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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작전'은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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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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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성모 교수는 일제 말의 동화정책, 문화적 일체화 정책을 '정신적 토벌'이라고 불렀다. 일본은 '남한대토벌' 작전계획 아래 동학농민군 잔존세력과 의병의 근거지까지 완전히 없앤 다음 조선을 강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정신적·문화적 우월감을 갖던 조선인들의 내면까지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본의 언어, 교육, 문화를 전체주의 방식으로 주입하여 '천황'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만들고자 했다. 정신적 노예화였다. 거부하는 자에게는 경찰의 가혹한 보복이 따랐다. '응징적 토벌'이었다.

일제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은 조상이라고 거짓말을 했으며, 폭력적 지배를 문명화·근대화라 말했고, 조선 청년들을 불쏘시개로 동원한 전쟁을 '대동아 성전'이라 가르쳤다. 그들의 정신적 토벌은 앞으로도 조선인들이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이 가끔씩 던져주는 사탕을 받아먹으면서 노예로 만족하도록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전이었고, 교사는 칼을 찬 폭군이었으며, '국민'학교는 다른 생각이 용납되지 않는 군대였다.

지난 11월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물대포를 '조준' 직사하고, 쓰러진 뒤에도 계속 물대포를 퍼부어 한 농민을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하였고, 구급차에까지 물대포를 퍼부은 경찰의 진압과 국정 교과서 밀어붙이기 정책을 보면서 나는 21세기형 토벌이 진행되는 것을 느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종북으로 몬 댓글 활동을 '대내 오염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의 '사상 오염'을 막기 위해 국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교육부의 비밀 티에프(TF)팀 운영, 절차를 무시한 공무원 인사 조처, 무더기 표를 찍어 여론까지 조작한 의혹이 있다. 교과서 집필자 명단도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 그것은 '군사작전'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일제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정치'에 관여하지 않은 '양민'은 칭찬을 했다. 일본은 반외세 민족의식을 갖는 농민과 유생들만 표적으로 삼았고, 그들의 항쟁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주변 주민들만 '초토화' 작전, 보복과 응징의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 14일 경찰은 서울 시내 모든 곳에 차벽을 설치하지도 않았고, 길 가는 시민에게까지 물대포를 조준 직사하지는 않았다. 단, 집회에 나와서 경찰에 대드는 시민은 해산의 대상이 아니라 '응징'의 표적이 되었다. 한편 공중에서는 역선전, 회유, 협박, 투항을 위한 선무공작과 심리전이 진행 중이다. 시위대는 폭도이며, 국정 교과서 반대하면 비국민으로 간주될 수 있으니 폭도로 몰려 토벌 대상이 되기 전에 빨리 투항하여, 국가의 품으로 '귀순'하라고 한다.

토벌작전 중에 중립은 없다. 군사작전 중에 법과 절차를 지키는 것은 사치다. 차벽을 설치한 것이 법과 절차를 위배한 것인지, 물대포를 직사한 것이 경찰 내부 규정을 위반한 것인지 따질 필요는 없고, 시위를 모의한 세력만이 '엄한' 처벌의 대상이 된다. 국정 교과서 찬성 집단의 행동은 '우리 편'이니 상관없고, 반대 서명한 교사들만 색출 처벌 대상이라 한다. 교육은 사상 주입이며, 언론은 홍보이며, 정책과 정치는 곧 통치의 일부라는 소리다. 작전 중 자체 실수가 드러나도 무조건 잘했다고 우기고, 필요할 때는 거짓말도 한다.

19~20세기의 일본 제국주의는 21세기 한반도에서 살아 움직인다. 국민이 토벌 대상인 나라, 오직 하나의 생각, '순수한 생각'을 가진 '양민'들이 순종하면서 사는 나라는 죽은 나라다. 노예는 동물적 만족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인종적 사상적 순혈주의를 고집하고,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주입하여 통치하는 전체주의는 20세기에 이미 역사의 심판을 받아 사라졌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나라, 사상의 백가쟁명이 가능한 나라, 정치권에서 진보와 보수가 치열한 정책논쟁을 할 수 있는 나라만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