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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회고록] 10. 백해무익한 정권 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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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무부시장, 3선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두언 전 의원의 회고록 [최고의 정치, 최악의 정치 - 정권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를 연재합니다. 연재의 다른 글은 정 전 의원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블로그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새 정부

대통령 선거 이틀 전인가 김원용 교수가 내게 왔다. 김교수는 'MB에게 인수위 인선을 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정두언과 같이 하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평소 함께 일을 했던 김도종, 김형준, 박형준, 김해수, 박재성, 경윤호, 윤석대 등에게 실무 준비를 맡겼다. 인수위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와중에 대선이 끝났다. 예상대로였다. MB는 500만 표 이상의 큰 표차로 승리했다. 대선 다음날인 2007년 12월 20일 나는 곽승준과 함께 SBS 방송에 출연했다. 오전에 3시간 이상 방송을 하고, 곽승준과 마포 가든호텔 일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도중 박영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영준 : "형님, 어디 계십니까?"
정두언 : "승준이와 밥 먹으러 가는데 너도 약속 없으면 와"
박영준 :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이날 점심을 먹으면서 박영준은 내게 "선진국민연대도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인수위나 청와대, 내각 인사를 할 때 배려해 달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당시 선진국민연대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나는 잘 모르니 네가 들어와서 직접 인선을 하라"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한 또 다른 이유는 이상득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MB의 허락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안 된다고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MB에게 "이상득 의원도 배려를 해야 하니 제가 박영준을 데리고 인사 작업을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예상했던 대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는 박영준에게 다음 날부터 인수위 작업을 하는 팀들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하고 팀에 합류시켰다. 훗날 박영준을 제외하고 이 팀에 있던 이들은 MB정부 초기에 대부분 소외됐다. 마치 어미를 잡아먹은 살모사처럼, 잘못 데려온 독사 하나가 가족들을 다 물어 죽인 것이다.

정태근은 인수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권력이라는 것이 불과 같아서 너무 멀면 춥지만, 가까이 가면 덴다, 특히 MB 같은 사람이 그렇다'는 지인의 충고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인수위에 참여할 생각하지 말고 선거 준비나 열심히 하라는 지인의 말은 정태근의 마음을 움직였다. MB가 당선된 직후 거주지를 안가로 옮겨야 한다는 경호실 직원의 말을 듣고 그때까지 수행실장을 맡고 있던 정태근은 더 관여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안가 관리 열쇠를 박영준에게 넘겼다. 사저에서 안가로 옮기는 일체 진행을 박영준이 도맡아 처리했다. 인사와 관리 두 분야에서 박영준의 역할이 늘어났다. 나와 정태근은 이런 물밑 흐름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다. 나도, 정태근도 그렇게 주도면밀한 성격이 아니었다. 이 무렵부터 인수위 권력은 물밑에서 서서히 TK(대구경북) 세력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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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오른쪽)과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백해무익한 정권 인수위

나는 평소 인수위원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한마디로 인수위원회는 백해무익한 기구이다. 소위 87년 체제 이후 단임정권이 되면서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인수위가 꾸려졌다. 인수위는 대통령이 당선된 후 항상 난리법석을 피우는 곳이다. 그러다가 정부가 들어서면 새 정부는 새로 조각을 하고 장관들은 업무 계획을 세워서 대통령에게 다시 보고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수위는 뭐하는 곳인가? 인수위가 실질적으로 새 정부에 업무를 인수인계한 경우가 있나? 예를 들어 인수위에서 안을 만들었으면 누군가 끝까지 챙겨야 하는데 인수위가 끝나면 그 안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물론 일부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인수위에 있던 사람이 내각에 들어가는 경우에 한해서다. 한마디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인수위가 두어 달 동안 난리만 치다보니, 시작 전에 오히려 정부를 망가뜨리는 역할을 한다. 거기서 온갖 흠집이 나고, 실수가 나온다. 정권 시작 전부터 볼썽사나운 촌극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인수위는 백해무익하다.

인수위는 실무적으로 인수만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일할 사람에게 통상적인 업무를 인수인계 하는 것 말이다. 인수위와 정부가 같이 갈 것이 아니라면 인수위원도 임명하지 않아야 한다. 임명하더라고 인수위원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고 팀장이라고 해서 실무적으로만 하면 된다. 인수위원장은 당연히 총리 내정자가 해야 하며, 대선 직후 이미 조각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 팀들이 암암리에 준비하고, 내각에 들어가서 인수위에서 준비한 안을 가지고 정부를 운영하면 된다. 왜 내각에 들어가지도 않을 사람들이 난리를 치고 그러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선거 캠프에는 주로 뚜렷한 자기 일이 없고,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일에 바쁜 사람들이 캠프에 올 여유가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캠프에 있다가 다 인수위에 들어와 유세를 피우고, 공무원들은 그 사람들 눈치 보느라 찍 소리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사람들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대통령 당선자다. 모든 민원, 청탁, 인사, 관심이 대통령 당선자에게 몰린다. 그러니까 과시하고 싶어진다. 이것을 보여주는 과정이 인수위 과정이다.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도 '나도 이제 측근이다, 실세다' 하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산하는 장이 되어버린다. 그런 것을 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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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서울 삼청동 인수위 현판식에 나온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 연합뉴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인수위

이처럼 기본적으로 인수위에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내가 구상하는 인수위를 만들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결국 나도 흐름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준비를 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사람을 준비하지 않는다. 그러니 막상 인수위든 내각이든 꾸리려면 사람이 없었다. 보통 대통령들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우습게 안다. 예수님도 자기 동네에서는 인정을 못 받고 불만까지 토로했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까지는 이들과 일해 왔지만 국정은 제대로 된 사람과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옆에서 일하는 사람의 가치를 모른다. 지금까지는 할 수 없이 이들을 데리고 왔지만, 모두가 순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다 마찬가지였다. MB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사람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총리는 누구로 하고, 내각은 어떻게 꾸리겠다, 누가 인사의 중심을 맡고~~' 이런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었다.

나는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깜짝 놀랐다. 인사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MB는 언제나 일주일 후, 한 달 후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다. 일주일 후, 한 달 후 내용에 대해 보고를 하면 무관심하거나 딴청을 부리거나 졸았다. 인사도 마찬가지였다. 매사에 사람에 대한 준비가 없고 그때 가서 하면 되지 하는 식이었다. 인선을 하려고 "혹시 생각하신 분 누구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식은땀이 났다. 속으로 '큰일 났구나. 조각 누가 해?내가 해? 나도 준비된 사람이 없는데' 하는 걱정이 몰아쳤다.

인수위 준비팀은 수시로 모였고 내가 지시를 내렸다. "누구누구 인적 사항을 뽑아봐라, 그리고 거기서 나름대로 검증을 해봐라." 그런 식이었다. 장소는 신촌에 있는 민들레영토 같은 카페의 회의실을 빌려서 회의를 했다. 각 부처 인수인계 작업은 인수위에서 실무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인수위 비서실은 실제로 인사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인수위원장, 즉 총리내정자와 대통령이 상의하면서 내각 인사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런데 정작 인사를 한다는 인수위 비서실은 준비도 없이 허둥지둥 대기만 했다. 한마디로 주먹구구식이었다. 과거 정권들은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지만 비슷했을 것이다. 이른바 '준비된 대통령'이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위기 때마다 사람을 바꿔왔다. 재야에서 영입을 하는 등 집권 전에 상당한 정도의 인재풀을 갖고 있었다. 그런 DJ조차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청와대나 내각을 꾸리는데 허겁지겁, 주먹구구식으로 했다. 그런데 그런 과정도 전혀 없었던 MB는 말해 무엇 할 것인가. 어쨌든 인수위를 구성하고 인수위원들을 발표하니 인수위원들에게 여기저기서 인사 청탁이 빗발쳤다. 그때 인수위 간사 역할을 하고 있던 사람은 백성운이었다. 백성운이 인수위에 들어가려는 캠프 및 정치권 주변 인사들 의견을 받아서 이들을 넣어달라고 하소연했다. 현실적으로 그럴 만했다. 인수위원, 전문위원 인선을 마치고 손을 털면서 박영준에게 "네가 백성운과 상의해서 인수위원들이 요청하는 사람들을 보완하고 내일 아침까지 마무리해라" 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영준은 잔여 인사를 한다면서 거의 2박 3일을 끌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때 그가 인수위를 선진국민연대 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선진국민연대가 실체가 없는 명단일 뿐이고 할 일 없는 한량들이 다수 모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들이 인수위에 포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잠깐 마무리를 하라고 한 사이에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을 인수위에 왕창 집어넣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수위 전문위원, 자문위원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그 중에서 내게 가장 많이 항의가 들어온 것은 박아무개와 관련해서였다. 먼저 박형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형준 : "형, 박00이 인수위에 들어간다며?"
정두언 : "누군데? 난 몰라, 명단에 없었는데?"

박재성에게도 연락이 왔다. 노사모 핵심이면서 부산 지역의 유명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박아무개가 이명박 인수위 들어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면서 걱정을 했다. 이런 류의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오자 나는 박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두언 : "어떻게 된 거야?"
박영준 : "000가 부탁해서 할 수 없이 넣었어요."
정두언 : "......"

보통 인사는 인사권자가 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물론 자기가 아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사권자가 인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인사를 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사는 실무자가 하는 것이다. 나는 전문위원까지는 대강 알았지만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서는 누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또 이미 확정해 놓은 안을 박영준이 바꿀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MB 인수위 인사가 엉망이 된 데는 일을 꼼꼼히 챙기지 않고 대체로 믿고 맡기는 내 스타일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내 책임도 크다.

인수위 기간 중에 벌인 외교팀의 매국적 행각

어쨌든 국정 운영에 대해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대선 바로 다음 날인 12월 20일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20일 대통령 당선자의 주요 일정은 4강 대사를 면담하고, 4강 지도자와 통화하는 것이었다. 4강 지도자 통화까지는 좋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다음 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대사와 면담을 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는 대선 다음날 그들 나라의 대통령 당선자와 우리나라 대사가 만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행사 자체가 우리가 약소국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짓을 누가 꾸몄을까. 외교 담당 파트에서 했다. 그때 제일 좌장격이 Y 前장관이고, 그 다음이 K 前차관이었다. P 대사도 있었다. 이 팀들이 선대위에서 쭉 일을 해왔다. 나는 나중에서야 이 일을 알고 분개했지만 이미 물 건너간 일이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외교부는 정말 정치적인 집단이다. 국익을 최우선 하지 않고 자기 인사 이익을 최우선 하는 일에 발군인 집단이 외교부 관료들이라면 너무 과한 얘기일까? 외교 관료들은 위에서 얘기한 일을 한다며 대통령 당선 다음 날 하루 종일 당선자를 장악했다. 당선자가 외교부 관리들에게 놀아난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며, 당선자가 얼마나 국제적으로 미숙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교 관료들은 나중에 더 큰일을 벌인다. '총선 전 3월 중 방미'를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3월 중에 방미하려면 1월부터는 준비를 해야 한다. 외교 담당 파트가 계속 당선자 옆에 있겠다는 소리다. 외교 관료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프로젝트가 '총선 전 3월 방미'란 얘기다. 당시 나는 이런 흐름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은밀히 진행되던 이런 물밑 움직임을 알아챈 사람은 신재민이었다. 신재민은 "큰일 났다 . 이러다가 미국 가서 삐걱하면 총선 다 날아간다. 잘못하다가는 정권 시작하자마자 식물정권이 될 수 있으니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나는 MB를 만났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위험합니다" 했더니 MB는 "당신이 외교를 알아?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러냐"는 식으로 반응했다.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꾀를 냈다. MB에게 외교팀과 정무팀이 방미와 관련해 끝장토론을 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박형준, 주호영, 신재민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토론회에서 정무팀은 외교팀을 몰아붙여 '3월 방미'를 무산시켰다. 만약 그냥 진행했다면 총선 전에 촛불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MB는 2008년 4월15일부터 19일까지 방미했다.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벌인 것이 외교팀이었다. 국익은 고려하지 않고, 알면서도 무시하고, 자기들의 개인적인 인사 이익을 위해 이런 일을 벌였을 것이다.

사실 혈맹 관계인 미국과는 주요 현안이 굉장히 많다. 현안에 대해 어느 정도 협상을 해놓고, 대통령이 유리하게 마무리하고 오는 것이 통상적인 외교 절차다. 가서 알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방미를 서두르게 되면 반대로 그들의 입장을 들어줘야 한다. 전혀 외교적이지 않다. 외교팀들은 처음에 당선자의 소위 간을 본 후, 만만하다고 확인되면 그때부터 자기들 페이스로 끌고 간다. 2009년 5월 20일, 미국 앨리바마의 현대자동차 공장 오픈식에 초청을 받아서 간 나를 당시 주미공사 한 직원이 안내했다. 나는 그에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미국 의회에서는 전혀 FTA를 비준할 가능성이 없고, 내 정보로도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데, 미국대사관은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고 보고를 올리느냐. 이해가 안 가니 설명을 해달라."고 물었다. "그게 아니고 본국에서 그렇게 보고 하라고 해서 보고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외교부 관료들은 대통령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나라를 가지고 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교부 관료들의 이런 행태는 나중에 CNK 다이아몬드 사건도 야기시킨다. 외교부 관료였던 김은석이 "투자 가치가 있다"라는 보도자료를 돌린 사건이다. 지극히 보수적인 외교부에서 통상적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김성환 장관은 김은석이 CNK 보도자료를 돌리겠다니까 '그렇게 하세요' 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외교부란 데가 원래 설사 다이아몬드가 쏟아져 나온다 해도 그런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 곳이다. 김성환은 김은석이 박영준과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라가 그렇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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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없이 초라한 국정원장

국정원에서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파견 온 사람은 김유환이었다. 김원용 교수가 추천했다. 김유환은 김교수의 제자였다. 나는 그 전까지 김유환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인수위에서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런 사람이 와있다는 얘기 정도만 들었다. 그런데 사방에서 내 인맥이라고 해서 김유환을 견제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김유환은 국정원 내에서 신망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박영준 등은 내가 인수위에서 밀려난 이후 김유환을 갈아치우려고 했다. 그때 막아준 사람이 이재오였다. 이재오의 측근인 진수희가 외교통일안보분과에 있으면서 김유환을 알고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 국정원장에는 김성호가 내정이 되고, 김유환은 청문회 준비팀장을 맡았다. 야당은 김성호가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했다는 등 전력이나 전직을 들며 청문회를 보이콧했다. 박영준 등은 김성호에게 은밀하게 김유환을 헐뜯었다. 국정원을 장악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그런 와중인 2008년 3월 4일, 나는 청와대에서 김원용 교수와 함께 MB를 만났다. 총선 한참 전, 이상득 불출마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할 때였다. 당시 나는 "이렇게 가서는 큰일 난다, 나라가 개판되겠다"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이상득은 한발 한발 출마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권력을 사유화하는 이들에 의한 국정농단이 불 보듯 뻔했다. 나로서는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불면의 밤이 계속됐다. 결론은 내 불출마였다. 이른바 '물귀신 작전'이라고 할까. 나는 "내가 불출마 한다고 선언을 하면서 이상득도 불출마 하도록 하자"고 결심했다. 어느 날 밤에 사무실로 찾아온 기자들과 통음하고 상가집에 가는 내내 통곡을 하다가 도중에 돌아오는 등 이 시기 나는 실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나는 김원용 교수에게 전화했다. "총선에 출마를 안 하려고 하니 MB에게 얘기를 해 달라." 얼마 뒤 김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통령에게 얘기를 하니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한다." 나는 김교수와 함께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과 오찬을 했다. 정부 출범 이후 첫 청와대 행이었다. MB는 "한 석이라도 아껴야 하는데... 내가 다 생각이 있다"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MB의 말대로라면 이상득을 불출마로 이끌 복안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이명박이야!' 분위기가 바뀌니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총선 얘기도 빠질 수 없었다. 나는 "지금 같아서는 이번 총선에서 3분의 2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개헌석도 가능해 진다. 그런데 지금 여러 가지 감표 요인들이 발생하고 있다. 잘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장이 저렇게 청문회도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명박은 "국정원장을 만나서 조언을 해주라"고 했다.

청와대를 나온 나는 김성호에게 연락했다. 롯데호텔 안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박재성이 내게 보고를 했다.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실에 근무하는 김 행정관이 김성호를 만나 '정두언이 만나자고 했냐. 만날 필요 없다. 자가 발전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성호는 김 행정관의 부산 브니엘 고등학교 선배다. 박영준이 김 행정관을 김성호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나는 기분은 나빴지만 '설마 그러랴' 하고 있는데 얼마 뒤 김성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만나기로 한 것을 취소해야 겠는데요." 이미 박재성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나는 이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김성호에게 "제가 만나자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만나라고 한 것이다. 보좌관 애들 얘기 듣고 그러시는 것 같은데 원장님 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세요?" 하고 몰아붙였다. 머쓱해진 김성호는 "그래요? 알겠습니다. 뵙죠"라고 말했다. 롯데호텔에서 김성호를 만난 내가 내뱉은 첫마디는 "원장님, 앞으로 큰일 하셔야 하는데, 얼라들한테 흔들리면 어떡합니까. 너무 걱정 됩니다"였다.

그러나 결국 김유환은 이 와중에 튕겨져 나왔다. '정두언 인맥'으로 찍힌 김유환은 정부 출범 후에도 보직을 못 받고 결국 국정원을 퇴직했다. 18대 국회 내내 나는 국정원 출신인 이철우 의원과 본회의장에서 나란히 앉게 되었다. 자연히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고 무척 가까워졌다. 어느날 내가 그에게 물었다. "사실 나는 김유환을 잘 모르는데, 그 친구 나 때문에 너무 억울하게 되었다. 근데 그 친구 어떤 사람인가?" 이철우 의원의 답은 간결했다. "그런 사람이 국정원을 맡아야 국정원이 제대로 돌아가지요" 세상은 이렇듯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글 싣는 순서>

연재를 시작하며 | 벌거숭이 임금님의 나라에서

1. 위기의 시절을 보내던 MB는 어떻게 서울시장이 되었나

2.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청계천 복원에 협조하게 되었나

3. '좌파정책'인 대중교통개혁의 성공

4. MB 캠프의 태동

5. 안국포럼과 경선캠프의 실상

6.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 "이런 사람은 안 된다" 기자회견

7. 대선승부의 최대 걸림돌 'BBK 사건'

8. 왜 모든 정권은 비슷한 몰락 과정을 거치는가

9. 대선캠프의 변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