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듀나 Headshot

제발 그러지 좀 말자 | '캐롤'에 대한 두 가지 지적

게시됨: 업데이트됨:
DEFAULT
CGV아트하우스
인쇄

어제 '그책'에서 나온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소금의 값)]의 번역판을 샀다. 좋아하는 책이라 번역판을 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정작 읽는 동안 흥분이 픽 사라져버렸다. 걸리는 게 많은 책이다. 오늘은 그 중 두 가지만 지적하기로 하자.




1.

첫번째는 한국 번역의 오랜 숙제인 '반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 1번인 테레즈 벨리벳은 19살이다. 주인공 2번인 캐롤 에어드는 30대 초반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거의 띠동갑인 셈이다. 영어에서는 이들의 나이가 대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가는 고민을 한다. 존대와 반말을 어떻게 넣을 것인가.

이 책을 번역한 김미정은 제6장에서 캐롤이 테레즈의 나이를 묻는 장면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테레즈가 19살이라고 대답하자 캐롤은 "You're a child"라고 말하는데, 번역자는 이를 "애송이네"라고 번역한 뒤, 그 뒤 일방적으로 말을 놓는다. 한마디로 서열을 확인하고 반말을 시작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너무 한국적이라 한동안 얼이 빠졌다. 물론 불필요한 한국적 요소의 개입 때문에 번역 자체도 이상해져버렸다.

이 번역이 더 신경 쓰였던 건 얼마 전에 내가 이 소설을 각색한 토드 헤인즈의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자막에서 캐롤은 테레즈에게 끝까지 존대를 한다. 물론 존대 자체도 한국적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둘을 비교해본다면 영화 자막 쪽이 더 논리가 맞는다. 테레즈와 캐롤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편안한 관계는 아니다.

자막을 번역한 황석희는 트위터에서 자신의 선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난 대사의 반말과 존대에 민감한 편이다. 그건 이것이 대부분 양성 관계에 대한 한국식 편견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대사가 전형적으로 굳어지기 쉬운 번역물에서는 이런 편견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큰 그림으로 봤을 때 한국인들의 서열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의 일부이며 그것이 양성관계에 반영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캐롤]이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면서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6-02-01-1454305051-7725442-CZifcx5UAAIzZuR.jpg




2.

두번째는 책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이다.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것도 바로 이 부분인데, 따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캐롤] 속에 그려진 사랑을 여자 대 여자의 남사스러운 사랑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냥 어이가 없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이 사랑받고 유명한 이유는 이 작품이 두 인간의 사랑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두 여자의 사랑을 그렸고 그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성애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결코 '남사스러워서' 외면하다가 어쩔 수 없이 두 인간의 보편적인 무언가로 퉁치고 넘길 것이 아니다. [캐롤]은 여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들이 여자와 남자였거나 두 남자였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같은 날 있었던 이동진의 [캐롤] 라이브톡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나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뒤져보니 옮겨적은 부분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etc_entertainment2&no=3375976&page=1&search_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 생각이라고 하면서 울타리를 쳐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하필이면 그 사람이 여자(또는 남자)더라"라는 말이 얼마나 그 사람의 욕망을 무력화시키는 발언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무엇이 고정된 클리셰인지 먼저 알아야 하는데, 이건 정말 클리셰 중 클리셰다.

무엇보다 이것은 쓸데없는 해석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하필이면 그 사람이 여자(또는 남자)더라"가 먹힌다면 그건 그냥 주인공이 양성애자라는 말이다. 재미없게 들리지만 그렇다. 양성애자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캐롤]에선 테레즈가 양성애자라고 이야기가 더 깊어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소설과 영화에서는 모두 반대되는 단서들만 제공된다. 가장 노골적인 알리바이는 테레즈의 남자친구 리처드와 그냥 친구 남자인 대니이다. 동성애자 각본가, 동성애자 원작자, 동성애자 감독이 모여서 대놓고 "얘는 남자에게 그런 감정을 못 느껴!!!"라고 외치고 있는데, 굳이 불필요한 '양성애' 해석을 내놓을 필요가 있을까?

훌륭한 예술작품 안에서 보편성과 특별함은 조화를 이룬다. 보편성은 우리의 공감을 끌어내고, 특별함은 우리에게 다양성의 인식과 발견의 기쁨을 준다. 그리고 대부분 훌륭한 작품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 특별함이다. 엠마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가 모두의 공감을 사는 보편적이기만 한 사람이었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기억될 수 있을까?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이전부터 이해했고 공감했던 것만 받아들인다면 그 체험이 무슨 소용인가?

[캐롤]이 보편적인 로맨스인 건 맞다. 동성애건 이성애건, 훌륭한 로맨스 작품에는 모두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있다. 우린 결국 같은 호모 사피엔스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두 주인공에게서 1950년대 미국에서 살았던 여성 동성애자들이라는 사실을 지우고 '인간과 인간'만 남겨놓는 건 [안나 카레니나]에서 19세기, 제정 러시아, 이성애, 여성을 모두 지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제발 그러지 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