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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뮤직비디오 거장은 권력의 산을 타기로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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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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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택은 한때 뮤직비디오의 모든 것이었다. 그의 이름에서 '미르재단'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뮤직비디오들을 한 번 떠올려보시라. 1999년 모든 뮤직비디오 상을 독식하다시피 했던 이승환의 '당부'. 양조위와 전도연과 류승범이 소매치기로 등장한 '더 네임'(The Name), 장진과 김현주가 애틋한 사랑을 나누던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 차은택은 1990년대에서 2000년대를 관통하던 소위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대가였고, 광고계의 거대한 별이었다.

당시 차은택의 이름과 항상 함께 거론됐던 사람은 또 다른 광고·뮤직비디오 감독 박명천이었다. 라이벌인 차은택과 박명천은 비슷한 시기 같은 프로덕션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둘은 달랐다. 차은택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다. 박명천은 대중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다. 차은택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고 했다. 박명천은 대중을 선도하고 싶어했다. 사실 이런 점은 차은택이 더 잘 알았다. 그는 2002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명천은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대중을 놓고 타협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트렌드에서 제일 처음이 되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면, 난 반대로 그 트렌드 안에서 가장 잘 쫓아가려는 사람이다."

20여 년이 지났다. 차은택의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는 지나간 시대의 산물이다. 지나치게 격정적이고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내러티브는 좌뇌에 스테로이드를 맞고 감수성이 과도하게 폭발한 듯한 21세기 초 한국인들의 어떤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박명천은 다르다. 그가 1997년에 만든 닉스 청바지 광고와 임은경을 스타로 만든 티티엘(TTL) 광고에는 여전히 시대를 초월하는 날이 살아있다. 그가 어떤 솔로 여가수들의 뮤직비디오도 뛰어넘지 못한 박지윤의 '성인식'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차은택과 박명천의 커리어는 완벽하게 다른 결말로 향하고 있다.

차은택은 미르재단의 몸통일 가능성이 높다. 여러가지 정황 증거가 있다. 미르재단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는 차 감독의 후배가 작성했다. 미르재단 이사들은 모두 차은택의 지인들이었다. (그리고 논란이 일자마자 모두 사퇴했다.) 문광부가 진행한 국책프로젝트를 따낸 '더플레이그라운드'라는 업체의 실질적인 대표도 차은택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차 감독이 박 대통령을 수시로 만났다는 증언도 쏟아진다. 성공한 예술가인 차은택은 대체 왜 청와대의 권력이 필요했던 걸까? 그건 어쩌면 예술가로서의 그와 박명천을 비교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창의력을 뛰어넘으며 살아가야 한다. 90년대의 대가가 2010년대의 대가는 아니다. 2000년대의 대가가 다음 10년의 대가일 수도 없다. 어떤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뛰어넘어 시대를 초월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다. 차은택은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차은택이 2012년 제작한 런던 올림픽 응원가 '코리아' 뮤직비디오는 경복궁과 농악과 아리랑 등이 뒤섞이는 국뽕의 짬뽕이었다. '강남 스타일'에 이어지는 싸이의 '행오버' 뮤직비디오는 심지어 자신의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는 올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름대로 최고라고 자신했는데, 어느 순간 직감이랄까, 내가 밀려나고 있는 게 아닌가 위기감을 느꼈다. 내가 내려오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 너무 불안했다"고 말했다. '허핑턴포스트' 원성윤 기자는 이에 대해 "정상에 섰던 차은택은 하산을 선택하는 대신 다른 산을 타기로 결심했다"고 썼다. 확실히 차은택은 다른 산을 타기로 한 것 같다. 권력의 산이다. 그가 박근혜 정부 아래서 맡은 직책들을 보라. 인천아시안게임 영상감독, 밀라노 엑스포 전시관 영상감독, 창조경제추진단장,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진 속의 그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언제나 빵모자나 비니를 쓰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했다. 박근혜 대통령 뒤에 서 있는 그는 단정한 머리를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회색 수트를 입고 있다. 시대를 사로잡았던 영상 예술가라기보다는 박정희 뒤의 이후락 같은 모습이다. 대체 그가 새로운 등산로를 발견한 뒤 꿈꾸었던 정상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광고·뮤직비디오 감독들은 결국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토로하곤 한다. 차은택과 박명천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다만, 그들이 만들고 싶어한 영화는 달랐다. 차은택은 "대중이 좋아하고 평단에서 욕은 안 먹는 정도"의 영화를 하고 싶다 말했다. 반면 박명천은 (아직 지지부진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괴물 2'의 감독 크레딧에 여전히 올라 있고, 봉준호 대표작의 속편을 만드는 건 대중도 평단도 욕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도전이다. 이건 가정이지만, 두 예술가가 추구하던 꿈의 방향이 지금 그들의 위치를 만든 거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미르재단' 스캔들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차은택은 대통령의 사랑을 국가주의적 예술혼으로 불태워 레니 리펜슈탈'의지의 승리'에 못지 않은 역사적 프로파간다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 역시 나름 (여러가지 의미에서) 굉장한 일이 됐을 것 같다.

*이 글은 한겨레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