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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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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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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육아에 지쳐 하소연하는 엄마에게는 유독 날선 소리들을 던질까. 왜 징징대? 그럼 힘들 줄 모르고 낳았음? 전부 각오하고 애 낳는 거 아님? 왜 지들이 좋아서 낳아놓고 우는 소린지 이해 안 감. 니가 싸지른(실제로 본 댓글) 애 책임지고 케어 잘하고 밖에서 맘충 짓이나 하지 마셈. 자신 없으면 집 밖으로 기어나오지 말든가. 니 애지 내 애임? 징징거리는 거 극혐.

그래. 전부 각오하고 아이를 낳는다지만, 겪어보기 전에 상상한 그 '전부'에는 크나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취준생도 일단 취직에 성공하는 순간엔 뛸 듯이 기쁘다. 물론 사회생활 녹록지 않다는 거 익히 보고 들어서 알고 있으니 힘듦을 각오한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 애환이 장난 아니다. 하필 부서 직속 과장이 나랑 성향이 정반대라 자꾸 부딪힌다. 날 싫어하는 건지 그냥 심술궂은 건지 올린 기안마다 족족 반려시키지 못해 안달, 보고서마다 트집 잡지 못해 안달이다. 하필 성희롱이 디폴트인 전형적인 아재 김부장 같은 새끼가 상사로 있을 줄도 몰랐다. 이렇게 쓸데없는 회식이 많은 곳인지도 몰랐다. 상상과는 다른 점이 많지만 일단 일은 한다. 내 전공 살려서 왔고, 나름 오고 싶었던 회사였는데, 쉼 없이 일거리는 몰아치는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보람 없을 줄은 몰랐다. 개고생한 것에 비해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게 느껴질 줄도 몰랐고, 대놓고 내 실적 뺏어가는 윗대가리가 있을 거라는 것도, 진상 클라이언트가 있을 거라는 것도, 내게 주어진 연차는 분명 15일이나 되는데 그중 3일 쓰는 것조차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겪기 전엔 몰랐다. 출근 전 각오를 미리 다졌다고 안 힘든 게 아니다. 어떤 날은 너무 답답하고 짜증 나서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싶고, 친구들 만나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술도 한 잔 기울이고 눈물도 흘리고 화도 내고 공감 받고 싶어 한다. 근데 왜 애엄마는 그러면 안 될까.

애엄마도 몰랐다. 하필 임신증상이 심한 임산부가 나라서 출산 전부터 이미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가 될 줄도, 애 낳고 잘 못 잔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게 이 정도로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지도 몰랐다-그냥 못 잔다고만 하니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을 위해; 시험기간에 벼락치기 공부하느라 알람 맞춰놓고 자는 둥 마는 둥 누워있다가 화닥닥 일어나 공부하고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다시 누웠다가 또 일어나고 멍하니 책 붙잡고 앉는 짓을 한 2~3일만 연속으로 해도 피곤하고 멍한데, 그 짓을 기본 몇 달, 거의 500일에서 몇 년 넘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가만히 앉아서 책 보는 것도 아니고, 애를 세웠다 눕혔다 어르고 달래고 들었다 내렸다 노래 불러주고 돌아다니고 돌덩이 같은 가슴을 주무르고 짜내고 피가 나는 유두를 물리고 트림 시키고 토하면 옷 벗기고 씻기고 닦고 빨래하고 재우고...를 반복하며 깨 있는 것이다. 대충 할 수도 없다. 나 아니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작은 생명을 극도로 긴장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계산해 보니 나는 하루에 총 4시간 정도를 겨우 잤었다. 통잠이 아니라 40분 자고 깨서 위의 일들을 하고 또 1시간 자고 깨고 위의 일들을 하고의 반복이다. 애가 언제 깰지 모르고, 혹시 누워서 토하거나 뒤집어져 숨이 막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늘 대기 상태라 깊은 잠도 당연히 잘 수 없다. 어차피 젖이 땡땡하게 차서 불어 터지기 직전이 되면 아파서라도 일어나야 한다. 정신이 나가게 될 수밖에 없다.


씻고 싶을 때 씻기는커녕 싸고 싶을 때 맘대로 싸지도 못 한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아이는 대체 왜 바닥에 엎어져 대성통곡을 하는가. 아아악, 엄마 가지 마요.


자, 이렇게 잠을 못 자니 다른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한다. 근데 없다. 밥도 맘대로 못 먹는다. 모유수유를 하는 사람은 매콤한 것도, 기름진 것도, 술 한 잔 커피 한 잔도 어렵다. 기껏 찬 아까운 젖을 한바탕 짜서 버려도 찝찝하다. 임신했을 때보다 오히려 먹을 것을 더 가려야 한다니 그것도 몰랐던 사실이다. 어? 하필 내 아이가 엄마 젖꼭지를 거부하는 아이일 줄도 몰랐다. 그럼 아무 분유나 먹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특정 분유를 먹으면 분수토를 하고 이상한 변을 보고 배앓이를 하니, 맞는 분유를 찾을 때까지 계속 바꿔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데 자꾸 울며 엄마를 찾으니 아기침대 옆에 서서 반찬을 다 넣고 비빈 밥을 전광석화의 속도로 밀어넣게 된다는 것도 몰랐다. 식탁에서 같이 밥 먹을 정도로 크면 좀 낫겠지. 아니, 여기저기에 밥이 날아다니고 물이 엎질러지고 숟가락이 떨어지고 그릇이 뒤집어지고 애 입에서는 씹히던 반찬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씻고 싶을 때 씻기는커녕 싸고 싶을 때 맘대로 싸지도 못 한다. 이것 역시 몰랐던 사실이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아이는 대체 왜 바닥에 엎어져 대성통곡을 하는가. 아아악, 엄마 가지 마요. 날 두고 가지 마. 나랑 놀아요. 어른이 한 명만 더 집에 있어도 이러진 않는데, 집에 엄마와 단 둘이만 있으니 불안한 모양이다. 용변 보는 소리가 밖에 들리는 것도 창피해하던 내가 문을 활짝 열고 일을 본다. 절대 리액션을 쉬어서도 안 된다. 응 우리 아가, 엄마는 지금 쉬야를 하고 있어요. 울지 마세요. 엄마가 금방 쉬야 다 하고 나갈게. 아이는 계속 운다. 엄마, 엄마 안아. 그래,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아악, 아니야, 엄마 안아 아아악...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단 1분이라도 입 다물고 멍하니 용변 보는 데 집중하는 게 소원이 된다. 아이에게 핸드폰으로 뽀로로를 틀어 쥐어주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핸드폰을 주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 육아하기 전 각오를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겪기 전엔 몰랐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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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엔 기름이 끼고 얼굴은 푸석한데 샤워할 틈을 주지 않는다. 쉬야도 허락받고 하는데 팔자 좋게 뭔 샤워인가. 낮잠 재우는 데 성공, 후다닥 옷 벗고 물 틀고 머리에 거품을 냈는데, 아뿔싸 애가 옆에 엄마가 없는 걸 알았는지 깨서 운다. 왜 하필 지금... 응 아가, 엄마 금방 갈게. 급히 거품을 씻어내는데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뭐지, 꿈꿨나. 혹시 침대에서 떨어졌나. 어디 다쳤나? 잠깐 눈을 뗀 새 꼭 사고가 생긴다는데 불안하다. 물기만 대충 닦고 알몸으로 뛰어들어가니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이가 무릎으로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안아주세요' 자세로 바들바들 떨고 있다. 다시 재우는 데 30분이 넘게 걸린다. 거품도 깨끗이 못 닦아내고 팬티도 못 입고 아이를 몸 위에 올려놓고 토닥이고 있자니 멍해진다. 다시 샤워를 하려면 남편 귀가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오늘은 9시쯤 올 것 같은데...

남편에게 예쁘게만 보이고 싶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젠 예쁘게 꾸밀 시간도 나갈 곳도 없는데 꾸며도 예쁘지도 않아 절망한다. 아이를 낳은 지 4달째,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냥도 아니고 말 그대로 숭덩숭덩 빠진다. 뾰족뾰족 새 머리가 나기 시작하니 잔디인형이 따로 없다. 어울리는 머리를 포기하고 최대한 탈모를 가려주는 스타일을 골라본다. 그런데 미용실에 갈 시간도 없네. 언제 가지. 어떻게...

육아가 이런 건 줄 몰랐다. 왜 하필 내 애는 꼭 세워서 안고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러줘야지만 울음을 그치는가. 왜 내 애는 나와 성향이 정반대라서 예측불가능한 일을 자꾸 벌리는가. 왜 내가 똥쌀 때 자꾸 밖에 나가자고 보채는가. 왜 어제는 잘 먹었던 반찬을 오늘은 집어 던져버리는가. 지금은 왜 또 우니. 왜...


아이 5개월에 처음으로 함께 식당에 갔을 때, 아이 옹알이를 옆 테이블의 커플이 쳐다보던 것이 눈치가 보여 얼른 아이 입을 막았던 못난 엄마. 그래도 '맘충'은 되기 싫다. 어디까지가 맘충 짓인지 어디까지가 내 피해의식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간다. 이렇게 더워도 애 양말은 신겨야지. 춥다고 애 머리를 이렇게 덮으면 어떡해 숨 막히게. 아이고 엄마가 밥도 안 주고 여기서 이렇게 빵 먹이네. 애기는 이쁜데 엄마는 좀 뚱뚱하네, 아빠 닮아야겠다. 꼬마 아가씨 너무 이쁘다, 이마도 이쁘고 눈도 이쁘고, 코만 좀 높으면 좋겠네. 이상한 시비, 무책임한 오지랖도 자주 겪는다. 마트에 간다. 살 것들은 오른쪽에 있는데 왼쪽으로만 가잔다. 카트를 타지 않겠단다. 쫓아다니다가 쇼핑은 포기했다. 어어 꼬마 친구, 뛰어다니지 마세요. 안전사고에 민감할 마트 직원에게 미안하다. 더 구경하겠다고 허리를 활처럼 꺾으며 우는 애를 옆구리에 끼고 얼른 마트를 나온다. 식당에 가려다 젊은 남녀가 주로 앉아있는 테이블들을 보고 포기한다. 아이 5개월에 처음으로 함께 식당에 갔을 때, 아이 옹알이를 옆 테이블의 커플이 쳐다보던 것이 눈치가 보여 얼른 아이 입을 막았던 못난 엄마. 그래도 '맘충'은 되기 싫다. 어디까지가 맘충 짓인지 어디까지가 내 피해의식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피곤하다. 그냥 집으로 간다.

쌓인다. 작고 작은 욕구불만들이 쌓인다. 어디 퓨즈가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번 더 나갔다간 뭔가 빠직 하고 끊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것만 같다. 누군가 잘 자고, 잘 먹고, 원할 때 목욕하고, 여유있게 식사하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마실 나가 사람 만나고, 민폐 끼칠 걱정 없이 대중교통이나 식당 이용하고, 친구나 동료와 술 한 잔 하며 얘기 나누고, 깨지 않고 푹 통잠을 잔다는 얘기를 듣거나 보기만 해도 마음 속에서 질투가 부글부글 올라오는 지경이 된다.

육아 전에는 내 커리어가 단절되어 우울해지거나 몇 년째 멍하니 정체된 채 늙어가다 보면 절망할까봐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일상이 무너지는 것. 시간 속에 그냥 잠식되는 느낌. 아주 작은 것들을 매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의 반복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같은 말, 같은 노래를 하루에 50번씩 반복하면서도 자상하고 상냥해야 하는데. 절대 욱하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육아 전문가가 그랬는데. 자꾸만 화가 난다. 화 내고 안아주기를 반복하다보면 밀려오는 자책감. 계속 어질러지는 집안.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난감을 치우고 있는데 아이가 등 뒤에서 매달린다. 엄마, 뽀, 뽀(뽀로로). 아가, 이제는 뽀로로도 코 자러 갔어, 이제 빠이빠이 해야 해, 내일 보자, 알겠지? 아니야, 엄마, 뽀, 뽀, 뽀오. 엄마가 내일 보자고 얘기했지? 뽀로로는 이제 코 자러 갔어요, 내일 만나요. 엄마 엄마 엄마, 뽀, 뽀, 뽀, 뽀오오오오오옼!!! 아... 아가, 제발... 두 손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울고 싶다. 6시다. 오늘 저녁은 또 뭘 해 먹이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방치하고 까페에서 남편 돈이나 쓰며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요즘 맘충'의 이미지가 탄생하기 전, 안팎으로 여기저기 망가지기까지의 엄마들의 생활은 드러날 일이 없다.


지겨운 유아 채널... 내가 보고 싶은 TV 채널을 보고 싶다. 요즘 영화는 재밌는 거 뭐 개봉했을까. 나 대학로 연극도 좋아했는데. 친구랑 힙합 공연도 보러 다녔었는데. 어른과 어른다운 대화를 하고 싶다. 요즘 내 친구들의 관심사는 뭘까. 하지만 얘기 상대가 없다. 내게 남은 건 베이비토크뿐이다. 그랬쪄요. 저랬쪄요. 맘마 먹을까요. 지지예요. 안 되는 거예요. 다 먹은 그릇 엄마 주세요. 아이 착하다. 상냥하게... 정신이 나간다. 여보, 빨리 와요... 아무 생각 없이 열어본 인터넷 창에서 전업주부 혐오, 맘충 혐오를 접한다. 임산부석을 '질싸 인증석ㅋㅋ'이라 부르며 조롱하는 댓글과 거기 달린 좋아요 수를 멍하니 본다(실제로 이 댓글을 본 후 5일간 집밖에 나가지 못했다). 아이를 데리고 물리적으로 멀리 이동할 기회가 없으니 생활반경이 극도로 좁아지고, 짬짬이 접하는 인터넷 세상만이 자유시간을 지배하며 마음이 조금씩 피폐해진다.

이맘때쯤 주로 만나게 되는 단비가 바로 어린이집, 그리고 같은 처지의 애엄마 친구들이 된다. 그러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방치하고 까페에서 남편 돈이나 쓰며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요즘 맘충'의 이미지가 탄생하기 전, 안팎으로 여기저기 망가지기까지의 엄마들의 생활은 드러날 일이 없다. 자기가 좋다고 낳아 놓고 왜 힘들다 징징대느냐, 평일 낮에 커피도 마시고 팔자 좋네, 라는 핀잔만이 남는다.

milk coffee

아이가 9개월일 때 처음 혼자 밖에 나왔다. 그냥 장 보러 나온 것이었다. 짐도 무거울 텐데 남편이 리스트만 주면 후딱 갔다오겠다고 하는 것을 말리고, 당신이 아이랑 있어라, 내가 다녀오겠다 말하고 처음으로 나왔다. 9개월 만에 처음으로 눈에 마스카라도 바르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마트를 향해 걷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니 미련하게. 그냥 맡기고 나가면 되지. 대체 남편은 그간 뭐한 거예요?"가 아니다. 남편은 평일엔 직장에 매여 '저녁 없는 삶을 사는 평범한 한국 가장'이다 보니 아무리 잘 하려 해도 함께할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가 주말 아침부터 아이를 봐주기 시작하면 나는 밀린 잠을 자야만 했다. 서너 시간 깨지 않고 쭉 자는 통잠이 너무나 필요했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도저히 무기력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가서 친구도 좀 만나고 해요, 남편은 말했지만 나는 처질 대로 처지고 닳을 대로 닳아 있었다. 멍하니 있고 싶어 안방 문을 잠그고 틀어박혔다. 혼자 밖에 나가려고 마음먹어도 현관에서 매달리며 우는 아이가 밟혀 금방 포기하곤 했다. 그래서 혼자 집 앞 마트에 이어폰 꽂고 나가기까지 무려 9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기력을 조금이라도 되찾는 데 필요했던 시간. 그때 길을 걸으며 비로소 알았던 것 같다. 내 우울증이 심각했구나.

할 수 있다. 내 아이, 넘치도록 예쁜 내 아이, 내 목숨 내어 사랑할 수 있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이들은 많고, 엄마 또한 그렇다. 그러나 숨 쉴 구멍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하소연할 기회도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런데 왜 엄마의 희생을 감사해 하기만 하면서, 엄마가 쌓인 스트레스를 드러내는 건 금기시하나. 국가 보조금으로 어린이집 보내고 끽해야 만원대의 브런치 사먹고 4000원짜리 아메리카노 마시며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는 그놈의 '까페 맘충'은 뭘 그렇게 큰 죄를 저질렀나. 어제 만났던 그 맘충이 오늘도 또 보이고 내일도 또 보이던가. 오늘 그녀의 외출은 몇 달 만에 한 번 있는 매우 귀한 기회였을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그녀가 커피와 수다가 주는 향락에 빠져 몸부림이라도 치고 있던가. 비지니스 크-럽에서 딸 뻘의 여자 젖을 주무르고 양주를 과음하고 거리로 나와 뻘건 얼굴로 고성방가하고 노상방뇨하고 담배 뻑뻑 피우다 택시에서 토하거나 대리기사 폭행하는, 집에 돌아가면 누군가의 아빠일 이들은 결코 '파충'이라 불리지 않건만. 왜 엄마인 그녀들은 아이와 함께 있어도 욕을 먹고, 따로 있어도 욕을 먹고, '집에나 처박혀서 니가 낳은 애 징징대지 말고 잘 좀 간수하기를' 요구받는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