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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대졸 공채' 이제 바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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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까지도 채택하고 있는 대졸 공채 제도는 그 유래가 적어도 50년은 되었는데, 이제는 그 효용이 정말 다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2.

식당 주인이 종업원을 신규 채용할 때 그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심사 기준이 달라질 것이다. 주방에서 일할 직원이면 조리사 자격증 유무를 따져야 할 테고, 홀에서 서빙할 직원이면 한 번에 그릇을 몇 개 나를 수 있는지 시험해 볼 테고, 배달 직원이면 운전 경력을 보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 대기업에서는 역할 불문하고 일단 HR(인사 담당 부서)에서 왕창 뽑은 다음에 각 부서에 뿌려준다. 이 과정에서 배달직 지원자가 조리사 자격증을 따야 하는 식의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어렵게 경쟁을 통과한 사람들도 본인의 능력과 희망에 상관 없이 배치되다 보니 직무 만족도가 떨어지며 조기 이직하는 비율이 높고, 기업의 신입 사원에 대한 만족도도 낮다. 아무 일이나 시켜도 금방 잘 해내기를 원하다 보니, 머리가 좋고 성실한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최근까지 기업에서는 딱 두 가지를 봤다. 학벌/학점으로 중고등학교/대학교에서 얼마나 성실했는지를 봤고, '직무적성검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IQ가 높은 지원자를 골라낸 것이다.

3.

최근에는 '직무 역량 중심'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하고 있다. 2015년에 삼성전자는 각 부서 수석급 실무자들에게 각 대학 전공 이수체계와 강의계획서를 분석하게끔 해서, 각 교과목이 그 부서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를 조사했다. 아주대 전자과에서는 〈전자기학〉을 무슨 책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가르치는데, 이 과목이 당신 부서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몇 퍼센트나 관련돼 있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즉, 전체 평점이 얼마인지 보다는 지원하는 사업부별로 연관성이 높은 과목에 가중치를 두고 또 고급 선택 과목 이수 여부를 따져서, 성적표를 입력하면 그 사업부에 해당하는 점수로 자동 환산되게끔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2016년부터 이런 시스템은 삼성전자 공채에 적용된 것으로 보이고, 앞으로 다른 대기업으로도 퍼져 나갈 것이다.


4.

학생들을 상담할 때 해주는 얘기도 달라졌다. 2015년 이전까지는 "회사에서 학점만 보고 뽑으니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말고 성적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고, 들어가서 뭐 시킬지 모르니 한 분야에 집중하지 말고 두루두루 수강하라"고 조언했었다. 최근에는 "3학년 올라갈 때까지는 어렵겠지만 관심 있는 분야와 취업 목표 기업을 설정해서 그에 따라 이수 계획을 차별화하고, 4학년 때 통합 설계 프로젝트 과목을 통해 면접 때 이야기할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실 무척 어려운 얘기다. 전자공학에 어떤 분야들이 있고, 서로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학부 졸업할 때까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취업 자체를 위해서라면 피상적이더라도 하나를 선택해서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5.

대졸 공채는 물론이고 박사급 경력직 채용에서도 우리는 HR의 힘이 너무 세다. 현업 부서에서 산학 과제 등을 통해 수년간 관찰한 인재를 뽑고 싶어도 HR이 어깃장을 놓는 경우가 많이 있다. 더군다나 이때 학교 간판 같은 껍데기가 주요 판단 근거가 된다. 현업 부서에서 아무리 항의를 해도, 채용을 몇 건 막느냐가 실적이 되는 것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HR은 요지부동이다. 이에 반해, 미국 기업의 채용은 현업 부서가 주도하고 HR은 거들 뿐이다. 그렇다 보니 저절로 직무 중심의 인사관리가 이루어지고, 개인이 받게 되는 보상도 개인이 소속된 기업보다는 개인의 직무에 따라 결정된다.


6.

현업 부서에 채용 권한을 줘야 한다는 얘기는 사실 오래 전부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장해왔다. 미국 기업에 있다가 한국 기업으로 스카우트된 사람이 한둘인가? 삼성전자만 해도 임원급으로만 매년 수십 명이 들어온다. 결국 최고위층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기업으로서는 그럴듯한 반대 논리도 갖고 있다. 우선, 현업 부서에 채용 권한을 주면 온갖 청탁이 빗발칠 거라는 거다. 또, 삼성전자 같은 경우에는, 지금처럼 뽑아도 회사가 충분히 잘 나간다는 논리다.


7.

대기업 엔지니어들을 재교육하러 출강한 지가 15년쯤 됐다. 최근에 과/차장급 엔지니어를 교육해보면 전체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떨어져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삼성전자 엔지니어들도 십년 전과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회사 전체의 전문성은 올라갔지만 개개인으로 보면 아니다. 시스템을 잘 갖춰 놓은 덕분인지 아니면 탁월한 리더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그 상태로도 업무가 가능하다는 게 종종 신기할 지경이다. 더 잘 할 수 있는 여지를 채용 제도가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삼성전자는 몰라도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다른 대기업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채용 제도를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