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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슬럼버'는 '골든슬럼버'란 원작이 필요없는 영화다(리뷰)

원작과 비교할 수록 그렇다.

  • 강병진
  • 입력 2018.02.19 18:10
  • 수정 2018.02.19 18:15
ⓒCJ 엔터테인먼트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던 남자가 하루 아침에 살인범이 된다. 그는 진짜 누구를 죽인 게 아니라, 누명을 쓴 것이다. 음모를 짠 이들은 그를 찾아 죽이려하고, 죽고 싶지 않은 그는 도망자가 된다. 한참을 달리던 그는 생각한다. 내가 왜 도망을 다녀야 하지?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세력을 직접 파헤친다.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 이야기는 강동원 주연의 영화 ‘골든슬럼버’의 대략적인 줄거리이기도 하지만, ‘조작된 도시’(2017)’런닝맨’(2012)등을 설명할 수 있는 맥락이기도 하다. ’골든슬럼버’는 굳이 ‘골든 슬럼버’라는 동명소설을 빌려오지 않아도 됐을 영화라는 얘기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사신 치바’ 등을 쓴 소설가 이사카 코타로의 2008년 작품인 ‘골든슬럼버’는 ‘누명을 쓴 소시민’이란 다소 뻔한 설정을 추억과 인연이 일으키는 우연의 힘으로 돌파하는 이야기다. 누명을 쓰고 도망자가 된 주인공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사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남자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아오야기에게는 그를 기억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대학시절을 함께한 친구들과 과거의 연인이다. 또 TV를 통해 수배가 내려진 아오야기를 보고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직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이거나, 꾀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조직 두목이거나, 과거의 직장동료이기도 하다. 이사카 코타로는 촘촘한 복선을 통해 주인공의 소중한 기억들이 어떻게 그를 살려내는지를 묘사했다. 이 소설은 지난 2010년, 일본에서 사카이 마사토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일본판 '골든슬럼버'는 지난 2010년 한국에서 개봉됐다. 당시 한국 배급을 맡은 회사는 CJ엔터테인먼트였다. 
일본판 '골든슬럼버'는 지난 2010년 한국에서 개봉됐다. 당시 한국 배급을 맡은 회사는 CJ엔터테인먼트였다.  ⓒCJ 엔터테인먼트

원작에서 비틀즈의 ‘골든슬럼버’는 주인공에게 추억을 소환시키는 음악이다. 그리고 그의 추억은 그의 도주를 돕는 힌트가 된다. 한국판 ‘골든 슬럼버’에도 이 음악은 중요한 설정으로 쓰인다. 하지만 아오야기의 한국판 인물인 김건우(강동원)에게 ‘골든슬럼버’는 힌트가 되지 않는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이 주인공의 도주를 응원했던 원작의 묘미를 거의 삭제하고, 음모를 짠 주체와 소시민의 대결에 집중한다. 원작에서 그를 도왔던 다양한 사람의 역할을 의문의 전직 국정원 직원 한 사람에게 맡기고, 주인공은 그 사람 덕분에 누명의 실체를 거의 대부분 파헤친다. 그리고 역시 음모를 짠 사람들의 실체를 향해 직접 뛰어든다. 덕분에 원작소설과 일본영화에 비해서는 액션신과 추격신 등의 비중이 높아졌다. 대신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이 진짜 선한 의도로 도와주는 것인지에 의심하게 했던 원작의 긴장감은 사라졌다.

ⓒCJ엔터테인먼트

원작을 아는 관객이라면, 한국판의 결말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원작에서 주인공 아오야기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만을 달성한다.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로 살면서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세력과 대결하지도 않는다. 다소 냉소적인 결론이지만, 원작은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역시 그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이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한국판의 결말은? 앞서 이야기한 ‘조작된 도시’나 ‘런닝맨’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층의 음모를 세상에 드러내는 통쾌한 해피엔딩을 경험할 수 있겠지만, 2016년과 2017년을 거쳐온 한국 관객에게는 다소 뻔한 결말일 수 밖에. 한국판 ‘골든 슬럼버’는 분명 원작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하지만 원작의 가장 개성적인 부분을 삭제한 각색 때문에 ‘원작과는 다르지만 이미 나온 영화들과는 비슷한’ 영화가 되었다. ‘골든 슬럼버’는 굳이 ‘골든 슬럼버’가 아니어도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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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동원 #이사카 코타로 #골든슬럼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