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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강철주먹 대결, 매니 파퀴아오 vs 플로이드 메이웨더

[신들의 전쟁, 세상을 뒤흔든 스포츠 라이벌③]

  • 김동훈
  • 입력 2018.03.20 12:16
  • 수정 2018.03.20 12:17
ⓒhuffpost
ⓒ폭스코너

2015년 봄, 금세기 최고의 복싱 라이벌전에 지구촌이 들썩였다. 세계 복싱팬들을 흥분시킨 주인공은 복싱 역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와 19년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패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두 선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2015년 5월 2일 토요일 저녁 8시, 한국시간으로는 5월 3일 일요일 낮 12시에 사각의 링에서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맞대결을 펼쳤다.

2015년 5월, 금세기 최고의 복싱 라이벌전

맞대결 당시 두 선수는 금세기 최고의 위대한 복서로 추앙받고 있었다. 파퀴아오는 1995년 플라이급으로 데뷔해 슈퍼밴텀급, 페더급, 슈퍼페더급, 라이트급, 라이트웰터급, 웰터급, 슈퍼웰터급까지 체급을 계속 올려가면서 무려 8개 체급을 석권한 선수다. 통산 전적은 메이웨더와의 경기 전까지 64전 57승 38KO승 2무 5패를 기록 중이었고, 필리핀의 현역 하원의원이기도 했다. 메이웨더는 1996년 데뷔한 이후 슈퍼페더급부터 라이트급, 슈퍼라이트급, 웰터급, 슈퍼웰터급까지 5개 체급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는 동안 47전 전승, 26KO승을 거두고 있었다.

ⓒSteve Marcus / Reuters

이 한판 승부에는 3개의 세계 타이틀이 걸려 있었다. 당시 메이웨더는 WBC(세계복싱평의회) 웰터급 챔피언이었고, 파퀴아오는 WBO(세계복싱기구) 웰터급 챔피언이었다. 그리고 공석 중이던 WBA(세계복싱협회) 웰터급 챔피언 자리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 대결은 명성에 걸맞게 대전료도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총 대전료는 2억 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860억 원이었고, 양측이 6 대 4의 비율로 합의함에 따라 메이웨더가 1억 5,000만 달러, 우리 돈 약 1,720억 원, 파퀴아오가 1억 달러, 우리 돈 약 1,140억 원을 받았다.

이 경기는 3분 12라운드로 펼쳐졌는데, 판정까지 갔기 때문에 1초당 두 선수가 합쳐서 1억 2,000만 원을 벌어들인 셈이 됐다. 흥행수입도 역대 최고인 4억 달러, 약 4,500억 원에 이르렀다. 입장권 가격은 7,500달러, 우리 돈으로 850만 원이 넘는데도, 1차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1분 만에 매진됐고, 2차 티켓 판매분은 이보다 열 배나 비싼 한 장당 8만 달러, 우리 돈으로 9,000만 원이 넘는 돈이었지만 이마저도 동이 났다. 암표 가격은 25만 달러, 무려 3억 원까지 치솟았다. 또 방송 중계권 판매액이 1억 5,000만 달러, 우리 돈 약 1,700억 원, 두 선수와 함께 링에 오르는 주심도 1만 달러, 약 1,1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는 등 역대 복싱 관련 최고액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Steve Marcus / Reuters

경기 전날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계체량 행사는 1만여 명의 복싱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사상 최초의 유료로 진행됐다. 입장료 가격은 10달러였지만 암표는 수십 배를 웃돌아 수십만 원에 거래됐다.

웰터급 몸무게 기준은 147파운드, 즉 66.68킬로그램인데, 메이웨더가 146파운드 66.22킬로그램, 파퀴아오가 메이웨더보다 1파운드, 450그램 정도 가벼운 145파운드, 즉 65.77킬로그램으로 두 선수 모두 계체량을 무난히 통과했다.

두 선수의 맞대결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2007년과 2008년 두 선수와 잇따라 맞붙었던 ‘왕년의 최고 복서’ 오스카 델라호야는 메이웨더의 우세를 점쳤다. 파퀴아오는 쉼 없이 주먹을 뻗는 스타일인데, 30대 후반의 나이를 감안하면 경기 후반에 불리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또 메이웨더는 펀치를 피하는 능력과 수비가 강한데 세고 빠른 잽을 가진 선수가 아니라면 메이웨더를 이길 수 없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국내 최초로 세계 타이틀 2체급을 석권했던 홍수환 씨는 파퀴아오의 KO승을 예상했다. 파퀴아오가 빠르게 움직이며 연타를 때리는 데 능한데, 메이웨더가 파퀴아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또 사우스포, 즉 왼손잡이인 파퀴아오가 오소독스, 즉 오른손잡이인 메이웨더보다 유리하고, 메이웨더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것도 파퀴아오의 우세로 평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도박사들은 대체로 키가 크고 리치가 더 길고, 특히 더 높은 체급에서 경기했던 메이웨더의 우세를 점쳤다.

ⓒSteve Marcus / Reuters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던 ‘세기의 대결’

두 선수의 맞대결 논의는 지난 2009년 11월께 시작되면서 전 세계 복싱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당시 메이웨더가 느닷없이 채혈을 통한 도핑 검사를 주장했고, 파퀴아오가 이를 거부하면서 경기는 무산됐다. 이후 2012년 두 번째 맞대결 협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메이웨더가 파퀴아오보다 많은 대전료를 요구하면서 다시 결렬됐다.

그런데 2015년 1월, 두 선수가 미국프로농구 NBA 경기장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극적인 합의를 이뤘다. 농구장에서 만난 것은 행운이자 우연이었다. 일정이 꼬여서 미국에 하루 더 머물게 된 파퀴아오가 농구장에 들렀는데, 거기서 우연히 메이웨더와 만난 것이다. 이에 대해 파퀴아오는 “메이웨더가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께서 만들어낸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첫 만남을 가지게 된 두 사람은 그날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곧바로 다음 날 메이웨더가 파퀴아오의 숙소를 찾아가 대결을 제의했는데, 이에 대해 파퀴아오가 채혈도 하고 대전료도 40퍼센트만 받겠다고 양보하면서 맞대결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그런데 정말 경기가 시작될지는 끝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사실 양측은 맞대결을 불과 11일 앞둔 2015년 4월 21일까지도 공동 주최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파퀴아오 측 프로모션은 최종 계약 내용에 자신들의 이름이 빠졌다고 했고, 메이웨더 측은 파퀴아오 측이 기존에 계약한 내용을 이행할 마음이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 프로모션은 합의점을 찾으면서 곧바로 티켓 판매를 시작했고, 대회 장소인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와도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맞대결 성사가 너무 늦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메이웨더는 1977년생으로 당시 만 서른여덟 살이었고, 파퀴아오는 1978년생으로 당시 만 서른일곱 살이었다. 전성기가 지나 불혹을 앞둔 나이에 어렵게 맞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이 때문에 둘 다 거액의 대전료에 눈이 멀어 맞붙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엄청난 화제와 관심 속에 치러진 승부는 너무나 싱거웠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두 선수는 헛주먹만 주고받았고, 결국 메이웨더의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인파이터인 파퀴아오가 더 공세적이었고, 메이웨더는 도망 다니기 바빴기에 경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이 많았다.

‘잡초’ 인파이터 파퀴아오 vs ‘엘리트’ 아웃복서 메이웨더

두 선수의 성장 과정은 한마디로 ‘잡초’와 ‘엘리트’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파퀴아오는 1978년 12월 17일 필리핀 민다나오 섬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무렵부터 바다 일을 했고 열두 살 때부터는 집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서 길거리에서 담배와 아이스크림을 팔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다 더 큰 꿈을 위해 필리핀 마닐라로 향했고 단돈 2달러를 벌기 위해 복싱에 입문한 뒤 각종 상을 휩쓸며 복싱계의 샛별이 됐다. 그리고 미국으로 진출, 인생의 멘토가 된 프레디 로치 트레이너를 만나면서 세계 최고의 복서로 성장했다.

메이웨더는 1977년 2월 24일생으로 파퀴아오보다 두 살 가까이 많다. 미국 미시건 주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와 두 삼촌이 모두 복서 출신으로 복싱 가문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열아홉 살이던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해 동메달을 따냈고, 프로로 전향한 뒤에는 슈퍼페더급부터 슈퍼웰터급까지 5체급을 석권했다.

두 선수의 경기 스타일도 성장 과정만큼이나 무척 상반됐다. 한마디로 파퀴아오가 창, 메이웨더가 방패다. 파퀴아오는 사우스포, 즉 왼손잡이 스탠스를 취하는데 169센티미터의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상대 품으로 끊임없이 파고들어 쉼 없이 펀치를 날리는 전형적인 인파이터였다. 메이웨더는 오소독스, 다시 말해 오른손잡이 스탠스로 왼손을 내리고 왼쪽 어깨를 좌우로 돌리며 상대 공격을 쳐내는 ‘숄더롤’이라는 방어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즉 전형적인 아웃복서였다. 키는 172센티미터로 파퀴아오보다 3센티미터 정도 더 컸다.

두 선수의 경기장 밖 생활도 무척 달랐다. 파퀴아오는 첫사랑과 결혼해 화목한 가정을 꾸린 반면, 메이웨더는 결혼한 적은 없지만 두 명의 여성과의 사이에 아이가 넷이나 있다.

파퀴아오는 필리핀 재선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는 정치인이기도 한데, 국민적 지지가 높아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반면 메이웨더는 가정폭력, 내연녀 폭행, 나이트클럽 폭행사건 등으로 끊임없이 말썽을 피우면서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복역한 전력도 있다.

두 선수는 맞대결이 끝난 뒤 한 경기씩만 더 치르고 은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2018년 1월 현재까지도 링에 남아 있다.

메이웨더는 파퀴아오에게 판정승을 거둔 뒤 같은 해인 2015년 9월 안드레 베르토(미국·당시 32세)와의 WBC·WBA 웰터급 통합 타이틀전에서 또다시 12회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49전 전승 행진을 이어갔다.

49전 전승은 영화 <록키>의 실제 주인공인 전설의 헤비급 복서 로키 마르시아노(미국)와 타이 기록이다. 이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메이웨더는 2017년 8월 27일, UFC 챔피언인 코너 맥그리거(아일랜드·당시 29세)와의 대결을 위해 다시 링으로 돌아왔다. 이 경기 역시 복싱선수와 격투기선수의 맞대결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는데, 경기 초반 맥그리거의 강펀치를 클린치(상대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껴안는 일) 등으로 잘 피해 다니던 메이웨더가 결국 중반 이후 완전히 지쳐버린 맥그리거를 10라운드 TKO로 물리치고 마침내 50전 전승 기록을 세웠다.

반면 파퀴아오는 2017년 7월 2일, 호주 브리즈번 선코프 스타디움에 5만여 명의 복싱팬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WBO 웰터급 타이틀매치에서 당시까지 18전(17승 1무)에 불과한 제프 혼(호주·당시 29세)에게 12라운드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파퀴아오의 통산 전적도 59승 2무 7패가 됐다. 판정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자 WBO는 파퀴아오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경기를 재채점했다. 그러나 결과는 원심과 같았다. 파퀴아오 측은 재대결을 추진했고, 2017년 11월 같은 장소에서 재대결이 예정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현재까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나이는 2018년 현재 만 마흔한 살(메이웨더)과 마흔 살(파퀴아오)이다. 둘이 다시 링에 설 기회가 한 번 정도 더 있을지 모르지만, 두 선수 간 재대결이 성사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리고 두 선수의 맞대결은 이제 복싱팬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전설’로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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