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엘로디 김 Headshot

열심히 좀 안 살면 어때서?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프랑스 공영채널 France 2에서 방송한 한국 교육의 치열함에 대한 르포타쥬입니다.

여기 살면서 프랑스인들에게 "고등학생 때 학교 끝나면 밤 11시고 그 이후 학원을 갔다오면 새벽 1시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일어났다"고 하면 다들 말도 안된다며 믿지 않다가 나중엔 그 나라에서 안 태어난 걸 다행으로 생각 해야겠다고 얘기하더군요.

르포에선 17세 나경이와 10세 미경이의 일과를 관찰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어보죠.

영어학원의 초등학생에게 : (기자) 프랑스 아이들은 정규학교 외에는 어떤 수업도 듣지 않아. 나가서 놀지.

한국의 이 초등학생은 깜짝 놀랍니다. 하지만 이내 "전 부럽지 않아요. 노는 것보다 공부하는 게 더 나으니까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내래이션이 나옵니다.

"이들은 하루에 15시간을 공부합니다. 심지어! 여름방학에도 바캉스를 떠나지 않고 학교를 가요!"

다시 학교로 옮겨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나오고, 그들은 "우리는 미래에 대해 많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고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인생이 끝날 거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혀있다. 학생들의 운명 같은 거다"라고 토로합니다. 이어 프랑스 기자가 묻습니다.

"이런 압박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니? 네 부모? 선생님? 네 사회?"

"나 자신이다. 정말로 걱정된다. 공부를 안 하게 되면 미래에 날 기다리고 있을 것에 대해 정말 무섭다"라고 학생은 대답합니다.

다시 나경과 미경이의 집으로 돌아와서 이 집벽엔 자녀들의 하루 일과표, 과목, 시간표가 붙어있다고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밖에 없다" 라고 덧붙입니다.

'한국은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30년 만에 전세계 13번째로 강한 국가가 됐다. (2011년 기준) 교육이 그 열쇠중 하나다'라고 소개해주네요. 하지만 이윽고 '병원엔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아이들로 넘쳐난다'며 이런 경쟁체제에 '흡수'되지 못하고 거부하게 되면 '고립'되며 이런 교육시스템에 적응 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며 '사회가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을 양산한다'는 한 학생의 말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2009년에만 200명의 학생이 자살.

다시 나경, 미경의 가족으로 돌아와서, 모든 가족이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드물다며, 미경의 엄마는 딸이 의사가 되길 원하지만, 기자가 10살 미경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몰래 털어놓았다네요.

여기까지가 프랑스인의 시선으로 본 우리나라입니다. 댓글이 상당히 많이 달려서 봤는데 그동안 제가 들어왔던 이야기랑 비슷해요. '그들은 시험에는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인생이라는 시험에선 결코 아니다'며 '그렇게나들 똑똑한데 왜 학문분야에서 노벨상은 하나도 없을까'라며 '이게 우수한 교육시스템 중 하나라고? 미쳤어?'라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네요.

프랑스에선 모든 한 해가 9월에 시작해서 6월즈음 끝납니다. 보통 연중 5주의 유급휴가가 주어지며 7월, 8월은 모두가 바캉스를 떠나게 됩니다. 이 기간을 얼마나 '잘' 쉬는가에 따라 그 해 9월부터의 1년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8월의 파리는 말 그대로 텅텅 비게 되며 길거리 곳곳에서 '9월에 만나요'라고 적힌 종이에 셔터가 내려간 가게를 많이 볼 수 있죠. 원래도 일 많이 안하고 매일 노시는 분들이 7,8월에는 작정하고 놀러 가십니다. '일은 가능한 한 최소한의 필요한 만큼만 하고 인생은 가족과 친구와 함께 행복하게 즐기는 것'이라면서요.

고등학교 3학년이 6월즈음 치는 시험인 바깔로레아는 대학입학을 위한 콩쿨이 아닙니다. 점수는 숫자가 아닌 1.아주잘함, 2. 잘함 3. 조금 잘함 이 세 가지로 나뉩니다. 시험난이도는 학교공부만 충실히 따라갔다면 무리 없이 통과할 정도입니다. 그 이후 일을 하거나, 2년의 직업전문학사에 등록하거나 대학에 등록하거나 프레빠과정에 등록을 합니다. '아주 잘함'을 받은 학생만이 '프레빠' 과정에 등록이 가능한데, 엘리트 교육기관인 5년제 그랑제꼴(학+석사)에 진학하기 위한 2년간의 준비반입니다. 여기서 시험을 쳐서 그랑제꼴 입학생을 뽑는데 최종적으로 그랑제꼴에 진학하지 못해도 2년을 인정받아 일반대학 3학년으로 편입이 가능합니다. 대학 안에선 학과, 전공을 바꾸는 것도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차이점은 여기선 고등학생 때까지는 여유롭습니다. 학교는 3시즈음 끝나고 학원은 없습니다. 학업성취도를 점수로 등수를 매기지 않으니 성적에 대한 압박도 덜하죠. 여름엔 꼬박꼬박 바캉스를 떠나구요. 하지만 대학을 들어가면 한 학년을 올라가는 것이 힘듭니다. 유급비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야만 3년을 마치고 대학 졸업이 가능합니다.

경쟁이 심하진 않습니다. 상대평가제도가 없고 나만 열심히 하면 그만큼 점수를 받으니까요. 친구와의 경쟁이 아닌 공부와 나 스스로의 싸움입니다.

취직을 하고 일을 하는 친구들은 야근이 없으니 6시에 칼퇴근을 해서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저녁을 보내는 after-work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었어요. 주말엔 어김없이 먹을 것을 들고 친구들과 공원으로 피크닉을 가구요. 정말 부러웠죠. 최근 프랑스에선 '연락을 안 받을 권리'라는 이름의 퇴근 이후 직장에서 어떤 연락도 받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하고 뒤처지지 않도록 열정적으로 노력하며 내가 얼마나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애티튜드를 가졌는지 증명하는 것 대신, 그냥 내가 편한 대로 하고 싶은 거 하고 경쟁 없이 아등바등 하지 않고 열심히 안 사는 게 뭐 어때서?

라고 하면 "한국에선 그게 안돼. 그럼 굶어 죽어"라고 하시겠죠?

물가도 그렇고 평균 월급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프랑스만큼 충분히 잘 사는 사회가 됐는데 그럼 이제 보상받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없는 자원에 사람들을 쥐어 짜내고 갈아넣어서 사회를 굴리는 것도 언젠가는 한계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며칠 전에 다음 16/17학년도 대학등록금을 냈습니다. 수업비가 184€, 사회보험비가 215€, 기타비용 5€ 해서 총 404€를 내면서 "싼 등록금 내면 교육의 질이 떨어져"라며 반값등록금에 입을 싹 닦고 사기를 쳤던 그 분이 떠올랐습니다. 184€면 일년에 등록금이 한화로 23만원인데 전 얼마나 쓰레기 같은 수업을 듣게 될까요?

비단 그분만 그렇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정치권과 사회기득권들의 생각을 대변하겠지요. 그분들은 우리의 이 비인간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열심히 안 살고 여유롭게 인생 즐기면서 살겠다고? 이런 복지병 걸린 개돼지들"이라고 비난하실까요?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왜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왜 개돼지로 불려야 하는 걸까요? 도대체 뭐가, 그리고 누가 문제일까요?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