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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기로에 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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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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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190만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전국 대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대통령은 이제 국민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확성기로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해도 잡혀가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미 그를 탄핵했다.

그런데 불과 1년 전 검찰은 박근혜 비방 유인물을 배포한 박성수씨를 현행범으로 체포·구속했고, 경찰은 박근혜 비방 유인물 배포한 사람 잡겠다고 먼지털기 수사를 했다. 지금 촛불시위를 거의 생중계하는 대부분의 종편 방송은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세월호 참사 등 박근혜 정권의 중요 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 사실 보도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거의 온종일 잡담을 틀어댔다. 비박, 친박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박근혜 표 정책'에 이견을 제기하기는커녕 거의 맹종으로 일관했다.

이번 게이트가 매우 충격적이기는 하나, 세월호 구조의 실패 외에도 박근혜 정권의 인사와 정책의 '비상식'과 불법은 사실 지난 4년 동안 계속된 일이었고, 2년 전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서 이미 문고리 3인방의 권력농단은 드러났었다. 그런데도 지난 4년 동안 검찰과 경찰, 종편 언론, 새누리당 등 공조직은 오직 내·외부 고발자들만 탄압했다.

대통령제하 집권 여당의 자율성이 제한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금까지 새누리당의 행태는 과거 이승만의 자유당을 능가하는,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세월호 구조 실패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에 속하지만, 이후 진상규명은 국회의 임무였다. 그런데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 앞에 "세월호 특조위는 하는 일 없이 예산만 낭비한다"고 했고,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도 "세월호는 교통사고", "좌파단체 색출하자", "선체는 인양하지 말자" 등의 막말을 쏟아내면서 유족과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이 공식 추대한 대선 후보로서 대선에 당선되었고 또 새누리당을 기반으로 해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배우'로 내세운 감독, 기획, 연출자는 새누리당이었다. 새누리당은 지난 4년 동안 집권세력으로서 매년 수백조 국가 예산과 수천개의 중요 직위를 전리품처럼 이용했다.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취임 직후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 박근혜 대통령에게 간언이라도 한마디 한 새누리당 의원이 있었던가?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상표, '창조경제'가 비선 실세들의 '돈벌이 잔치'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창조경제'가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헛소리"라는 지적을 했을 때, 새누리당은 과연 어떤 입장이었나?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 김무성이 이제 탄핵과 개헌을 추진하자 하고, 심지어 친박계 중진들까지 자신들이 세웠던 배우에게 무대에서 내려오라 한다. 국민의당과 일부 야권 지도자들은 "친박도 사죄·반성하면 용서하자"고 한다. 조짐이 좋지 않다.

조선일보나 김무성은 마치 '대통령 5년 단임제' 헌법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여론을 몰아간다. 87년 6월 항쟁 직후 '직선제' 개헌만이 문제의 해결책인 양 구도를 잡아서 시위대와 야권을 분리시키고, 야당 지도자의 분열을 이용해서 재집권을 했던 바로 그 논리, 그 세력들이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정권은 교체되어도 세력은 교체되지 않았고, 재벌 체제는 공고화되었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헬조선'은 여기서 왔다.

'촛불시위'에 모인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 힘으로 탄핵 국면까지 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기획, 감독, 연출자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정책도 변한 것이 없다. 87년 6월 항쟁 직후처럼, 아니, 4·19, 아니 8·15 직후처럼 한국은 또다시 기로에 서 있다. 이 게이트의 모든 범법자와 공모자를 철저히 수사·처벌하고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검찰 개혁, 국정원 개혁, 선거법 개정, 공영언론 개혁이 없는 개헌론이나 대선 경쟁은 또다시 국민을 '졸'로 전락시킬 것이다. 촛불은 '청산'과 '대안 마련'을 위한 국민적 토론, 조직화된 압력 행동으로 진화해야 한다. 탄핵은 시작이고, 대선은 종착점이 아니라 과정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