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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가니 이익집단들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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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사립유치원 원장들 앞에서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라고 발언한 이후 반발이 거세지자, 언론이 단설을 '병설'로 잘못 보도했다고 해명하기는 했으나, 그의 계속되는 발언을 들어보니 "단설 유치원을 지을 때 ... 주위 사립유치원이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를 살펴야 한다"는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의 입장을 달리 표현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공립 유치원이 전체의 20%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에서, 공공보육을 더 확충해서 젊은 부부의 고통을 덜어주고 저출산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민원'을 해결하겠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소신인 것 같다. 그의 '규제 프리 존' 정책은 "규제는 암 덩어리"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을 다른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도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의 선박 규제 완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는 다를까? 문재인 측이 '순환출자 해소' 공약을 철회한 것을 보면 재벌 대기업의 입김이 깊이 들어간 것 같다.

아직 선거운동 초반기인데 강력한 이익집단들은 벌써 대선 후 한국의 미래 세력으로 등장한 것 같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따지고 보면 비선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정부가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을 통해 삼성 등 4대 재벌의 민원처리 기구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 핵심이 아닌가? 재벌 기업, 민간병원, 보험회사, 사립대학, 사립유치원, 각종 전문직 협회 등 우리 사회의 막강한 이익집단은 그 재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대형 로펌, 검찰과 사법부, 여야 정치인들을 움직여 그 어떤 개혁안이라도 좌절시킬 힘을 갖고 있다.

지난번 특검의 2015년 삼성물산 합병 조사 과정에서 삼성 미래전략실의 장충기 사장은 2015년 10월부터 1년 동안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94차례 통화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감사원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한다. 아마 정부의 모든 정책이 그들의 이해관계 사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거대 이익집단의 목표는 명확하다. 교육, 주택, 의료 부문을 "가급적 시장에 맡기자"는 논리를 동원하여 먹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미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의 많은 공공부문이 민영화되거나, 공공부문 확대가 계속 저지되어 서민들의 부담은 늘어날 대로 늘어난 상태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선진국 문턱에 있으나 사회의 모든 지표는 아직 후진국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육과 주택이 대표적이다. 이 두 영역에서 한국은 공공부문이 가장 취약한 미국, 영국 등 앵글로색슨형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시장의존적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유치원과 대학에서 교육비를 거의 자비로 부담해야 하고, 임대주택의 비율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거의 최하 수준이기 때문에 주거는 '개인 능력'으로 해결할 문제다.

강력한 이익집단들은 공공 지출에 극히 적대적이다. 그들은 보수 언론과 학자들을 동원해서 규제 완화와 시장의 효율성을 퍼뜨리고, 대형 로펌에 포진한 전직 고위관료와 판검사들을 동원해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줄 수 있는 법안을 제안한다. 물론 다원주의 사회에서 이들의 합법적 영향력 행사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처럼 불법 로비와 정경유착은 반칙이다. 그런데 심각한 반칙을 한 전경련이 자진 해산을 거부했다.

이제 촛불이 꺼져가니 그들이 온다. 아니 그들은 이미 모든 곳에 깊이 들어와 있다. 정치 지도자나 정당이 확고한 철학과 비전, 정치력, 그리고 사회적 기반이 없으면, 이들의 집요한 로비와 선전에 그냥 넘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 초기 삼성의 로비가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좌우했는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재벌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언론과 민간 연구기관, 대형 로펌에 맞설 수 있는 법률가 단체, 그리고 정권과 이들의 유착을 고발하고 국민 다수 요구를 제출할 시민사회단체가 더 절실히 요청된다.

지금 대선 국면의 모든 후보는 자신이 국민의 편이며, 자신이 집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뜻과 의지를 믿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조직되지 않은' 국민은 조직된 이익집단을 당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 위에 또다시 섰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