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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회고록] 13. 한반도 대운하의 포기, 4대강 살리기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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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무부시장, 3선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두언 전 의원의 회고록 [최고의 정치, 최악의 정치 - 정권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를 연재합니다. 연재의 다른 글은 정 전 의원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블로그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의 구상과 변질

한반도 대운하 공약은 MB가 서울시장을 그만두고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을 당시 열세후보였던 그를 1위 후보로 밀어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한반도 대운하는 홍준표가 최초로 고춧가루를 뿌렸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 독극물 발언을 통해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홍준표는 2007년 5월 29일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정책 비전 대회에서 "운하를 만들면 기후가 달라져 안개가 많이 끼는데, 배가 다니다가 침몰하면 부산·대구 시민들은 생수를 사먹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수원지에 운하를 띄우는 예는 없다"고 주장했다.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도 이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대운하는 색이 바래기 시작했다.

이재오는 초선 의원 시절에 MB로부터 대운하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자기가 MB를 좋아하게 됐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이재오는 2007년 3월22일자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정 생활을 함께 할 때 한번은 MB 옆자리에 앉았어요. 경부대운하가 가능하냐고 묻자 백지를 꺼내더니 그림을 막 그려요. 수치를 정확하게 대고, 세세한 토목기법까지 설명하는 데 놀랐어요." 그래서 이재오는 MB에게 "당신은 국회의원으로 있기 아까우니 시장이나 대통령이 되라고 권했다"고 한다.

나도 서울시에 있을 때 청계천 다음에 내세울 대선 공약은 대운하라고 생각하고, 언론에도 '청계천 곱하기 백 정도 되는 구상'이 있다고 넌지시 띄운 적이 있다. 그런데 결국 쇠고기 파동이 촛불시위로 이어지면서 대운하가 어렵게 되어버렸다.

사람은 한번 성공한 것을 또 써먹으려고 하는데, 두 번째까지 성공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처절한 실패를 맛보는 경우가 많다. MB도 청계천(물)으로 성공한 후 대운하(물)로 다시 더 큰 성공을 해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청계천과 대운하는 규모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우리나라의 반이면, 청계천을 성공했으니 대운하는 난이도로 볼 때 청계천의 두 배 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운하의 난이도를 정치적으로 보면 청계천의 두 배가 아니라 100배 정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MB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성공한 것을 또 써먹으려다가 실패한 것은 노무현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은 적을 만들어서 성공했다. 적을 만들어서 자기편을 확장하고 견고하게 하는 작전이다. 그는 어차피 비주류 소수파니까 우군이 많지 않았다. 우군을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파 중에 덩치 큰 놈을 표적으로 삼아 계속 공격하면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이회창 등이 주 표적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같은 수법을 쓰다가 거의 모든 분야, 심지어는 자기 세력까지 외면하여 결국 고립무원 상태가 됐다. 일단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화합해서 끌고 가야하는데 그 반대로 간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큰 성공을 하면 그 방식을 또 쓰려고 하다 망한다. MB에게는 대운하가 그 짝이 되어버렸다.

MB가 이미 오래전에 대운하에 대해 생각한 것은 맞다. MB 이전에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고 김석철 교수이다. 만약에 통일이 되면 추가령 협곡에 수로를 만들어 한강과 연결이 가능하다고 봤다. 또, 낙동강을 그대로 두고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우측에 수로를 새로 만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구미공단에서 내려오는 오폐수(정화된 오폐수)를 거기로 내려 보내고 그것을 수로로 이용하는 개념이었다. 꼭 넓고 깊게 파야 운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지선 정도만 왔다 갔다 하면 된다. MB에게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 중에는 세종대 이사장을 지낸 주명건도 있었다.

서울시장이던 2005년 말 MB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구상을 불시에 밝혔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가열되었다. 이후 안국포럼 시절에는 장석효 전 부시장을 팀장으로 한 TF팀이 가동 된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호남 쪽 영산강 수계에서는 대운하 사업을 굉장히 원했고, 금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앞서 얘기한대로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 내부공격으로 상처를 입기 시작하더니, 집권 후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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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여주보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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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강정고령보 © blogkwater.or.kr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의 전환

2008년 5월 13일 나는 MB, 강승규, 정병국, 진성호 등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4대강 재정비 사업으로 축소해 추진하자고 건의했다. 그리고 '여론 조성을 해야 하니 내게 맡겨 달라'고 했다. MB는 그때도 반대를 하지 않는 특유의 애매한 승낙을 했다. 그 주 토요일 나는 방송사 정치부 여당반장들과 점심 약속을 했다. 반장들과 밥을 먹으면서 "오프인데, 대운하를 4대강 살리기로 바꿔야 한다. MB도 거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라고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5월 19일 한 방송사에서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깬 기사가 나왔다. 누군가는 깰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이후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4대강 살리기'로 이슈가 바뀌었다. 언론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그러다가 건교부 산하 연구소에 있는 연구원 한 명이 대운하 용역의 정당성을 강요당했다는 식으로 폭로하면서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나는 지금도 대운하를 4대강 살리기로 바꾸자고 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정당성

MB는 왜 대운하를 왜 하려고 했는가. 지금 상태의 한강을 만든 한강 개발 공사를 한 사람이 바로 MB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말기 당시 토목경기가 나빠지자 현대에서 한강개발계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청와대에 올리고 협의하는 가운데 10.26이 일어났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현대는 다시 한강개발계획을 추진했다. 전두환의 승인 하에 한강 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한강 개발 아이디어의 핵심은 골재다. 한강에서 걷어낸 모래, 자갈 등 골재로 비용을 충당 할 테니 정부 예산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한강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 한강 개발에 대해 시비 거는 사람이 있는가. 한강 개발에서 자신감을 얻은 MB는 그때부터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구상을 했던 것 같다.

한강은 예전에는 죽은 강이었다. 나는 서강대교 북단 구수동에 살던 때를 기억한다. 사람들은 구수동을 똥통머리라고 불렀다. 서울 각지에서 퍼온 인분을 쌓아놓는 거대한 똥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가 오면 댐의 수문을 열 듯 똥통문을 열고 인분을 한강으로 흘려보냈다. 불과 40년 전 일이다. 한강은 매년 여름이면 홍수가 나 인근이 물에 잠기고 , 겨울에는 물이 말라 악취가 진동했다. 우리 집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한강은 하수구로만 쓰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강변의 집값이 제일 쌌다.

그런데 한강을 개발해서 강 바닥을 준설하고, 수중보를 만들고, 고수부지도 정비하고, 강변도로를 놓은 뒤 물이 깨끗해졌다. 이후 한강 주변에 물난리가 없어졌다. 수많은 공원과 체육시설이 생기고 유람선도 오갔다. 무엇보다 낚시를 할 정도로 물이 맑아졌다. 그러면서 강변 집값이 높아졌다. 그런데 낙동강, 영산강, 금강이 과거 한강 꼴이었다. 하수구로만 쓰고 있었다. 나는 강이 원래 기능을 할 수 있게 고기도 잡고, 배도 다니고, 놀이도 하고 이렇게 바꾸는 게 4대강 살리기라고 생각했다. 한강 개발 모델을 생각한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원인 선유도공원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선유도 공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이 다 예쁜 공원이다. 선유도공원 기념관에 들어가면 옛날 선유도를 그린 동양화 족자가 있다. 그때의 선유도를 보면 진짜 신선이 노는 섬이다. 지금 한강은 그때 한강과는 다르다. 고조선 시대의 한강, 신라시대의 한강, 고려시대의 한강, 조선시대의 한강은 다 다를 것이다. 같을 수가 없다. 강 주변에 사람이 늘어날수록 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강이 그대로 있으면 견디지 못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템즈강과 세느강은 옛날 그대로인가? 세느강도 중간 중간에 보를 만들어 물을 채워 흘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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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3년 10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강 자전거길에 나왔습니다. 탁 트인 한강을 끼고 달리니 정말 시원하고 좋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나와보세요"라는 글과 함께 올린 사진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문제점

정태근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4대강을 잘못 건드리면 자자손손 후회한다고 생각했고, 사업을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2009년 11월 5일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정태근은 이렇게 발언했다. "물을 관리하는 문제인 치수는 치산 이상으로 중요한 국가의 백년대계에 해당한다. 4대강 사업 역시 서두르기보다는 4대강 살리기를 우선 추진하면서 10대강(4대강+임진강·동진강·만경강·섬진강+안성천·삽교천) 전체를 어떤 방향에서 살릴 것인지, 물 관리 계획을 정밀하게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논점은 어떻게 하면 강을 살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강 정비 사업이 성공한 이유는 처음으로 하수종말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양평 이남에 있는 한강 수계는 95% 가까이 하수종말처리를 한다. 그래서 한강 수질이 좋아진 것이다. 강 살리기로 가려면 예를 들어 낙동강 수계에 들어오는 하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즉 지류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 그런데 MB는 임기 내에 빨리 끝낼 목적으로 본류 사업을 먼저 하고 나중에 지천 사업을 하는 형식이 됐다. 거꾸로 된 것이다. 이처럼 임기 내에 공사를 하고 역사상 추앙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MB의 업적주의 사고가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 4대강 사업이다.

영산강을 먼저 시작해 제대로 끝냈으면 전라도에 지지 기반도 생기고,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 강도 해달라고 야단이 났을 것이다. 지천 관리를 먼저 해서 전체적으로 수질 개선을 하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강 정비를 하는 것으로 갔으면 지금과는 평가가 달랐을 것이다.

대운하 구상에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택한 것은 배가 정착하는 포구의 역세권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수변 지역에 개발권을 줘서 그 개발 이익으로 공사 비용을 충당하려고 했다. 그런데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그 구상이 깨지니까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야 하고, 그게 딸리니까 수자원공사 예산까지 끌어다 쓴 것이다. 대운하사업은 애초부터 땅장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노무현의 공기업 지방 이전 및 혁신도시 개발이 전국의 부동산시장을 들쑤셔 놓았듯이, 대운하사업도 그리될 뻔했다. 이게 다 우리나라 고속성장기의 올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 싣는 순서>

연재를 시작하며 | 벌거숭이 임금님의 나라에서

1. 위기의 시절을 보내던 MB는 어떻게 서울시장이 되었나

2.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청계천 복원에 협조하게 되었나

3. '좌파정책'인 대중교통개혁의 성공

4. MB 캠프의 태동

5. 안국포럼과 경선캠프의 실상

6.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 "이런 사람은 안 된다" 기자회견

7. 대선승부의 최대 걸림돌 'BBK 사건'

8. 왜 모든 정권은 비슷한 몰락 과정을 거치는가

9. 대선캠프의 변질

10. 백해무익한 정권 인수위

11. 인수위 시절의 어두운 비화들

12. 남북관계를 절단 낸 비밀 접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