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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가에 대해서는 왜 '말'을 안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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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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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몇몇 트위터 이웃들로부터 자극을 받아 쓰고 있다. 그러니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분들에게 먼저 감사를. 사실 <택시운전사>가 개봉되었을 때 한 번 다루었어야 할 주제인데 타이밍을 놓쳤다. 그 주제는 영화에서 각본가의 위치이다.

요새는 예전만큼 자주 시사회에 가지는 않지만(시사회 상영 극장 시설 문제에 까다로워졌다), 그래도 남들에 비해 자주 가는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시사회 때 받은 보도자료를 보면 늘 궁금한 게 있다. 왜 충무로 사람들은 작가들을 언급하는 데에 이렇게 인색할까? 아무리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다고 해도, 각색을 한다고 해도,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원안이나 원래 각본을 쓴 작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도자료는 촬영, 편집, 미술은 다 다루면서 은근히 작가는 건너뛰는 경향이 강하다. 감독의 그림자 뒤에 각본가를 숨기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평하는 사람들도 그 작품을 온전히 감독의 영화라고 여기고 평가한다. 그게 일을 쉽게 만들긴 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단순하지 않은 걸 넘어 좀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각본가의 평생 프로젝트를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든 감독 이야기는 충무로가 아니더라도 흔하다.

김현석의 <아이 캔 스피크>를 보자. 이 작품은 누가 봐도 김현석의 영화이다. 역사를 보는 방식, 유머를 풀어가는 방식 모두 익숙하다. 이 영화를 <와이엠시에이(YMCA) 야구단>, <스카우트>, <쎄시봉>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특히 선동열 스카우트 이야기를 하는 코미디인 척하다가 1980년 광주로 돌진하는 <스카우트>는 직접 비교대상이 된다.

하지만 <스카우트> 때와는 달리 <아이 캔 스피크>는 그의 오리지널 각본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씨네21> 인터뷰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다면 "영화사 시선의 강지연 대표가 기획하고 개발한 프로젝트로 씨제이(CJ)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이다. 조금 더 검색해보니 그 다음에 유승희 작가가 참여한 모양이고(유승희 작가는 재미만큼 충분한 관객을 만나지 못한 <달콤한 거짓말>의 작가이기도 하다. 나중에라도 체크해놓고 보시라), 어느 정도 지금 모양이 나온 뒤에 김현석에게 감독 제안이 갔으며 감독이 최종 각색을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김현석스러움은 다른 작가들로부터 나왔고 그 유사성 때문에 김현석에게 감독직이 간 것이다.

나 역시 <아이 캔 스피크>를 김현석의 작품으로 보았고 그건 충분히 일리있는 관점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김현석다운 것만큼 김현석답지 않은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여기엔 김현석 창작각본의 공통적인 특징이자 한계였던 '남자의 자기연민'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현석 영화치고는 의외로 오글거림을 각오하고 세게 밀어붙이는 영화이기도 한데, 이 역시 영화에 전작들과 상당히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김현석 필모그래피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기획자와 각본가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 캔 스피크>가 여성의 경험과 연대가 큰 의미를 차지하는 영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순서는 당연하기 짝이 없다. 물론 감독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의 영화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느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는지도 그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