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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든 것을 다 물어봐야 훌륭한 민주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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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XIT
Neil Hall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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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xit

집단지성을 모으는 국민투표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인가? 브렉시트 이후 계속해서 쏟아지는 질문이다. 국민투표가 얼마나 정확하게 국민의 이익을 반영하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아, 나로서는 이 질문 자체가 정말이지 신성모독처럼 여겨진다. 전두환의 사진이 교실 벽에 걸려있던 시절에도 교과서는 '직접 민주주의는 최상의 민주주의'라고 가르쳤다. 모두가 최종적으로 꿈꾸는 민주주의는 스위스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지 부시가 앨 고어를 제치고 당선됐을 때, 지난 한국 대선이 끝난 후, 브렉시트가 끝난 지금, 사람들이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에 빠질 법한 이런 시기는 잠깐이라도 신성모독을 해 볼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다.

noel gallagher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의 멤버였던 음악 역사상 최고의 독설가 중 한 명인 노엘 갤러거는 브렉시트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텔레비전에 매일 밤 정치인들이 나와서는 마치 이게 무슨 엄청나게 큰 일이고 영국을 엄청나게 바꿔놓을 것처럼 지껄이잖아. 알겠어. 근데 우리가 니네한테 돈 주고 시킨 거는 이 나라를 제대로 굴리는 거니까 그거나 똑바로 정신 차리고 하란 말이야. 왜 사람들한테 그걸 물어봐? 99%의 사람들은 돼지 똥 만큼이나 멍청한데. 게다가 이라크 전쟁에 군인을 보낼 때는 국민투표를 했냐고. 안했잖아? 바보자식들."

노엘 갤러거는 아마 일생에 단 한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격한 농담에도 일리는 있다.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일본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국민들에게 동일한 투표권을 주기 때문이다. 노인 두 명 묶어서 한 표, 중장년은 한 표, 대학생에겐 두 표를 줘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기타노 다케시의 농담이다. 이 글을 쓰는 나의 의견은 아니다. 내 마음 속 어딘가 춥고 어둡고 위험한 구역에서 혹여나 저런 생각을 잠시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하지만, 절대 내 의견은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겠다.

하지만 노엘 갤러거와 기타노 다케시의 과격한 농에 걸린 뼈를 한번 잘 발라보자. 정말 모든 것을 다 물어봐야 훌륭한 민주주의인가? 나는 종종 한국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서 무언가 중요해보이는 사안들을 척척 물어보는 것이 놀랍다. 도시 브랜딩을 위한 시안들의 최종 선택을 소셜미디어로 묻고, 선거를 위한 정당의 배너를 소셜미디어 의견으로 선정하고, 특정한 사업의 이름을 소셜미디어를 통한 시민 투표로 선정한다.

나는 정당의 브랜딩 담당자가 소셜미디어에 모든 배너의 사진을 올리며 "어떤 것이 더 좋으세요?"라고 묻는 걸 볼 때마다 기함을 한다. 시민이 모든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시민은 전문가가 아니다. 관료와 정치인과 마케터에게는 전문적인 식견으로 미래를 예측한 뒤 시민들을 선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잊어서는 곤란하다. 아니, 노엘 갤러거 말마따나 그거 하시라고 뽑아드린 거 아닌가.

소셜미디어 팔로워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정치인의 게시물에는 종종 "그런 건 전문가에게 용역을 주고 물어보시면 좋겠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어쩌면 그 댓글이야말로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인들이 가장 귀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의견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은 사실상 모든 결정을 이미 다 끝내놓고 '우리가 이렇게나 여러분과 소통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그냥 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더 문제다. 그건 기만 아니면 기믹(gimmick·이목을 끌기 위한 수법)이다.

nigel

나는 여전히 국민투표를 믿는다. 집단지성은 여전히 훌륭하게 작동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모든 사안을 집단지성에 기대는 게으른 정치적 지성과, 모든 사안을 투표에 기대는 게으른 관료적 도박이다. 다시 브렉시트로 돌아가자면, 그걸 국민투표에 붙인 것은 놀라울 정도로 아마추어적인 일이었다고 먼 훗날 대영제국, 아니, 런던, 스코틀랜드와 느슨한 연방으로 붙어있는 '잉글랜드-웨일즈 연합국'의 역사책은 기록할 것이다. 이건 국민의 대부분이 이후 결과를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전문적인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는 선거였다. 그럼에도 데이비드 캐머런은 도박을 했고, 졌다. 그리고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