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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버든' 유해화학물질 얼마나 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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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호르몬이라고도 부르는 유해화학물질을 다룬 다큐 한 편이 주말 안방을 찾아왔습니다. 이런 주제들은 종종 대중들의 패닉을 유발하죠. 2007년 SBS "환경호르몬의 습격"이 그랬고, 2015년 EBS "모유잔혹사"가 그랬습니다. 이번에도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가장 흔하게 겪는 감정이 역시 공포와 두려움인 것 같습니다. 제 연구 분야인지라 저도 아주 잠깐 출연을 하긴 했습니다만 정작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방송에서 차마(?) 다루지 못했던 것 같더군요.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노출되는 수많은 화학물질들 중,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는 종류가 다큐에서 바디버든이라는 이름으로 측정한 종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백여 종류의 화학물질들만을 환경호르몬으로 분류합니다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들이 직간접적으로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화학물질이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전은 무궁무진입니다. 이런 화학물질들이 은밀하게 인체에 영향을 미칠 때는 주로 허용기준 이하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허용기준 이상이냐? 이하냐?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죠. 다양한 식물성식품 안에도 환경호르몬으로 분류되는 성분이 듬뿍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저농도에서 벌어지는 문제와 관련하여 꼭 기억해두셔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용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해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유해화학물질의 농도가 높은 경우, 즉 전통적인 독성 영역에서는 당연히 용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해로워지는 것이 맞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 같은 것이 바로 독성영역에서 발생한 비극이었죠. 그러나 우리가 음식, 공기, 물, 일상생활 용품을 통하여 매일같이 마주치게 되는 낮은 농도의 환경노출 영역에서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러한 일상적 노출영역에서는 낮은 농도가 높은 농도보다 더 해로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학술용어로는 "비선형적 용량-반응관계"라고 부르죠. 현재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통하여 노출되는 초극미량의 유해화학물질 수는 수백 가지, 아니 수천 가지에 이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각자 고유의 비선형성을 가지고 서로간에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현실에서 이 화학물질의 문제는 도저히 예측불가능한 복잡계 현상이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는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각종 질병들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합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현실이죠. 그러나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이 사람이 병에 걸릴지, 저 사람이 병에 걸릴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다시 말하면 바디버든 프로젝트에서 측정한 60여개 유해화학물질들의 총량을 측정해서 더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 비하여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없다는 거죠. 이러한 화학물질들의 특성은 저 같은 연구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연구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큐에서 바디버든(인체가 노출되는 유해화학물질들의 총량)을 낮추는 방법으로 강조하는 생활습관은 크게 (1) 일상생활에서 유해화학물질 피하기 (2) 먹는 것과 운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먹는 것과 운동"을 이야기하면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고 시시하게 생각하겠지만 현대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유해화학물질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남녀노소, 환자, 건강인 누구에게나 중요하구요.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유해화학물질 피하기"가 가지는 의미는 그 사람이 현재 어떤 상태에 처해있느냐에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 주위에는 환경호르몬이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의심되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궁의 경고에 출연한 바디버든 프로젝트에 참여한 환자들이 그 예가 되겠죠. 이런 환자들의 경우, 일상생활 속에서 화학물질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경험하고 있었던 노출수준이 건강에 좋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거든요. 따라서 바디버든 프로젝트에서 소개된 몇몇 사례들과 같이 본인 일상의 삶을 바꾸면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특별히 건강상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환자들만큼이나 많이 존재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부터 성분표 일일이 체크해가면서 몇몇 특정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을 피한다고 해서 나중에 더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비선형적 용량-반응관계"를 가진 수많은 화학물질의 혼합체라는 실체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유해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자들이 주는 흔한 조언들이 있죠. 온통 쓰지 말고 피하라는 내용뿐인데요 건강상 별 문제가 없더라도 그런 자연주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즐겁게 사시는 분들,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살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큰 스트레스입니다. 이걸 피하니 저게 신경 쓰이고 저걸 피하니 또 다른 게 신경 쓰입니다. 그러다 보니 늘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어버리면 이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로 인한 폐해가 더 커집니다.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내 몸의 호르몬 밸런스가 깨어집니다. 이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환경호르몬보다 더 독하고 무서운 겁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화학물질 피하기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본인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정도가 최적일 겁니다. 얼마나 피할 것이냐?는 본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서 상당한 개인차가 있을 거고요.

바디버든 프로젝트 방송 후 자기 몸에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이 검출되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우리 몸에서 검출되는 구체적인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을 따지는 것은 그리 큰 의미 없습니다. 그럴듯한 과학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지식이라는 것은 단지 파편 한 조각일 뿐이거든요. 다큐 2부를 보면 미국 영화배우 한 사람이 출연하죠. 맑은 공기로 가득 찬 캘리포니아 교외에서 40년 동안 유기농만 먹고, 깨끗한 물만 마시고, 전기도 없이 살았는데 자기 몸에 온갖 화학물질들이 검출되었다고 정말 화가 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피하기 위하여 더 노력하면서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검사해보면 아마 더 화가 날 거예요. 여전히 온갖 화학물질들이 검출될 것이 분명하거든요.

다큐 2부를 보면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다루면서 법과 규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마무리를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개별화학물질의 고농도 노출영역은 당연히 국가에서 법과 규제를 통하여 국민들을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죠. 그러나 비선형적인 용량-반응관계를 보이는 저농도 노출영역은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하냐구요?? 기본적으로 저농도 화학물질 복합체에 대한 노출의 경우에는 호메시스와 배출증가, 즉 앞서 이야기한 "먹는 것과 운동"의 관점에서 접근하여야만 그나마 현실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그 다른 관점은 차후에 다시 한번 다뤄보기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