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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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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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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성에 관련 논의는 언제나 우리사회에서 이름이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자 마냥 존재는 하고 모두가 즐기나 입 밖에는 꺼낼 수 없는 음험한 그 무언가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섹스와 성을 메인 테마로 한 'jtbc마녀사냥'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섹스? 그게 뭐가 부끄러워? 부끄러워하는 니가 촌스럽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가고 있음을 목격한다.

하지만 분명 그 섹스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오직 남성 이성애자에게만 예약되어 있다. 아직도 쿨한 섹스라이프 혹은 자유로운 성 가치관을 '여자가' 이야기하면 그들은 앞에서는 마치 새로운 시대의 신-녀성을 마주하는 듯 치켜세우지만 곧 뒤에서는 걸레년이라는 모욕과 함께 그녀를 아는 모든 남자들의 입에 성희롱과 음담패설과 함께 오르내리며 조리돌림을 당한다.

여성의 성욕을 말하기 시작하면 불경스럽고, 음탕한 년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그렇게 섹스가 쉬운데 나랑은 왜 안 자줘?"라며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는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를 마주하는가 한편, 남성의 성욕과는 비견도 되지 못할, "아니 여자한테도 성욕이 있긴 해?"라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남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참, 쓰면서도 웃긴 이야기다. 왜 여성은 성욕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아마 남성주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씌워 놓은 프레임이 바로 <성녀와 창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프레임은 꽤나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옭아매 여성의 위치를 남성의 발 아래 머물도록 유지시켜 왔다. 이런 프레임이 여성으로 하여금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무의식에 심어주었으며, 성욕은 음탕하고 섹스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으리라.

유학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한국 남성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프랑스 남자는 많이 만나봤어?"
뭘 기대하는 걸까? 저 질문을 하는 표정이 얄밉다. 그리고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난 딸 낳으면 유학 안 보낼 거야." 그래서 어쩌라고? 너 같은 아빠한테 태어나서 자랄 딸이 불쌍하다.
"확실히 유학생은 개방적이고 문란해" 니들 인생이나 신경 쓰시고, 내 몸은 대한민국 국가 재산이 아니니 외국 남자랑 섹스를 하든 말든 내 맘대로 하겠다.

난 미성년자일 때부터 섹스와 성에 관심이 많았고, 페미니즘과 서양문화를 어릴 때부터 접하면서 성인이 돼서 자유로운 여성으로서 섹스와 오르가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둘 만의 은밀한 순간들이 오기만을 바라왔다. 하지만 성인이 돼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입문했던 어른들의 신비로운 성의 세계는 생각보다 그렇게 판타스틱 하지 않았고, 오르가슴? 세상에나 그런 게 존재하긴 하는 거야? 싶을 정도라 배신감이 들었다. 아니 뭐 고작 이런 거였어? 아니 이렇게 로맨틱하지도 않고, 심지어 너무 작고 지루하고 아무 느낌이 없는데? 에라이.

그렇게 나는 한국을 떠났다.
프랑스에 정착하고 2개월즈음, 처음 내게 오페라를 보러 가자던 프랑스 남자를 사귀었는데 하루는 같이 촛불을 켜놓고 와인을 마시던 도중 분위기가 진전이 됐다. 하지만 우리에겐 콘돔이 없었고, 프랑스는 저녁 8시가 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당시만 해도 '노콘노섹' 개념이 희미하던 내가 '안전한 날'임을 강조했고,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는 "음, 에로디, 잠시 불 좀 켤래?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아니아니, 우린 오늘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라며 모든 걸 멈추는 게 아닌가. 그리고 " 넌 왜 피임을 한다고 생각해? 단지 임신을 피하기 위해서? 아니, 이건 우리 서로의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거야. 다시는 네 인생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콘돔 없이 섹스하겠다는 그런 위험한 생각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그렇게 앞으로는 콘돔 없이 절대 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우린 결국 달빛 아래서 손만 잡고 잠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듬해 프랑스어가 늘어가며 본격적으로 연애사업이 시작됐는데, 기본적으로 이곳에선 썸의 개념이 모호하다, 처음 만나서 서로 호감이 있고 데이트를 하면 보통 3번 안에 섹스까지 하게 되는데 그 과정마저도 서로를 알아가고 잘 맞을지 탐구해 나가는 과정 중에 하나이다.

섹스에 대해서 여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섹스 후에 신비감이 떨어졌니 마니 하지도 않으며 섹스 이후 연락문제 때문에 상처받지도 않는다. 우리가 즐거운 순간을 보냈고 통했다고 느꼈다면 관계는 더욱 발전된다. 기본적으로 여성을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마인드가 큰 차이다. 데이트를 하면서 내가 원하면 먼저 "너네 집으로 가서 좀 더 같이 시간 보낼래?"라고 섹스를 먼저 제안하기도 하며, 데이트가 끝나고 헤어질 때쯤 남자가 "이제 그럼 우리 집으로 같이 갈래? 아니면 너네 집으로 그냥 돌아갈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섹스가 마지막 종착역이 아닌 서로를 알아가는 시작점인 것이다.

밤 9시에 썸남의 집에 도착해서 같이 축구를 보고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내가 그 이후의 과정을 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난 집에서 같이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에 동의했지 자연스럽게 섹스까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니깐. 물론 그 친구는 내게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데 실패했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아 결국 우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한번도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다. 벨라, 쉐리, 나의 슈슈, 슈피, 쁘띠 미니 등의 귀여운 애칭과 하루에도 여러 번씩 사랑스럽다는 듯 표현에 풍부하고 로맨틱한 상황을 자주 연출하는 유럽 남자들과 연애를 하다 보면 "외국 남자들이 동양인 여자인 너랑 어떻게 한 번 자 보려고 수작 부리는 거야~"라는 비꼼을 많이 듣는다. 워낙 성매매에 익숙해서 섹스의 절차에 대해 잘 모르나 본데 원래 여자의 호감을 얻으려면 이렇게 하는 거다. 돈 주고 여자를 사는 게 아니라.

남자들은 계속 내가 만족하는지 묻고, 어떤 걸 특별히 더 원하는지, 입으로 해주는 섹스를 좋아하는지, 어떤 체위를 좋아하는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이건 좋은지 저건 좋은지, 오르가슴을 느꼈는지, 끝낼 준비가 되었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나도 오르가슴을 연기하지 않고, 이런 자세가 잘 느끼는 것 같으니 좋은 것 같고, 섹스하기 싫은 날은 싫다고 얘기하고, 어느 부분이 민감하니 그 부분을 더 신경 써 달라고 얘기하며 이건 좋고 이건 싫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오르가슴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느끼고 비로소 섹스를 즐기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와 동등하며 둘 다 오르가슴을 느낄 권리가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서로 공유하는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물론, 성적 매력에 있어 똘똘이의 크기도 무시할 순 없다. 때론 사랑은 성기 사이즈랑 비례하기도 하니깐. )

이젠 더 이상 한국에서 내가 어떤 섹스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지루하고 실망스러웠던 기억밖에는. 여성이 섹스라는 중요한 행위에서 주체가 될 때, 비로소 섹스는 서로가 대등한 관계로서 똑같이 즐길 수 있는 삶의 기쁨이 된다. 여자는 성욕이 남자만큼 넘치지 않는다는 남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남자만큼이나 차고 넘치는 게 성욕인데 왜 그걸 니가 못 해서 라고는 생각을 못해? 로맨틱하지도 않고 스킬도 별로고 상대방을 존중도 배려도 해주지 않고, 더군다나 네 똘똘이가 작아서 상대방을 만족을 못 시켜준다고는 왜 생각 못하는 거야?"

그렇다, 애초부터 그놈들의 섹스방식이 잘못된 것이었던 거다.


* 이 글은 <이기적 섹스>(은하선 지음, 동녘)를 읽고 참고해 쓴 것입니다. 8월 3일 처음 게시한 글에 책 내용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지만, '책 추천'이라고만 쓰고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출판사의 지적을 받고 해당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책을 읽고 제가 평소 생각하던 바와 같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쓴 글인데, 표절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책 내용을 섞어버렸습니다. 제 개인적인 미성숙 때문에 생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은하선 저자님과 독자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업데이트 8월 4일 15시 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