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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앞 선물가게' 예술 대중화의 또 다른 이름 | 미스터 브레인워시MBW 국내 전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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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5월 '조영남 사건'과 '일베 조각상'에 관해 썼던 두 편의 글에 이은 세 번째 글로, 두 사건이 모두 미술과 대중의 관계에서 비롯된 사건인 점을 감안해서, 중요성과 위험성을 함께 지닌 양면적인 예술 대중화의 문제를 다룬 마지막 글이다.

- 조영남 대작사건을 읽는 법 | '관행'을 해명한다

- '일베 조각상'의 고차원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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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대중의 공분을 부른 미술계 소동이 두 건이나 터진 달인데, 조영남과 일베 조각상, 이 두 소동 모두에서 나는 두 작가의 편을 드는 글을 썼다. "미술계 깊은 사정을 알 수 없는 여론과 언론 수사기간이 범한 실수(조영남 사건)"이자 "현대미술에 대한 전공자와 비전공자 사이에 놓인 큰 진도 차이(일베 조각상)"가 빚은 소동으로 두 사건을 정리했다. 일반인 다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두 사건의 정반대편에 대중 친화력에 방점을 둔 블록버스터 미술이 있다. 서구에서 큰 인기를 누린 대중미술가 미스터 브레인워시(Mr.Brainwash, MBW)의 개인전이 6월 한국에 상륙했다.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미술'이라는 MBW의 선한 취지를 흠잡기란 쉽지 않다.

MBW의 한국 개인전이 개최된 인사동 아라모던아트뮤지엄은 각 층이 통으로 연결된 시원한 공간구조를 갖췄다. 층층의 전시실마다 우람한 설치물이 들어섰고 모든 벽면은 그림들로 빼곡 채워져, 흡사 전근대기에 열린 살롱 전시회의 작품 진열과 닮았다. 무한 볼거리 제공에 최적화된 작품 진열로 요약할 만하다. 전 층을 가득 채운 작품의 수는 방대하지만, 모든 작품이 간단한 공식을 따른다. 단순한 스토리, 관객 평균치의 기대감을 배반하지 않는 구성, 스펙터클의 포진, 긍정적인 메시지, 친숙한 캐릭터(출연진), 해피엔딩. 이는 흥행몰이를 위해 블록버스터 영화가 따르는 표준 공식인데, MBW의 전시도 같은 공식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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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아라모던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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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아라모던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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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정

전시실에 비치된 영상자료로 여러 색의 페인트가 담긴 통을 흰 차 위에 번갈아 투척하는 MBW와 그 장면을 바라보며 환호성 치는 관객을 담은 녹화영상을 볼 수 있었다. 파괴 행위는 대중을 유인하는 MBW의 미적 코드다. 흰 벽에 분홍색 안료를 흩뿌린 설치물이 전시장 초입에서 관객을 맞을 만큼, 재현의 한 방법으로 파괴 행위는 그의 여러 작품에 출현한다. 유명 뮤지션의 초상화를 조각 낸 LP판으로 구성한 연작하며, 단정한 붓질로 완성한 그림 위에 스프레이 안료의 흘림 자국으로 범벅이 된 화면은 MBW가 즐겨 쓰는 변형된 파괴 재현의 전형일 거다. 안료를 무작위로 흩뿌린 화면과 대상을 파괴해서 얻은 작품은 난해한 현대미술로부터 위화감을 느낀 대중에게 도상파괴의 후련함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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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아라모던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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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아라모던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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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정

MBW가 흔히 애용하는 모범 공식은 낯익은 미술 도상과 현대인이 일상에서 쓰는 IT장비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헤드폰을 착용한 구시대 위인 초상화, 붓과 팔레트 대신 스프레이 캔을 쥔 렘브란트의 상반신,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쥔 옛 사람들의 초상 그림들, 거기에 더해 채플린 아인슈타인 히치콕 먼로 피카소 모나리자 미키마우스 알리 오바마로 이어지는 보통 사람 누구에게나 낯익은 유명인 초상과 도상을 무분별하게 화면 위로 소환한다. 이 유명 인사들이 어째서 화면 위로 불려왔는지 문맥을 알 필요는 없다. 아마 문맥이 달리 없을 것이다. 이런 전략은 현대미술이라는 낯선 언어와 현대인에게 낯익은 언어를 결합시켜, 관객이 전시된 작품에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유명인 초상화 연작에선 현지화를 시도하는 사업가적 기민함도 보였다. 한국 전시에선 빅뱅 지드래곤 양현석 유재석 싸이 박지성 이효리 등의 얼굴이 채플린 먼로 등과 뒤섞여 한 화면 위에 출현한다. 한국 아이돌 스타와 전설이 된 서구 코미디언과 여배우 사이에 어떤 맥락이 고려된 배합일 리 없다. 이 작품에도 문맥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대중에게 어려운 과제를 던지거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이미 블록버스터 공식에 위배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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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아라모던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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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아라모던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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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아라모던아트뮤지엄>

MBW의 또 다른 성공 공식은 쉬운 도상으로 충분한 친화력을 쌓은 것도 모자라, 작품 위에 선명한 구호를 문자로 새기는 것이다. 전시 전체는 2008년 열린 MBW의 첫 개인전 제목으로 쓰인, 그리고 한국 전시를 포함해 다른 지역에서 열린 여러 개인전에서 두루 쓰인 Life is beautiful,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낙관주의 구호가 포괄한다.

MBW의 개별 출품작들과 전시 공간 전체는 관객과 작품 사이를 일방적인 감상 동선으로 두기보다, 작품과 함께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으로 설계되어 있다. 전시 전체가 포토제닉이라는 시대정신과 호흡을 하니 일반 관객이 호응하는 건 불문가지다.

이쯤 되면 이런 반문을 던질 때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흥을 돋운 미술이 무슨 잘못인가?' 예술이 지닌 놀이 기능을 고려할 때 이런 미술에 죄를 묻긴 어렵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해석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최첨단 시각효과를 최대화한 블록버스터 영화에 따라붙는 표현으로 평가절하의 의미가 배어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목적으로 관객이 선택한 이런 상업 영화를 마냥 탓할 순 없을 게다. 그럼에도 수려한 채색과 친숙한 도상을 뒤집어쓰고 관객의 호응을 받는 MBW류의 대중미술 전시에 나는 왜 인색한 평점을 주려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블록버스터 미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 눈높이에 맞추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 관객을 알량한 왕 대접 해준 대가로, 이런 영화와 미술 전시는 거금을 벌어들인다. 상업적 대박을 꼭 비난의 이유인 양 지목할 순 없을 게다. 여기에 블록버스터 영화와 블록버스터 미술 간의 미묘한 차이점이 발생한다.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는 주류 미술을 향한 대중의 위화감을 자극해서 반사이익을 얻는다.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적 반감에 편승하는 블록버스터 미술은 마치 주류미술을 대체할 정당한 대안인 양 비치기도 한다.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미술.' 이 구호는 일반인에게 얼마나 큰 호소력을 지닐까! 본명 티에리 구에타 대신 예명으로 쓰는 미스터 브레인워시MBW는 '세뇌'를 뜻한다. 이 예명은 그의 작품이 불친절한 주류미술에 반하는 대안적 미술인양 세뇌하는 위험한 반어처럼 읽히기도 한다. 영화라는 대중예술과 달리 (현대)미술은 꾸준한 훈련이 전제될 때 비로소 감식할 수 있는 예술이다. 예술이 불특정 다수의 취향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명분은 곧 예술의 평가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자는 태도와 연결되며, 이런 대중 영합주의에 편승해서 다수결의 기호로 미적 판단을 내린 나쁜 선례로 1937년 나치가 연 <퇴폐미술>전시가 있다. 독일 표현주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인체상이 나치의 안목에는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훼손하는 재현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전국에서 압수한 650점의 현대미술은 퇴폐미술로 낙인이 찍힌 채 전시됐고, 이 전시에 2백만 명의 관객이 입장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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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BEAUTIFUL is a trademark of Amusement Art, LLC, registered in the U.S. and other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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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인전에도 출품되었고, MBW의 이름으로 가장 쉽게 검색되는 그의 대표작은 하늘색 배경에 노란색 곱슬머리를 한 유명인들의 얼굴을 반복해서 올린 초상화 연작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앤디 워홀의 < 총 맞은 담청색 마릴린 먼로 Shot Light Blue Marilyn >(1964)에서 마릴린 먼로의 얼굴 부위에 마이클 잭슨, 잭 니콜슨, 버락 오바마, 급기야 앤디 워홀의 얼굴을 오려 넣은 연작이다. 기왕에 낯익을 앤디 워홀의 초상화 프레임에, 대중에게 모두 알려진 유명인의 얼굴을 결합시킨, 과도하게 친숙한 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해야 할까? 이 연작은 표절은 아니지만, 창의적인 차용에도 들지 않는다. 다만 대중적 기호에 영합하려고 행한 손쉬운 응용에 불과하다. 단품 초상화 외에 MBW의 대형 회화 작품에선 채플린 먼로 아인슈타인 미키마우스 등 낯익은 도상들을 무분별하게 뒤섞어놓은 경우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검증된 유명세에 무임승차하는 미적 태도랄까. 그럼에도 이 같은 작업 스타일에 관객 다수가 환호한다면, 평론가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MBW의 성공 공식은 주류 미술의 무모한 실험이 만든 피로감의 틈새를 공략한 대중 영합주의에 있다.

<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는 얼굴 없는 낙서화가 뱅크시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거리미술의 동향과 뱅크시의 낙서화, 그리고 티에리 구에타가 MBW라는 이름으로 대성공하기 전후의 사정을 보여준다. 전시장 한 구석에서 이 영화의 편집본이 상영되고 있다. 연출자 뱅크시가 주류 미술에 저항했던 만큼, 이 영화는 동료 티에리 구에타의 난데없는 성공을 고깝게 묘사하진 않는다. 그보다 예술적 성공의 양면성을 꼬집는다. 영화는 무명이던 티에리 구에타라는 인물이 주변의 미적 성공 사례를 가까이서 관찰한 후, 홍보의 위력이나 대중 영합주의 같은 성공 공식을 두루 체득해서 자신을 '예정된' 대성공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을 추적한다. MBW의 첫 개인전 < Life is beautiful >(2008)은 개막일에 4천명이 몰려 예정보다 전시 기간을 3달 늘려 총 5만 인파가 방문했다. 이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 홍보 효과에 크게 빚진 결과였다. 영화는 뱅크시에게 받은 짧은 글을 전시 홍보에 활용하거나, 로스앤젤리스의 영향력 있는 < LA Weekly >의 표지에 전시회 소식을 실어 관객을 끌어오는 남다른 수완의 MBW의 모습을 따라간다.

영화 제목은 출구로 나가는 길목에 아트샵을 통과하도록 설계하는 미술관들의 구조를 비꼰 거다. 이 제목은 예술 대중화라는 중요한 숙제의 해법이 얼마나 상호 모순적인지 시사한다. 아트샵은 일반인의 취향과 눈높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품을 구비한다. 아트샵에서 사는 상품은 예술 자체는 아니어도 교양의 대리물 역할은 할 게다. 수고로움 없이 싼 값에 충족될 교양.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미술'을 탓할 순 없다. 영화/미술의 그 같은 오락 기능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 다만 그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미술'이, 출구에서 마주친 선물가게에서 구입한 값싼 교양의 대리물인 점을 대중이 숙지한다면, 쉽게 즐길 수 없는 어떤 예술의 수난극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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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예술가 개인의 노동력을 찬미하는 대중이 환호할 MBW 전시의 물리적인 완성 대부분은 고용된 조수들이 수행한다.


* 이 글은 <미술세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