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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감독과 배우의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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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RID BERGMAN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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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

나에게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 스토리 중 하나는 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야기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자였다.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무방비 도시'라는 영화로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사조를 일으킨 남자였다. 두 사람이 만날 일은 전혀 없었다. 한 명은 스웨덴 출신 할리우드 스타, 다른 한 명은 이탈리아 영화감독이었다. 로셀리니의 영화에 버그만이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누구도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편지 하나로 바뀌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1945년 뉴욕에서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와 '전화의 저편'을 봤다. 큰 감동을 받은 그녀는 로셀리니에게 편지를 썼다. "만약 영어는 아주 잘하고, 독일어는 아직 잊지 않았고, 프랑스어는 아주 잘하지는 않고, 아는 이탈리아어는 오직 티아모(사랑해)뿐인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당장 이탈리아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로셀리니는 편지에 화답했고, 두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만났다. 그러고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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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남편과 딸을 가진 유부녀였다. 로셀리니는 부인과 별거 중인 유부남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당대의 할리우드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용서하지 않았다. 미국 개신교단과 의회가 모두 나서서 그녀를 비난했다. 그녀가 로셀리니를 떠나지 않는다면 어떤 할리우드 스튜디오도 그녀를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사랑을 선택했다. 가족과 할리우드를 버리고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그리고 로셀리니와 몇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가족도 꾸렸다. 아이도 낳았다. 그 아이 중 하나가 이후에 여배우로 성장해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에 나왔던 이사벨라 로셀리니다.

사랑은 감정의 피라미드라기보다는 감정의 모래성 같은 것이다. 영원하지 않다. 버그만과 로셀리니의 사랑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스트롬볼리'와 '이탈리아 여행'처럼 함께 만든 영화들은 (당대에는) 비평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실패했다. 그러자 돈이 떨어졌다.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수 없는 버그만은 더 이상 재정 문제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빚더미에 시달리던 잉그리드 버그만은 온갖 비난에 맞서면서 다시 할리우드로 복귀했고, 1956년 '아나스타샤'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용서를 받았다. 재기까지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로셀리니와의 관계도 끝났다. 둘은 1958년에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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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롬볼리

나는 버그만이 로셀리니와 함께 만든 몇 편의 영화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들 중 하나라고 단언코 말할 수 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영화는 '스트롬볼리'다. 이 영화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은 2차대전 후 수용소를 떠나기 위해 젊은 이탈리아 남자와 억지 결혼을 한 리투아니아 여인 카린을 연기한다. 그녀는 수용소 탈출을 꿈꾸었지만 정작 남편과 도착한 그의 고향은 황폐한 화산섬 스트롬볼리였다. 수용소보다도 더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 주민들 역시 도시 출신인 카린이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며 증오한다. 결국 그녀는 섬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러자 스트롬볼리의 화산도 분화를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분노하는 화산 기슭에서 절망으로 쓰러진다. 지금 와서 보자면, 그것은 화산처럼 폭발하는 사랑 앞에서 마지막 결정을 앞둔 잉그리드 버그만의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버그만은 가족과 할리우드를 탈출하며 운명에 몸을 맡겼다. 사랑을 택했다. 그 사랑은 10여년의 희열과 고통을 동등하게 그녀에게 남겼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렇게 말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지를 걱정할 거였다면, 제가 살아온 것처럼 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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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잉그리드 버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