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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소로 연애를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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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10대의 연애 ① 인소로 연애를 배웠어요

'인소'를 아시나요?

인소는 인터넷소설의 줄임말로, 인터넷-웹사이트, 블로그, 카페 등-에 연재된 글을 의미한다. 인터넷소설은 인터넷에 연재되는 모든 소설(혹은 유사작품)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굉장히 광범위하지만, 여기서 내가 칭하는 '인소'는 '인터넷 10대 로맨스 소설'을 지칭한 것이다. 인소가 흥행했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다. 18살인 지금 보면 틀린 맞춤법과 욕, 유행어, 이모티콘이 남발되던 유치한 문학이지만. 당시 11살가량 이었던 내게 인소는 삶의 모든 것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읽다가 혼난 적이 많았을 정도로 나는 인소를 좋아했다.

인소의 장르는 다양하다. 평범한 고교 일상을 다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계약 결혼, 조폭, 전국 서열 n위, 여주인공이 남장을 하는 이야기, 왕따가 알고 보니 일진이었던 이야기, 판타지(주로 차원여행물이다), 진지한 느와르, 실화를 바탕으로 쓴 러브실화소설의 줄임말 '럽실소', 연예인을 등장인물로 한 팬픽, 성관계를 묘사한 야한 소설, 일명 '야설' 등 나름의 세분화를 거쳐 인소 문화가 탄생했다.

내가 인소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언니에게 블루투스로 소설을 공유 받았던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받았던 작품 중엔 일반 로맨스, 판타지, 심지어 야설까지 존재했다. 처음 언니와 소설을 공유하고 나서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블루투스로 인소 공유하기가 나름의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대부분 서로가 가진 소설을 공유하는 형태에 머물렀지만, 나는 그에 국한되지 않고, 직접 인터넷에서 좋은 소설을 찾아내 공유하여 친구들의 일명 '물주' 혹은 '평론가'가 되기에 이르렀다. 아마 지금까지 읽은 인소를 전부 합쳐보면 300편 정도로 생각된다.


대체 왜 우리는 인소에 열광했을까?

인소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뛰어나다. 특히 일반 순수문학 시장에서 벗어났던 10대 인터넷 사용자들은 클릭 몇 번 만으로 다양하고 많은 양의 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더 열광했다. 그리고 인소 내에서 쓰이는 쉬운 어휘와 이야기의 배경이 그 시대의 문화를 잘 반영해주었기 때문에 몰입도도 높았다.

인소 중엔 '엄빠주의 소설', '수위소설' 등으로 불리는 야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사이트에서는 현재까지 럽실소의 검색내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야한 이야기들은 10대 여성 청소년이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던 내용이 가득했다. 때문에 자극적이고도 흥미로운 내용이 끊임없이 등장한 야설은 마치 소녀들 사이에서 일종의 야동처럼 공유되어 왔다.

대부분의 인소는 주제가 한정적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것도 열여섯에서 스물까지의 젊은 여성. 하지만 집안 형편은 그렇게 좋지 못하거나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 과거에 왕따를 당하는 등의 아픈 기억이 있고 평범을 가장한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같은 여주인공이다.

이런 여주인공의 연인이 되는 남성은 대부분 일진이다. 그것도, 싸움으로 제일가는 학교&전국 서열 1위. 집안이 매우 부유하지만 부모님이 이혼하셨거나 떨어져 산다. 얼굴은 매우 잘생겼으며 키 또한 크다. 옷을 잘 입고, 시.크.한 매력의 소유자다. 일진이기에 말을 조금 험하게 하고, 주변의 여성 또한 많지만 알고 보면 마음은 여린, 상처받은 늑대 같은 소년이다.

대부분 학교 혹은 시내에서 처음 만난 일진인 남성에게 여성이 실수를 하고, 그 탓에 여성이 남성에게 어떤 것을 저당 잡힌다. 그것을 빌미로 여성과 남성은 계속 만나고 정서적 교류를 나누다 교제의 단계까지 온다. 하지만 남성의 곁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많은 여성 라이벌이 존재하고, 남성을 짝사랑하던 악녀의 계략에 둘은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남녀는 다시 만나 오해를 풀고 화목하게, 평생 사랑을 나누게 된다.

장담하건대, 인터넷소설에 등장하는 80%의 10대 로맨스 물이 이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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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소의 문제점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봤던 대부분의 인소는 '여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쓴 여혐문학'이었다. 인소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평범하지만 능력이 없다. 재산도 없고, 오히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버거울 정도다. 하지만 남주인공은 재력 있는 재벌가의 문제아다. 능력 없는, 수동적인 여주인공이 결국엔 능력 있는 남주인공에게 '간택' 받아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다.

자꾸만 수동적인 여성상, 신데렐라 스토리를 계속 생산해내는 미디어는 문제가 있다. 슬픈 환경에서 자라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부유하지 않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게 웃는 여주인공. 이런 한정적인 여성상은 많은 여성들에게 능력은 없지만 좋은 남자를 만나서 좋은 집에서 성공하라는 메시지를 던져, 수동적인 객체가 될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인소 내에서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여주인공과 대화를 하고 있던 친구인 남성을 질투심에 때리고, 여주인공에겐 협박을 일삼는다. '넌 내꺼야', '넌 나만 봐야해', '아무데도 가지마' 등의 말을 하며, 벽을 치거나, 유리를 부수거나, 물건을 던진다.

또, 남주인공은 다툼 후에 자리를 떠나려는 여주인공을 벽에 밀쳐 강제로 키스한다. 여주인공은 처음엔 싫어하며 그를 밀어내려 하지만 그와의 키스와 더불어 밀려오는 두근거림과 애틋함에 마음을 돌린다.

이런 데이트 폭력 코드가 인소에 계속 등장하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점이다. 자칫하면, 자신의 힘으로 엄연한 폭력을 행사하는 남주인공의 행태가 '사랑'으로 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엄연히 두려운 일이 되지만, 인소에서는 하나의 판타지가 되고, 박력이란 이름 아래 또 다른 남성성이 된다. 이런 미디어의 영향으로 실제 데이트폭력이 벌어진 상황에서 피해자가 자신이 가해자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며 자책하는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또 멋진 남자 주인공, 그의 '남성성'을 일진에만 국한시키는 것도 결코 좋은 방향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진은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 서클이다. 상대가 얼마나 멋지고, 잘생긴 사람이라고 해도, 어쨌든 일진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는 지양해야할 인간상이라고 생각한다. '당당하고 힘이 있다'와 '폭력을 쓴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그러므로 다시 본 인소는 성적 대상화, 여성혐오, 데이트 폭력 세 요소가 고루 갖추어진 완벽한 문학인 것이다.


현실연애와 인소의 상관관계

당연하게도 인소에 등장한 연애와 현실에서의 연애는 매우 달랐다. 현실엔 잘생기고 돈 많은 일진도, 불우한 집안환경이지만 밝은 성품과 예쁜 얼굴을 가진 사람도, 연인을 노리는 악녀도, 운명적인 만남도 없었다. 나 역시 한때는 여주인공이 남장을 하고 남자기숙사에 들어가는 인소를 감명 깊게 읽고 나서, 나도 남장을 하고 싶다며 압박붕대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혹시나 나에게도 드러나지 않아 몰랐던 힘이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학교마다 여린 마음을 가진 일진이 한 명쯤은 있는 줄 알았다.

인소는 판타지다. 그것도 현실고증이 아주 잘 된 연애 판타지.

하지만 인소를 처음 접하던 당시, 나는 매우 어리고 아직 성과 연애에 대한 개념이 확립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학교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내용들이었으니까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건강하지 않은 연애형태의 문제점을 모르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당시에 '박력 있는 남성', '벽치기', '강제키스'가 내 로망이었으니 말 다했지. 그러나 문제는 인소가 결코 나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나 이외에도 또래의 수많은 소녀들이 이런 인소에 열광했다. 그들에게는 인소가 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지, 각자의 연애관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당시 인소의 생산층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학습 받은 성 관념에 의하여 인소를 창작해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과거 주 소비층이었던 소녀들은 수년이 지난 현재 인터넷 문화 생산의 큰 축이 되었다. 이들은 과거에 인소로 학습 받았던 수동적인 연애관을 또 다른 현재의 소녀들에게 재학습시키고 있진 않은지 성찰해 봐야할 것이다.

이외에도 인소문화가 가진 문제는 다양하다. 희박한 저작권 의식, 자극적인 주제, 가해자 중심 서사, 복사한 듯 획일적인 이야기 등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인소가 유통되는 공간의 한계로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앞으로의 인소

이런 인소문화는 현재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전해지고 있다. 다양한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 중인 웹소설, 커뮤니티 등지에서 '썰'이란 이름으로 공유되는 글들, 팬픽과 비슷한 형태로 공유되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빙의글 등등.

과연 이런 류의 미디어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이 나를 포함한 많은 소녀들에게 좋은 일인지 재고해 봐야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소녀들이 다양한 형태로 바뀐 인소를 접할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단지 규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빠르고 간편한 인터넷 문화는 막을 수 없을뿐더러 불합리하다. 그 이전에 제대로 된 성교육을 통해 10대 청소년의 성의식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쨌든 인소는 내 10대의 전부였고, 나는 인소에 울고, 웃고, 화내며 자랐다. 앞으로의 인소문화는 인권감수성을 함유하고, 건강한 연애상을 제시하며, 보다 합리적으로 변하기를 희망한다.


* 이 글은 섹슈얼 헬스케어 브랜드 EVE 블로그에 실린 10대 인턴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