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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7에서 한국 정치가 배워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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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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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없앴다. 애플은 아이폰7을 출시하면서 3.5㎜ 단자를 아예 없애버렸다. 1878년 이후로 크기는 조금씩 변했지만 인류는 계속해서 이 구멍을 이용해왔다. 이어폰 단자가 없는 전자기기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애플은 과감하게 막아버렸다. 애플 부사장은 이것을 '용기'라고 말했다. "왜 아날로그 헤드폰 단자를 없애냐고 묻습니다. 이유는 단 한 단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용기입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해낼 용기 말입니다." 그러면서 애플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선이 없는 미래를 믿습니다." 당신은 믿습니까? 한국 언론들은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경향신문'은 '아이폰7, 애플의 상징 '혁신'은 없었다'고 썼다. '한국경제'는 '혁신은 없고 '쇼'만 보여준 애플 아이폰7'이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혁신 퇴색, 감동이 사라졌다'고 했다. '조선일보'도 '이어폰 구멍 없앤 게 전부? 아이폰7 혁신은 없었다'고 썼다. '한겨레'도 '혁신? 글쎄'라고 다소 소심하게 혹평했다.

의아했다. 사전에 따르면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는 의미다. 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당연한 듯 있던 것을 없애는 것만큼 혁신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행위를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이것과 비교할 수 있는 혁신은 스마트폰을 전쟁용 수류탄처럼 강력하게 만들어 낸 삼성 갤럭시노트7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좀 지나치게 폭발적인 혁신이기는 하다만.

사실 혁신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지나치게 하향평가된 단어다. 한국 정치는 항상 혁신을 이야기한다. 어찌나 혁신을 자주 이야기하는지 이렇게 혁신을 자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바로 혁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끝없이 혁신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정당들은 언제나 혁신위원회를 만든다. 새누리당도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뭘 했냐면, 공천제도를 혁신하겠다고 덤벼들다가 싸웠다. 수권정당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덤벼들다가 싸웠다. 혁신위원장을 누구로 하느냐고 싸웠다. 혁신위원장의 혁신이 혁신이 아니라고 싸웠다. 혁신위원장이 이렇게는 혁신 못 한다고 싸웠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 하나도 창조경제를 위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설립이었다. 일단 창조경제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그걸 위해 혁신센터를 만들었다고 하니 뭔가 머리가 좀 더 아프긴 하다. 게다가 얼마 전 안철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동물원'이라고 표현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그 말에 불쾌함을 표했다. 그래서 또 둘은 싸웠다. 그러니까 결국 한국 정치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는 당파가 다른 사람들끼리 '이것이 혁신이네, 저것이 혁신이네' 하면서 싸우기 위한 매우 혁신적인 구실로서 혁신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아이폰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여전히 아이폰7에서 이어폰 단자가 사라진 것이 혁신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의 생각을 바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당신은 앞으로 시작될 '선 없는 미래'를 막아 세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보자. 나는, 당신은, 우리는 오랫동안 선이 없는 미래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간절히 원해왔다. 꼴사납게 얽히고설키는 선을 감춰주는 정리박스 따위를 인터넷 최저가로 구입할 필요가 없는 날을 기다려왔다. 모든 전자기기에서 선이 사라지는 날을 은밀하게 기다려왔다. 이미 당신은 충전도 업로드도 무선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선이 없는 미래는 이미 오기 시작했다. 애플이 시작한 이상 모든 기업이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저항은 강렬할 것이다. 여전히 3.5㎜ 단자는 영원히 인류의 문명과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 저항군은 끝없이 튀어나올 것이다. 하지만 저항군은 결국 굴복할 운명이다. 애플은 업계의 스탠더드 자체를 바꾸기 위해 아예 예전의 스탠더드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건 분명히 용기다. 컨슈머리즘의 독재라는 말을 들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누군가는 냈어야 하는 용기다.

혁신은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없애는 것일 수 있다. 당에 외부인을 끌어들여 혁신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혁신이 아니다. 이미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내부인들이 구습을 과감하게 없애는 것이 혁신이다. 새로운 경제용어를 창조한 뒤 그걸 위해 번드르르한 센터를 만드는 것이 혁신이 아니다. 불필요한 경제적 구악을 과감하게 없애는 것이 혁신이다. 혁신을 위해 뭔가를 또 만들 필요는 없다.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하던 작은 구멍 하나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미래는 시작된다.

*이 글은 한겨레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