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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신 20주 후 낙태 금지'가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이유 때문에라도, 20주 이후에 임신중단을 선택한 모든 여성에게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 모든 임신부는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

태어난 날 곧바로 수술을 위해 근처 병원으로 옮겨진 나의 아기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태어난 날 곧바로 수술을 위해 근처 병원으로 옮겨진 나의 아기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COURTESY OF SARAH ORSBORN

 

2011년 12월 16일은 내 27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임신 중기였고, 태아 초음파 촬영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들떠있었다. 내가 임신한 쌍둥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알게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내 부모님을 초대했고, 검사 후 축하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쌍둥이 초음파 촬영은 시간이 꽤 걸린다는 걸 그 무렵엔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 날은 유독 오래 걸렸다.

 

어두운 초음파실에서 배에 젤을 바르고 앉아있던 나는 기술자가 “의사를 데려와야겠다. 두번째 아기의 머리와 척추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전문가가 와서 아기를 살피는 동안 나는 흐느낌을 억누르려 애썼다. 젤을 바른 내 배는 들썩거렸다.

 

의사는 아기의 ‘레몬 모양’ 머리와 척추를 살폈다. 척수수막류 이분척추(myelomeningocele spina bifida)가 확실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것은 가장 심한 신경관 결손이다.

 

그 날 진찰대에 앉은 나는 척수수막류 이분척추가 쌍둥이 중 위에 있던 아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기는 머리를 내 갈비뼈 밖으로 자주 내밀곤 했고, 내 피부가 늘어나 아기의 머리를 내가 손으로 감쌀 수 있을 정도였다.

 

의사가 우리 아기가 살 수 있을지 죽을지 말했는지 나는 몰랐다. 아기가 걷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래에 있는, 내 골반 깊은 곳에 있는 쌍둥이 자매 아기에게 영향이 있을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사타구니에서 첫 번째 쌍둥이 아기의 딸꾹질을 종종 느끼곤 했다.

 

나는 계속 흐느끼며 다른 방으로 안내받았다. 어두운 초음파 검사실에서 나오니 너무나 눈이 부셨다. 유전 상담사들이 들어왔다. 산부인과 담당의가 와서 전문가들과 함께 스캔을 보았다고 말했고, 내가 흐느끼는 것을 보고 꼭 안아주었다. 의사는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에게 생각해 보고 물어볼 것들을 생각해두라며 다음 날, 토요일에 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아주 어색한 생일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집에 돌아오자 나는 울면서 배를 끌어안고 침대에 쓰러졌다. 눈물로 범벅이 된 낮잠을 잤다.

 

그 날 내가 알게 된 가장 큰 사실은 18주에서 22주 사이의 초음파 촬영은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되는 행복한 날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간절히 바라왔던 임신을 비통함으로 바꾸는 날이 될 수도 있었다. 흑백 화면의 흐릿한 이미지를 보며 의사들이 아기에게 아주 큰 문제가 있다고 해부학적 정보를 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유전 상담사들을 만나  ‘선택지’를 의논하는 날일 수도 있었다.

 

내 인생 최악의 생일을 보낸 이후, 정치인들, 칼럼니스트들이 20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을 들으면 나는 기분이 나쁘다. 젤을 바른 배를 감싸 안고 흐느껴 본 여성들에게 있어, 20주는 그런 선택지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꼭 필요하게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COURTESY OF SARAH ORSBORN

 

우리 아기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우리는 아기를 낳기로 했다. 요즘은 자궁 내 이분 척추 수술이라는 놀라운 일도 가능하지만 쌍둥이가 있어서 할 수 없었고, 우리는 흐릿한 초음파 사진이 어떤 의미였는지 15주를 더 기다려야 알 수 있었다.

 

우리 아기는 척추의 상당 부분이 드러난 채 태어났다. 등골이 내려가 있어 뇌척수액이 잘 흐르지 못해, 머리에 수액이 차 부어 있었다.

 

아이를 낳은 날 안아볼 수는 없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기는 근처 아동 병원으로 옮겨져 태어난 지 24시간 안에 척추 장애 수술을 받으러 갔다. 진단을 처음 받았던 그 운명의 날에 결정한 대로였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우를 예로 들기를 좋아한다는 걸 이해한다. 어쨌든 나는 진단을 받고도 아이를 낳기로 하지 않았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게, 나와 내 딸에게 필요했던(그리고 지금도 필요한)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 파트너가 힘들었던 출산 후 아이들과 나를 돌보며 두 달 동안 유급 휴가를 얻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우리의 선택이 훨씬 어려워질 수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자신들에게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모두가 받을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20주가 임신한 사람의 선택이 끝나는 시점이어서는 안 된다. 18~22주 초음파 검사 결과 낙태, 자궁 내 수술, 특별 지원 프로그램, 각종 테스트가 필요해질 수 있다. 나는 그때 흐느꼈던 나를 돌아보며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한 여성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위해 힘든 결정을 해야 하게 된 여성들에게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

 

치료를 받기가 힘들어서든, 보험 처리가 안 되어서든, 치료비나 방문 비용을 댈 수가 없어서든, 그 어떤 이유 때문이라도 20주 이후에 낙태를 선택한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 모든 임산부는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 진찰대에 앉아있는 기분이 어떤지 결코 알지 못할 정치인들이 자의적으로 정한 잔인한 금지 조치가 아닌 돌봄을 말이다.

 

* 허프포스트US의 Why I Take It Personally When People Talk About Banning Abortion After 20 Week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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