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다인 Headshot

다시는 임신 중에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1
한겨레
인쇄

예약한 조리원에서 무료 산전마사지라는 걸 받게 되어 지하철을 탔다. 노약자석이 두 자리 비어 있다. 둘째 출산이 8주 남아 얼굴보다 배가 먼저 보일 만큼 임부 티가 확연한 나지만, 그래도 노약자석에 앉을 때마다 어느 정도의 연기(?)를 하게 된다. 지금 힘든 것보다 약간은 더 힘든 척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허리를 짚으며 천천히 앉아야 쓸데없는 시비에서 자유로울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어폰을 꽂지 않으면 약 80%의 확률로 어르신들이 말을 건다. 산달이 언제야? 몇 주 됐어? 힘들겠네. 애기엄마는 몇 살이야? 남편은 어디 있고 혼자 어디 가? 첫째, 둘째? 아들, 딸? 그래 딸도 좋고 아들도 좋지. 저출산이라고 난리인데 요즘은 임신한 것만으로도 국위선양하는 거야. 나도 애를 둘 낳았는데, 우리 아들도, 우리 며느리도... 등등. 매우 친절하게 말을 붙이시는 분들이 다수지만 낯선 이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 자체에서 자유롭고 싶기에 그냥 이어폰을 꽂는다.

왼쪽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손등으로 툭 친다. 쳐다보니 양손으로 '귀에 꽂은 그것 좀 빼 봐라' 손짓을 한다. 눈으로 웃고 있기에 시비를 걸려는 것 같진 않고, 뭐 지하철 노선도 물어보시려나 싶어 한쪽을 슬쩍 뺐다. 그런데.

-젊은데 왜 여 앉아서 가?

얼굴만 웃고 있지 전혀 반갑지 않은 말을 한다. 처음 받는 질문도 아니지만 언제 들어도 유쾌하지 않다. "노약자석을 늙'고' 약한 이들의 전유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당장 <교통약자석>으로 이름을 바꾸고 노약자석이라는 단어 자체를 대가리들에서 지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도 없고, 그냥 대답했다. "아, 제가 임산부라서요." 몸도 힘들고 굳이 이어폰까지 꽂았건만 이런 대화나 하고 있는 게 짜증나서 아무래도 표정이 곱게 안 나간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웃는 상으로 말한다.

-어디가 임신을 했어?
- ......

이게 뭔 말이야? 어디가 임신을 했냐고? 배가 했지 어디가 합니까. 오늘 엄청 큰 오버사이즈 니트가디건을 입어서 잘 안 보이는가 싶어 굳이 손으로 쓰다듬어 배의 곡선을 보여주었다(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상체를 스윽 멀리하더니 대놓고 내 얼굴과 배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의 얼굴은 계속 웃고 있다. 아... 그냥 눈웃음치는 상의 꼰대구나. 불현듯 어젯밤에 읽었던 기사가 생각났다. 70대 노인이 임산부의 옷까지 걷어올리며 임신한 걸 증명하라 난리를 쳤고, 배를 가격했다는 기사. 덜컥 두려움이 몰려왔다. 핸드폰에서 음악리스트를 보는 척 급히 녹음버튼을 찾았다. 증거를 남겨둬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라.

-임신한 게 대수야?

일어나야겠다.

-여기는 노약자석인데. (맘대로 앉으면) 안되지. 그거 뭐 여자들 다 하는 거.

녹음이고 뭐고 일어나서 통로 문을 열었다.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쳐다보든 말든 위의 말을 지껄였다. '내가 앉아야 하니 비키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도 뻔히 앉아 있으면서 만삭의 임산부를 굳이 쫓아내는 데 성공한 그의 음성은 거침이 없었다. '노약자석에 앉을 자격이 없는 못된 젊은 것을 내가 훈계해서 내보냈노라.' 몸이 떨렸다. 다음 칸으로 넘어가기 직전, 내 뒤통수에 대고 그가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임신을 했는데 머리는 왜그리 노~래?

내 머리색이 뭐 XXX. 돌아가서 머리채를 잡고 싶었다. 그에게 해줄 말은 얼마든지 있었다. 뭐? 임신은 여자들 다 하는 건데 뭐가 대수냐고? 인간은 다 늙는 건데 니가 늙은 건 뭐가 벼슬이니 미친 XX야. 여기는 교통약자석이다. 너같은 늙다리만 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장애인, 애엄마, 임산부, 다친 사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좌석이라고.

e

나는 시비 거는 인간과 개처럼 맞붙어 싸울 수 있는 성미를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뒤뚱거리는 임산부 따위는 할배의 폭행 한 번에 나가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내가 지켜야 할 이 아이가 얼마나 위험해질지 모르니까. 첫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 같으면 당장 녹음하고 따지고 싸우고 경찰에 신고했을 거예요, 혹자는 말하지만, 아니다. 나는 약자다. 혹시 모를 무력행사 앞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게 뻔한 약자다. 어떤 또라이를 상대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앞세운 채 그런 위험부담은 감수할 수 없다. 누군가 나를 모욕할 맘만 먹으면 나는 그 모욕을 온몸으로 흡수한 채 그 자리를 피해야만 한다. 그것이 나와 내 아이를 지키는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길이다. 이게 지금의 내 위치다.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갔다. 꾹 눌러두었던 스트레스가 갑자기 확 치솟는 걸 느끼며 펑펑 울었다. 배려받지 못하는 것 따위 상관없다. 자리 양보 해달라고 입덧하며 배 내밀며 임산부뱃지 반짝이며 들이댄 적 없다. '미래의 주인공을 위해 양보해 주세요' 같은, 나를 내가 아니라 아이를 담고 다니는 껍데기 취급이나 하는 구린 임산부 배려 캠페인 따위도 관심없다. "배려는 의무가 아니야! 내 애도 아닌데 내가 왜 양보를 해?" 같은 의견도 그래 다 좋다. 하지만 이런 건 싫다. 이런 상황은 더는 싫다.

다시는 임신 중에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다.
출산 전까지 다시는 타지 않겠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