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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국가'를 넘어서 사회국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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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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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은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 거냐?"고 말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단순노동을 비하하는 그의 평소 생각이 드러난 것이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에 부담을 느낀 기업 쪽의 거부감을 집약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에 반대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 참여를 거부했다. 노동자들에게 월 200만원 주고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반대해서 자사고 학부모들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인재육성이 필요하다"며 자사고 폐지 반대 시위를 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 교육 공공성 강화 정책에 대한 이해 관련자들의 반발이 점차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대기업들의 양보가 전제되지 않는 노동보호 정책은 그동안 저임금으로 버텨온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을 위태롭게 할 것이고, 자사고 폐지 정책은 자녀의 대입 성공에 사활을 건 자사고 학부모들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항의의 배후에는 기업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며, 소수의 인재가 다수의 단순 노동자를 먹여 살린다는 경영의 관점, 경영자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할 뿐이라는 소비자 주권론이 깊이 깔려 있다.

이런 반발과 집단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 자유한국당 그리고 보수언론이라는 명백한 반대세력뿐만 아니라 경영자/소비자의 관점이 내면화된 한국 시민사회의 기층과도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아니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능력주의, 경쟁력 지상주의, 승자독식의 문화를 넘어서는 힘겨운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제 문재인 정부가 다시 남북화해 정책에 시동을 거는 것을 보고 환호하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에 슬퍼하는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국정원 개혁 의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나 역시 이들과 생각을 같이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도 노동을 비용의 관점에서 보는 경영자주의 관점, 자율성과 다양성이라는 소비자주의 입장 위에 서서 노동/교육 정책을 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정치적 민주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맞서기 어려웠고, 국내 재벌·관료들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남긴 적폐가 크기는 하나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앞의 두 민주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연속성이 크다. 내 식으로 말하면, 지난 20년은 온 사회의 기업화, 기업국가의 시대였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재벌대기업과 경제관료들이 편 논리, 사고방식, 문화가 국가기관, 언론, 대학, 교회, 가정을 지배하고, 결국 국민 대다수의 일상과 행동을 지배했다. 그래서 온 국민은 자기개발 경영자가 되었으며, 도시 중산층은 부동산투자 기획자가 되었고, 사회구성원은 주권적 시민이 아닌 소비 주체가 되었고, 인문사회계 대학생은 경영학과 학생을 선망하게 되었다.

촛불행동은 바로 국민들이 자기개발 경영자, 주식투자자 그리고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본 국민 재교육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 3기가 아니라 제2의 민주화를 시작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제2의 민주화, 그것은 기업국가, 경영국가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그것은 노동을 단기적 비용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사회적 잉여로 분류되는 단순노동자, 학력 부진 학생들에게 자신감과 능력을 부여해서 당당한 사회적 주체로 만들지 않는 한 사회통합은 물론 경제 활성화도 어렵다는 생각에 도달하는 데 우리는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것은 숙련형성보다는 임금인상과 기업복지에 치중했던 조직노동에도 반성을 촉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당장의 이해 조정, 약간의 정책적 궤도 수정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정책전환과 국가 비전이 필요한 때다. 이 정부는 '기업의 국가'를 모두를 위한 국가, 즉 사회적 국가로 변화시키자는 큰 그림을 갖고서 이익집단을 설득하고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