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두언 Headshot

[정두언 회고록] 3. '좌파정책'인 대중교통개혁의 성공

게시됨: 업데이트됨:
1
연합뉴스
인쇄

서울시 정무부시장, 3선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두언 전 의원의 회고록 [최고의 정치, 최악의 정치 - 정권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를 연재합니다. 연재의 다른 글은 정 전 의원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블로그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 교통개혁의 추진 배경

나는 MB의 서울시 교통 개혁이 청계천 복원보다 더 어려운 과제였다고 본다. 서울은 기본적으로 교통난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높기 때문에 교통난을 해결하면 사회비용을 크게 절감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역대 서울시장들은 모두 교통 개혁을 시도했다. 특히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이후 서울시장 후보들이 내놓았던 가장 큰 공약 가운데 하나는 교통 개혁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개혁 과정에서 꼭 비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개혁을 추진하면 누군가 관계 기관에 투서를 하는 등 문제를 만들어 방해했다. 그만큼 기득권자들의 저항은 집요하고 날카로웠다. 이 때문에 서울시 교통 사정이 나아진 적도, 근본적으로 바뀐 적도 없었다.

MB는 역시나 어느 때보다 더 진보적인 교통 개혁을 내걸었다. 그가 교통 개혁을 주요 어젠다로 내세웠던 막후에는 음성직이 있었다. 음성직은 미국 노스웨스턴대 대학원에서 도시 및 교통계획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국토개발연구원을 거쳐 1994년부터 중앙일보 교통 담당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2002년 7월 21일 서울특별시 교통관리실장으로 임명된 이후 서울시의 대중교통 개혁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다. 실무 역량은 아무래도 부족했으나 아이디어는 뛰어났다. 아마 공무원에게 교통 개혁을 맡겼으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안 되는 이유를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개혁을 추진하기 전에 제 풀에 물러서는 경향이 크다. 음성직은 공무원 출신이 아니고 실무를 잘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정부에서 사람을 쓸 때 공무원 출신을 쓰는 것이 일을 잘 아는 이점도 있으나, 개혁을 할 때는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교통 개혁은 철학적 기반도 갖고 있었다. 차보다는 사람 중심의 교통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육교나 고가도로, 지하보도를 없애고 광화문 등 대로에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 등이 추진됐다. 성균관대 김광식 교수 등이 이러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들은 환경 중심, 인간 중심의 교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시대 흐름과 맞았고 결과적으로 이명박 브랜드를 더욱 강화하는데 일조했다.

중도, 좌파까지 호응을 이끌어낸 비결

당시만 해도 MB는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청계천을 위한 시민회의', '대중교통을 위한 시민회의'를 구성하여 흔히 말하는 중도 또는 좌파적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 참여시켰다. 여론의 지지를 받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홍보를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소통을 매우 잘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때만 해도 MB의 정치색이 중도 이미지로 비쳐졌기에 진영을 초월한 시민참여들이 가능했다.

나는 MB에게 '중도의 중요성'에 대해 시종일관 강조했었다. "대권을 잡으려면 중간층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관되게 중도 노선을 걸어야 한다. 예를 들면, 기자와 얘기하면서 절대로 빨갱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 또 극우파들이 여는 집회에도 절대 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MB도 그 부분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 경선이 끝날 때까지 그 노선을 잘 유지했다.

2016-09-30-1475199926-8379052-art_1413420873.jpg

© 연합뉴스

대선연대를 겨냥한 중도실용주의

대선에서 연대의 중요성은 역사적으로 봐도 증명된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통해 산업화 세력과 연대해 대통령이 됐다. 김대중은 충청권의 김종필과 연대해 승리했다. 반면 이회창은 본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집토끼를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중도 노선을 취해 산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크게 보면 전자는 친박근혜계, 후자는 소장파와 이명박계였다. 결과적으로 산토끼를 잡으러 가는 것이 맞았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에서 대선전 자체가 연대를 통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대선은 자기 진영만으로 이길 수 없다. 지역이건, 세대건, 계층이건 연대를 해야 이긴다. 2012년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면 승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중도 진영의 사람을 당겨 오겠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MB 입장에서 연대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중도실용주의로 가는 것이었다. 중간층은 지역적으로 볼 때 수도권이다. MB는 서울시장직에 있었기 때문에 수도권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이것이 MB가중도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던 전략적인 바탕이었다. 중도실용주의에 대해서 나는 2005년 3월 27일자 '大韓敎警新聞'에 글을 쓰는 등 이론적인 뒷받침을 위해 노력했다. '실용주의 개혁'이라는 제목의 기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류 역사사상 개혁을 부르짖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개혁이 사회적 화두로 대두된 것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15년간 개혁이 계속되고 있다. 개혁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인가. 오래 걸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개혁의 실패를 얘기해주는 것이 아닌가. 개혁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좋게 만든다는 뜻일 것이다. 무언가 좋아지지 않았으니 개혁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간의 그 무수한 개혁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한마디로 엉터리 개혁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단이 잘못 되었든가, 처방이 잘못 되었든가, 아니면 둘 다 잘못된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엉터리는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가. 첫째, 관념에 치우쳐 현실을 꿰뚫어 보지 못할 때 나타난다. 둘째, 국내외의 지식과 정보가 수준에 미달할 때 나타난다. 셋째, 일머리를 모르는 3류들이 추진주체가 될 때 나타난다.

이러니 개혁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했는데도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세상살이만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이제는 이따위 개혁을 그만 두던지 아니면 제대로 된 개혁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개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무언가 좋아지는 개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서울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개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서울에서는 지금 무언가 좋아지고 있다. 필자는 그것을 실용주의 개혁이라고 부르고 싶다. 실용주의 개혁은 첫째, 관념에 기초하지 않고 현실에 기초하여 문제의 해결을 지향한다. 따라서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즉 고객의 중심이 된다. 둘째,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따라서 철저한 사전 준비와 함께 유연한 추진방식을 택한다. 셋째, 아마츄어리즘을 배격한다. 따라서 경험과 기술을 갖춘 프로패셔날들이 추진주체가 된다.

청계천복원과 버스개편의 예를 보자. 이명박 시장을 보통 우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대기업 CEO출신이라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복원이나 버스개편은 전형적인 좌파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를 좌파라고 할 것인가. 시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모색하면 되는 것이지 좌면 어떻게 우면 어떻다는 것인가. 사회주류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공급자 입장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과거사를 규명하고, 사학과 언론을 규제하려고 한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세상살이와 별 상관도 없는 일들이다. 개혁은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지 관념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민정부 이래 참여정부까지의 개혁은 대부분 전격적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발표하고 서둘러 밀어붙이다 보니 시행착오는 물론 후유증이 처방보다 훨씬 심각하기 일쑤다. 이에 비해 청계천복원과 버스개편은 각각1년과 2년의 기간 동안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쳐 시작했기 때문에 예상과 달리 공기를 앞당기거나 빠른 정착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준비기간 동안에 관계집단의 이해조정과 동의, 외국사례의 벤치마킹, 최첨단 정보와 기술의 활용 등 예상 가능한 변수들을 완벽에 가깝게 검증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개혁은 행정이나 경영의 경험이 없는 운동가나 학자 출신들이 추진 주체가 되어 왔다. 따라서 개혁의 모든 과정이 어설프고 삐걱거리고 중도하차하고 궤도수정하며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청계천복원과 버스개편은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갖춘 테크노크라트들이 그것도 사전에 철저한 훈련을 받은 후 추진해 왔다. 따라서 시화호나 경부고속철이나 새만금과 달리 공기와 예산을 엄청나게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여가며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온 것이다.

이렇듯 청계천복원과 버스개편은 실용주의 개혁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서울시가 중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강북개발, 뚝섬 숲 등 녹지 공간 확대, 경영마인드를 기초로 한 재정개혁 등도 눈여겨보면 모두 실용주의 개혁이라는 기본 틀을 가지고 추진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가 있다.

교통개혁은 전형적인 좌파정책

나는 MB의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정책이 교통개혁이라고 생각한다. 교통 개혁은 전형적인 좌파 정책이다. 시민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면 좌파 정책인지 우파 정책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중도실용주의이다. MB의 교통 개혁은 왜 좌파 정책인가. 공공서비스인 버스의 노선은 정부 수립 이후 매매를 하고 상속을 하는 등 사유화 되었다. 그 결과 버스는 돈이 되는 곳으로만 다녔다. 시내만 버스가 바글바글하고 외곽 지역은 한참 기다려야 버스가 왔다. 서울 중심가의 교통 체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버스노선을 재정리 하려면 노선이 겹치는 것을 솎아내고 정리를 해야 했다. 일단 서울시에서 노선을 회수하고 정리한 후에 다시 돌려준 것이니 준공영 정책이었다. 알짜 노선을 포기해야 하는 회사들은 당연히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풀어낸 기본 아이디어는 '버스 회사가 적자가 나면 서울시에서 보전해준다'는 것이었다. 대신 교통카드를 도입해 버스 회사의 수익은 완전히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되자 노조가 일단 찬성으로 돌아섰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당시 교통 개혁을 추진하면서 1차 목표는 노조가 찬성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언론,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교통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서울시 버스 노조가 교통 개혁에 찬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그 전까지 버스회사의 경영은 항상 적자였다. 따라서 노조가 임금을 올리자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버스회사가 운영이 되는 이유는 사업주가 자신의 버스회사에 편법으로 사채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자를 받아먹으니 회사는 적자여도 사업주는 돈을 버는 구조였다. 그런데 적자가 나면 서울시에서 보전해준다고 하니 노조와 함께 버스 소유주들도 결국 교통 개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MB는 교통 개혁을 세 부분으로 접근했다. 첫째, 준공영제를 통해 버스회사가 가지고 있는 이익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즉 정책 기조를 대중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잡았다. 둘째, 전용차로를 중심으로 한 환승시스템을 도입했다. 셋째, 보행자 중심의 교통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버스 전용차로 환승시스템은 브라질 꾸리치바시에서 배웠다. 시장과 실무자들이 브라질 현장을 견학하는 등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했다. 시스템을 그냥 도입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발달된 IT기술을 이용해 교통 카드에 다양한 기능들을 집어넣어 통합시스템을 구축했다. 알다시피 훗날 다시 외국에 그 소프트웨어를 팔았다.

2016-09-30-1475201334-7934501-200351870.jpg

© 연합뉴스

실적을 가지고 도전한 최초의 대권주자

MB는 서울시장을 한 번만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두 번은 기회가 없었다. 승부를 내야 했다.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정신으로 무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단임은 긍정적인 점이 있다. MB가 청계천프로젝트와 교통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절박감과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울시의 교통 개혁이 모범 사례가 되어 전국 5대 광역시로 전파되는 데는 채 3년도 안 걸렸다. MB가 대선을 치를 때쯤 전국 광역시의 교통시스템은 전부 서울형으로 바뀌었다. 거의 2천 5백만 명에서 3천만 명 정도가 혜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대단한 효과인가. MB는 비즈니스를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실적을 남겨야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는 늘 돌파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 그가 '한반도 대운하' 또는 '4대강 사업'에 보였던 강한 집착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MB는 실적주의, 업적주의자였다.

사실 박정희 이래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실적을 가지고 대통령직에 도전한 사람은 없었다. 이전에는 모두 군부독재 청산, 경제 회복, 민주주의, 지역주의 해결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내세웠다. 이런 면에서 MB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물론 대통령이 된 뒤에는 오히려 그런 점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과정보다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면 괜찮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대기업 사장 시절 또는 서울시장 시절의 생각이 최고 통치자가 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정치란 과정이나 가치가 굉장히 중요한데, MB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 MB는 서울시장 시절 성과없이 말만 많은 정치꾼이 있는 여의도에 가지 않겠다며, 기자들을 만날 때조차 마포까지는 가도 여의도는 잘 가지 않았다.

교통개혁의 보이지 않는 비용

교통 개혁은 곧 교통복지와 닿아있다. 교통 체계가 좋아지면 환경도 좋아진다. 그래서 교통 개혁은 시대적 흐름에 맞는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사실 사람들이 모르는 대가가 있었다. 시민들의 세금이었다. 버스회사의 적자를 시민들의 세금으로 메우기 때문에 사업주와 노조의 참여가 가능했고, 지금도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서울시에서 버스 회사에 주는 보조금은 2천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것을 2천억 원 아래로 줄이라는 것이 MB가 내린 주요 지침이었다. 그런데 보조금은 버스대수와 맞물려 있다. 버스 한 대가 늘어나면 적자가 늘어나므로 적정 이윤율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서울시에서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좋아지니 버스를 늘려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잇따랐다. 모든 지방정부는 부채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사실 지방세는 한정된 재원이다. 그나마 서울시는 거둬들이는 세금이 많기 때문에 덜하다. 2013년의 경우 서울시는 버스 회사에 2천3백 여 억원의 돈을 지급했다. 한마디로 교통 개혁의 성공에는 시민들의 부담도 큰 몫을 했다.

2016-09-30-1475199541-6266835-20160930103829.PNG

서울시장과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는 정치

서울시장과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정치다. 그런데 'MB 서울시'는 사실 정치가 별로 필요 없었다. 당시 서울시의회는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어 의회가 시정을 발목 잡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한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어 다음에는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언론 환경도 우호적이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MB는 매우 유리한 상황에 있었다. 정치적인 장애가 없어 성공한 시장으로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MB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데 오히려 큰 장애가 되고 만다. 대통령은 정치인이지 행정가가 아니다. MB는 서울시장직을 수행하면서 정치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정치는 필요악'이라고 보았다. 더구나 기업인 출신인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정치의 폐해를 몸소 겪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서울시장 시절 MB는 "내가 기업도 말이야 십 수개를 만들어 운영해봤는데~" 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국가 운영이 별 것이냐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정치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간과한 위험한 생각이었다.

MB에게는 운도 따랐다. 무능한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은 노무현 정부 때문에 행정에도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사고가 팽배해졌다. 기업에서 성공했고 서울시장도 성공했으니 국가 경영도 잘 할 것이라는 '경제대통령 이명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엄청 높았다. 당시 MB의 참모들도 '경제대통령은 MB'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직이야 말로 다양한 이해와 갈등을 잘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대통령 자체가 행정가보다는 정치인이라는 얘기다. 기업에서 성공했다는 것과 경제를 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개발독재시절에 대기업은 대부분이 관주도로 성장을 한 것이지, 시장경제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다. 현실 경제는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경제가 결코 아니다. 모든 경제정책은 정치적인 과정을 거쳐 결정되고 집행된다. 따라서 경제가 정치와 유리될 수 없는 것이다.

MB, 능력보다는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자리를 준다

정치의 영역 중의 핵심이 인사라 할 수 있다. MB의 정치 기피증은 그의 인사스타일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내가 보기에 MB식 인사 철학은 성실한 사람, 충성심이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주는 것이다. 게다가 능력과 소신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사자에게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어도 열심히 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맡겨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이른바 '내 사람', '끼리끼리' 인사가 무엇이 문제냐는 생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된 뒤 이른바 '고(고려대) 소(소망교회) 영(영남) 인사'라는 비판을 받지 않았던가. 이미 서울시장 시절 인사에서 이런 싹이 보였다.

2005년 국정감사 때 MB는 야당 의원들로부터 '서울시 인사가 편중됐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영남 출신 인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2006년 1월 쯤 서울시 국장급 인사가 있었다. '시장 이명박'이 하는 마지막 국장급 인사였다.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있던 정태근은 MB가 대권을 노린다면 인사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역편중 인사에서 탈피하여 탕평인사, 공정인사를 한 시장으로 남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MB를 만난 자리에서 넌지시 물었다.

정태근 : "국장 인사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이명박 : "정부시장이 인사를 좀 아나?"
정태근 : "이대로는 안 됩니다. 대권을 생각하신다면 지역 안배를 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명박 : "무슨 소리야. 열심히 하는 사람 시키면 되지 지역 안배가 왜 필요해!"

나도 당시 정태근과 생각이 비슷했다. 나는 심지어 KTX를 타고 지방에 업무차 가는 MB에게 편지를 써서 주기도 했다. 왜 인사에서 지역안배가 필요한가 하는 것이 편지의 요지였다. 나는 지역 안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인사에서 소외된 이들이 퇴임 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그것이 MB의 대권 행보에 나쁜 이미지를 남길 것을 염려했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마지막 국장급 인사는 호남, 충청 인사들이 적절히 안배된 채 잘 마무리됐다.


<글 싣는 순서>

연재를 시작하며 | 벌거숭이 임금님의 나라에서

1. 위기의 시절을 보내던 MB는 어떻게 서울시장이 되었나

2.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청계천 복원에 협조하게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