델들은 아라키와의 작업이 그와의 관계와 뗄 수 없다고 느꼈다. 우리는 그 부분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머스터드의 말이다.

 

ⓒMarc GANTIER via Getty Images

 

성 박물관에서 다리가 묶인, 가슴을 드러낸 여성들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보다보면 숨이 막힐 것 같을 수도 있다. 타키 코지가 아라키의 ‘시선 강간’이라고 부른 것의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가 쉽다. 아라키의 500장이 넘는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볼 때 뱃속의 울렁거림이 특히 심해진다. 큰 프린트들처럼 예술임을 주장하는 면이 없기 때문에, 범죄자가 지하실에 숨겨둔 누드 사진 모음 같은 느낌이다. 예술보다는 경찰이 압수한 범죄 증거처럼 보인다.

머스터드와 스나이더에게 있어서는 아라키의 사진 작업의 협력자로 알려진 이 모델들이 제대로 대변되는 것이 중요했다.

머스터드는 “우리는 이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시의 일부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아라키의 사진 옆에 작은 텔레비전들을 설치하고 여성들의 인터뷰를 틀었다. “그는 지상에 내려온 사진의 신이다. 나는 그가 정말로 하늘의 사랑을 받는다고 느낀다.” 시노가 1990년대의 한 동영상에서 한 말이다. 시노는 아라키와 함께 한 작업에 대해서도 야단스럽다. 그들의 관계는 주체-객체의 관계보다는 창조적 파트너십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마음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따듯하다. 아주 심오하다. 사랑도 있다. 그 안에 사랑이 들어있다.”

알려진 바 대부분에 의하면 아라키가 촬영한 여성들은 사진 속의 성적 상황과 교류에 전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성 박물관은 이 건을 재론한다. 작년 8월 한 여성이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올리며 1991년에 일본 십대 잡지 촬영 중에 아라키가 자신을 부적절하게 만졌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녀는 19세였다고 한다(직업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까봐 소송을 하지 않은 이 여성은 성 박물관 측에 자신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전시회장 벽의 설명문에서 성 박물관은 아라키가 예술계에서 저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동의에 의한 ‘예스 아니면 노’라는 우리의 이해가 복잡해진다는 점을 조명한다. “아라키에 대한 최근의 혐의 주장은 더 큰 문제가 걸려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라키 정도로 유명한 남성 사진가라면, 무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신체, 특히 여성의 신체, 여성 개인의 자율성과 관련된 예술 작품 제작의 역학과 조건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도 있다.”

셀러브리티이자 아티스트인 아라키는 언제나 모델들에 비해 권력을 가진 위치였다고 성 박물관 측은 말한다. 그의 유명한 비젼이 촬영 세팅을 결정했고, 그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도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성들, 심지어 처음에는 동의했던 여성들이 촬영 중에 선을 넘었다고 느낀다 해도, 자신이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Courtesy of the Artist

머스터드와 스나이더의 전시에서 중요한 점은 맥락이다. 그들은 아라키에 대한 여러 비난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1999년에 평론가 크리스천 크라바그나가 했던 중요한 질문도 다룬다. 크라바그나는 “젠더 권력 관계 표현에 아주 민감해진 맥락 속에서, 성애화된 여성 신체의 상품화에 기반한 것이 너무나 명백한 사진 작품이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크라바그나는 서구의 감상자들은 끈질기게 남아있는 자신들의 인종차별 때문에 아라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백인 서구인들은 일본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이미지들, 특히 순종과 에로티시즘이 가미된 포즈의 이미지들에는 덜 반대한다는 것이 크라바그나의 주장이다.

성 박물관은 아라키의 복잡한 작품들을 살피며 다양한 질문들을 던진다. #MeToo 운동, 여성들을 착취해온 막강한 남성들에 대한 뒤늦었지만 갑작스러운 책임들이 찾아온 가운데, 여성혐오적이고 대상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을 보는 것은 직관에 어긋나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성 박물관의 세심한 큐레이션 덕에, 이 전시는 유혹적인 동시에 불편하고, 논란을 일으키고 또한 뿌리 깊은 작품들을 만든 아티스트에 대한 시의적절한 숙고를 제공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 순식간에 인기를 얻은 사진가는 아라키 이전에도 있었다. 그것을 기회로 삼아 사진 속 여성들과 함께 자고, 그걸 자랑삼아 떠벌린 아티스트 역시 아라키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엄청난 변화 덕택에, 그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허프포스트US의 Will Nobuyoshi Araki Be Photography’s Last Legendary Dirty Old Man? (NSFW)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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