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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드로잉 | 계획에 없던 한 기록광의 일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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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코미술관에서 2016년 대표작가전으로 원색에 굵고 거친 검정 테두리의 그림으로 알려진 서용선을 택했다. 그렇지만 이 전시는 그의 회화작업이 아닌, 그가 여태껏 전념해온 드로잉에 집중한 전시다.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2016.0823~1002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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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자화상> 29.3X20.3cm, 종이 위 연필, 2014


서용선 질감

평면 회화와 관련해 유력하게 거론되는 여러 작가 리스트 중에서 내가 관전 포인트를 잘 짚기 어려운 이도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서용선이다. 단종, 동학, 이라크 전쟁 같은 역사화 장르를 만든 점, 현대적 도시를 기하학적 선으로 재구성한 도시인 그림 등 대표작에 관한 한 알고 있지만, 그들이 어떤 변별력을 지니는지 진짜 이해했던 건 아니다. 나와 대화한 작가들은 그 같은 주제로 묶어서 보는 것보다, 서용선의 그림 자체가 좋은 거라고 일러줬다. 내게 그런 얘길 해준 작가들이 서용선을 관전하는 창작가의 일반적인 관점인진 알 수 없지만, 작품의 평론을 담당하는 전업 글쓴이보다, 창작자만이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의 질감이 있으리라는 점은 늘 염두에 두고 있다.

대표작 1순위에 세울 수 있는 단종 시리즈가 1986년 착수되긴 했어도, 동일한 주제로 그린 여러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작가의 것인지 분별하기 어려울 만큼 시기별로 묘사력에 큰 차이를 보인다. 주제는 같아도 질감이 달라진 거다. 이 때문에 서용선 브랜드는 1990년 전후로 형성된 걸로 봐도 될 거 같다. 원색과 굵고 거친 검정 테두리가 지배하는 질감, 그것이 서용선 브랜드다. 지난 자료를 보면 그가 대학(원) 시절을 보낸 1980년대까지 화단을 지배한 단색조 회화의 도그마에서 헤어나려고, 지금의 화풍을 도입한 듯하다. 그 때문에 서용선 브랜드는 신표현주의로도 흔히 칭해졌다. 간단히 정리하면 한국 형식주의 모더니즘에의 반감이되, 실추된 형상과 내용을 반인습적인 방법으로 회복시키려는 시도로 보면 될 거다. 인습적인 형상회화란 그가 2008년 미술잡지 <아트 인 컬처> 인터뷰에서 "고전미술의 사실적인 작품을 보면 우선은 답답하다는 느낌을 항상 받아요. 오히려 관습적인 테크닉으로 보이니까요."라고 답변한 바 있다. 형상회화의 9할 이상을 차지할 인습적인 기교의 대안으로 그는 회화의 기본요소인 선과 색을 본 것 같다. 선과 색이 강조된 서용선 작품이 신표현주의로 명명되는 건 그 점에서 자연스럽다. 어쩌면 서구에서 출발한 원조 신표현주의의 발단도 회화의 한계를 돌파하려고 회화의 기본 요소인 선과 색의 자유분방한 사용을 대안으로 궁리한 데 있을 게다.

굵고 강직한 선을 창작의 공식으로 택하면, 어떤 주제건 회화의 기본 요소의 작은 변형만으로 담아낼 수 있으며, 더불어 잊히기 힘든 자기 브랜드까지 얻을 수 있다. 펜으로 그은 완강하게 각진 선으로 재현한 '마고할미' 그림은 재료를 철로 바꿔 분해조립하면서 동일한 형상의 입체 설치물 '마고할미'가 된다. 그것이 설령 마고할미의 일반 도상과 닮지 않아도(전혀 닮지 않았다) 그건 '마고할미'가 되고 만다. 선과 색의 제한된 운용 말고도 제목마저 제한된 범주에서 지어진다. 역사의 극적인 순간을 주제로 삼은 그림들이지만 밋밋하고 무표정한 제목이 붙어있다. '계유정난'이라 붙이면 선명해질 주제를 '계유년'으로 달거나, 극적인 수식어 없이 한 개의 명사로만 제목을 정한 경우도 많다. 작품 대부분을 '무제'로 단 이유로 제목의 틀 안에 해석을 가두기 싫어서라 밝힌 호안 미로의 입장과, 가치판단을 입히지 않은 서용선의 중성적인 제목은 같은 효과를 노린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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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입체작품 제작계획도> 37x26cm, 펜, 종이, 2009


드로잉 일반론

색보다 선으로 대상의 형태를 표현한 것으로 소묘로도 불린다. 드로잉에 관한 사전 정의는 이렇고, 큰 틀에서 잘못이 없는 정의다. 이 같은 사전 정의와 드로잉을 완성작으로 가는 노정 위에 놓인 습작으로 평가절하한 통념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때는 한국 화단에서 2006년 전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이전 드로잉의 고수인 김태헌 주재환 등이 반인습적인 드로잉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김을은 2001년부터 1년에 천점 이상을 목표로 삼아 거의 매일 드로잉을 해왔으며 그렇게 쌓인 드로잉을 2004년 책으로 묶어냈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와 짧은 시간에 완성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제작자의 자의식을 부담 없이 입힐 수 있는 장르가 드로잉이리라. 드로잉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자, 2006년 소마미술관은 드로잉센터 개관 전시에 숨어있던 국내 드로잉 고수들을 초대하기에 이른다.

그림에 문자를 넣어 해설조의 작품으로 변한 드로잉도 있고, 만화처럼 익살맞게 구성된 드로잉도 많다. 드로잉을 위한 백지 스케치북이 아닌 기성 인쇄물 위에 가필해서 자기 작품으로 전환시킨 것도 많다. 신문지나 광고 전단 위에 가필이나 덧붙임을 올린 주재환의 작품은 광의의 드로잉으로 간주된다. 남의 전시회 홍보 엽서에 장난처럼 가필을 한 김태헌의 재치나, 신문에 인쇄된 증권 객장의 주가변동 그래프 사진의 일부를 지워 흡사 '산수화'처럼 보이게 만든 김학량의 '발견된 미술'도 있다. 이 경우 기성 자료 위에 덧칠을 해서 자기 작품으로 바꾼 셈이니 평면 레디메이드라 칭할 수도 있겠다. 대상의 원래 용도를 버리고 다른 용도를 기입한 미적 전용인 점에서 말이다.

한편 일기의 수단으로 드로잉을 사용하는 경우는 퍽 많은 편이다. 이처럼 자기성찰의 도구가 될 때의 드로잉은 관람자보다 작가 본인에게 더 중요해질 게다. 김을이 신속하게 완성한 드로잉 작품 가운데 한 점에는 어리둥절한 표절의 자신의 얼굴 프로필을 그리고 그 위에 '도대체 그림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요?'라고 적어두기도 했다. 거대한 목탄 작업을 하는 허윤희는 수년간 일기처럼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매해 채워나간 드로잉 작업마다에 날짜가 꼼꼼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휴대 가능한 2차원 종이작업이야말로 드로잉을 둘러싼 가장 완고한 강박일 게다. 이 강박을 파괴한 드로잉이 새천년 이후 쏟아지면서 이제 입체 드로잉을 만나는 건 놀랄 일도 아니게 됐다. 임자혁은 대학원 재학시절 그녀가 다니던 학교 중앙도서관 벽면에 마스킹 테이프를 거칠게 부착해서 독서하는 학생의 모습을 독창적으로 잡아낸 일회적 설치 드로잉을 시도했다. 홍명섭은 돌 위에 물로 水를 그려 넣거나, 토끼똥을 모아 반전 마크를 땅바닥에 그리기도 했는데,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물은 증발하고 토끼똥은 허물어질 테지만, 이 일회적 유희의 의미까지 사라지진 않는다. 이게 확장된 드로잉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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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38X27cm, 전단지 위 아크릴릭,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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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30.5X55.8cm, 신문지 위 아크릴릭, 2012


서용선 드로잉

거친 선과 원색이 동원된 대형 회화를 제작하는 서용선도 별도의 드로잉 카테고리를 갖고 있을 만큼 드로잉의 확장성에 관심을 지녔던 것 같다. 기성 인쇄물 위에 가필을 한 드로잉도 보인다. 일본 와카야마 현에서 구한 전단지에 그린 <붓다>(2015)는 와카야마에 머물 당시에 계획에 없이 그린 것일 게다. 같은 이치로 '뉴욕포스트'를 펼친 면 위에 그린 <화해>(2012)는 뉴욕에 머물 당시 그린 것 같다. 기성 인쇄물에 간섭한 이런 드로잉을 제3자가 온전히 몰입하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작업은 기성 인쇄물의 문맥을 교란시키거나 풍자하려 했던 김태헌이나 김학량의 의도와는 다른데 있는 것 같아서다. <붓다>와 <화해>가 백지의 스케치북이 아닌 현지의 인쇄물에 완성된 건, 계획에 없이 이뤄졌기 때문이리라. 현장의 호흡을 기록하고 전달할 목적에서 현장에 있던 인쇄물을 바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 호흡의 질감을 환기할 수 있는 이는 그 작품을 바라볼 그 누구도 아닌, 현장에 있었던 작가다.

서용선은 종이의 틀 안에서 탈주하는 입체 드로잉도 시도 한 바 있다. 이 같은 다양한 드로잉 실험을 모두 감안해도, 그가 꾸준히 주목한 드로잉의 역할은 일기의 기능인 것으로 보인다. 더 한정적으로 표현하면 기록광으로서 드로잉에 손을 뗄 수 없게 된 경우랄까. 자기 생각의 진행과정을 위에서 내려 보는 평면도의 기능처럼 드로잉을 다룬다. 그의 드로잉이 제 3자가 아닌 그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드로잉마다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한 화면에 두 개의 다른 연도가 표기된 경우도 많다. 아마 이후 작품을 보던 중 가필을 한 경우일 것이다. 자신의 심기 변화의 시기를 정확히 기록하고 확인하려 한 것일 게다. 모든 드로잉마다 연월일을 꼼꼼히 기록해둔 허윤희와 서용선은 그 점에서 만나지만 어떤 차이점을 갖는다. 서용선에겐 정확한 기록에 대한 편집증이 있다. 자의식을 그때그때 기록할 수 있는 요긴한 수단이 드로잉인 만큼, 많은 드로잉을 남긴 작가라면 아마 남다른 자의식의 소유자일 게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서용선의 작품 분류의 한 꼭지를 자화상이 차지하는 것과, 그가 남긴 드로잉의 방대한 분량은 서로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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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화실을 다녀온날 쓴 서용선 일기> 196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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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스케치북 (오사카), Sketchbook (Osaka)


ps. 이 글을 거의 마무리하고 끝으로 참조할 자료를 찾던 중, 서용선이 2년 전(2014년) 드로잉 화보 2권을 출간했다는 걸 알았다. < 기억하는 드로잉: 서용선 1968-1982 >와 < 서용선 드로잉 : 1983-1986 >이라는 제목의 드로잉집의 전체 지면은 700쪽이 넘는다. 연도가 적힌 제목처럼 그가 미대에 진학하기 이전부터 교수로 임용된 해까지의 드로잉을 묶은 것이다. 드로잉은 작가적 신뢰와 진정성을 가늠할 때 외부인이 의존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한 작가가 쌓아올린 드로잉 선집은 완성도 여부를 떠나 작가적 신뢰에 대한 증거처럼 믿어진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 입체주의의 시원이라는 미술사적 평가로 숭앙되지만, 그 작품에 감동의 깊이를 더하는 건 완성작을 앞두고 피카소가 행한 많은 습작들이 남아서다. 10대 시절 남긴 드로잉까지 포괄한 서용선 드로잉집의 편성 탓에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1974년 전후에 그린 줄리앙 브루투스 아폴로 같은 석고 소묘 도판까지 수록되어 있다. 책에 실린 드로잉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소개된 도판으로 1968년 장욱진 화백의 화실에 놀러갔을 때의 상황을 글과 그림으로 남긴 일기까지 보인다. 종이 상단에 '68.10.13 月'이라 적어둔 걸 봤다. 연월일과 요일까지 적어둔 거다. 더구나 전업 작가가 되기 이전 기록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내가 주목한 건 그가 쌓아온 드로잉의 분량이 아니라 제작일을 기록하고 과거사를 보관하는 태도였다. 이쯤 되자, '흠. 역시 그랬구나.'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기록편집증. 전적으로 제3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을 위해 써나간 기록일 텐데, 그럼에도 언젠가 공개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성격의 자료다.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이런 비유가 문득 끼어든다. 작업의 출발점인 점에서, 시각예술가의 드로잉과 전업 필자의 메모는 거의 유사하다. 심지어 드로잉이 2차원 종이에서 3차원 입체물로 확장하는 것처럼, 메모란 기본적으로 종이를 매체로 삼지만, 문득 영감을 준 대상을 사진으로 찍어뒀다가 나중에 모니터로 불러와 생각의 실마리를 글로 풀어내기도 한다. 내겐 메모 버릇이 있다. 휴대용 메모지에 적을 때가 많지만 순식간 사진에 담아 나중에 영감을 글로 풀 때 쓰기도 한다. 지난 메모를 보관하는 데는 무성의했던 터라 지금 내 손에 남은 자료는 거의 없지만, 이젠 그때그때 개인 기록을 블로그에 남기면 연월일시까지 자동으로 기록 보관되는 시대를 맞았다. 기록편집증이 타고난 건지 후천적으로 강화되는 건지 혹은 둘 다인지 잘 모르겠다. 경험칙으로 말하면 기록편집은 조건반사적인 습관이 만든 것으로, 전후의 기록을 살펴서 전후의 자기의 상태를 점검하고픈 욕심이 만든 습관이다. 또 남이 알 수 없는 재미가 있기에 꾸준히 메모와 일시의 기록에 매달리게 된다. 남을 의식 않은 자신만을 위한 세리모니가 메모 혹은 드로잉이지만, 결국 남이 지켜보는 자리에 불려나오기도 한다. 서용선의 드로잉 개인전은 기록편집증이 밀어붙인 원래 계획에 없었으나 공개될 운명의 결과물일 게다.


* 이 글은 <미술세계> 9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