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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보낸 뒤 500일... 아직 남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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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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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이라니. 시간이 정말 속절없이 흘러간다. 아버지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고 택시를 탔는데 그때까지도 광화문에서 서울대병원으로 향하는 율곡로에 차량 통행이 안 되고, 광화문광장 인근 지하철역에도 지하철들이 무정차 통과여서, 할 수 없이 안국역부터 뛰다 걷다 하며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서울대병원 간판이 보이기 시작하니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응급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가망이 없다고 "아버님 못 돌아오십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잠들어 계신 듯했다. 몇시간이 지나 한밤중에 백선하 교수가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났고 시도는 해보자는 말에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 한 번도 못 깨어나셔서 안타까웠지만, 고통을 못 느끼시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317일, 아버지는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돌아가신 것도 너무 슬픈데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경찰에서 아버지 시신을 탈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돌아가시자마자 경찰 3600명이 병원을 둘러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병원에 속속 시민들이 모여주셨고 중환자실에서 장례식장까지 사람들이 구급차를 둘러쌌고 그렇게 시신을 옮겼다. 돌아가신 그날 검사님과 법의관님들이 오셔서 검안·검시를 하고 가셨고, 가족 동의 없는 부검은 없으리라 말씀하고 가셨지만, 부검 영장이 떨어졌다. 국가의 녹을 먹는 분들이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하긴 국가의 녹을 먹는 분들이 아빠를 돌아가시게 했지.

사망진단서도 엉망이고, 장례를 치를 수도 없었다. 혹시라도 아버지 시신을 빼앗길까 봐, 시민들께서 번갈아가면서 장례식장을 지켜주셨고, 후원물품을 산더미처럼 보내주셨다. 장례식장에 택배차가 줄을 지어 들어왔을 만큼. 그런 마음들이 모여 아버지를 지켜냈고, 장례도 무사히 치렀다.

그러나 아버지를 보내드렸을 뿐, 아직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강신명과 구은수는 공직생활에 아무런 흠결 없이 명예롭게 퇴임했고, 나머지 살인경찰 일당도 징계는커녕 무려 승진을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인을 해놓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니, 범죄자 친화적인 국가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과 더불어, 살인무기 물대포도 추방되어야 하고, 시민의 정당한 의사표시를 가로막는 집시법도 개정되어야 한다. 공권력 남용의 근거가 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도 개정되어야 한다. 차근차근 해나갈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백남기 투쟁본부에서 입법 청원 활동도 펼치고 있다.

박근혜도 탄핵됐고, 구속영장이 청구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 밑에서 살인을 저지른 강신명의 구속영장도 청구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기대해본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세월호가 물 위로 올라왔듯, 나와 우리 가족도 언제까지나 기다릴 것이다.

아버지 사건과 관련해서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형사 고발, 국가손해배상 청구가 진행되고 있고 서울대병원을 상대로도 손해배상 청구와 사망진단서 정정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게 500일이나 걸려도 해결이 안 될 일인가 한숨이 나기도 하지만, 지치지 않고 꾸준히 책임자 처벌과 국가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그게 아버지를 보내고 남은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이다.

5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이 지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많은 분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해주시고, 여러모로 마음을 모아주신 덕이다.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계속 싸울 수 있었다. 아버지 사건을 겪으며 연대의 힘, 촛불의 힘을 생생히 체감했다. 연대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국가폭력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