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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영화'라는 이름에 드리워진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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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죽이기 전에는 일단 살려야 한다"고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이 말했던가? 내가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확한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졌지만 허사였고, 그러는 동안 원고를 쓰지 않는 핑계로 이 검색 작업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들켜버렸으니까. 하여간 이 격언의 의미는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희생자를 제대로 된 캐릭터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 규칙을 모두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첩혈쌍웅〉에서 죽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캐릭터를 준다면 영화가 쓸데없이 길어졌을 것이다. 작가는 자기가 만든 모든 사람에게 다 공평할 수는 없다. 여기엔 어쩔 수 없는 불공평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불공평함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박훈정의 〈브이아이피〉에 대한 소동을 따라가다 체스터턴이 했을 수도 있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저 격언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는 여자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개별 영화로 제한한다면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불쾌한 것은 이 영화에 나오는 얼마 되지 않는 여자들 중 이름이 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며, 이들 대부분은 시체 역이고 살아 숨쉬는 사람들은 곧 스크린에서 살해당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운이 좋아야 폭행 피해자가 되는 정도. 여기서 가장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소녀'라고 불리는 첫 희생자인데, 당연히 캐릭터는 없고 시작부터 관음의 대상, 그러니까 살인자들의 눈요기이며 결국 긴 강간, 고문, 살인 장면으로 끝이 난다. 〈브이아이피〉와 관련된 기사의 댓글 중 "나중에 엑기스나 다운받아 봐야지"라는 게 있었는데, 아마 그 댓글을 쓴 사람들이 생각하는 '엑기스'가 바로 이런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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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강간범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살인과 강간 장면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지가 않다.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영화인 〈양들의 침묵〉에도 선정적인 살인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살인 장면도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은 수백 가지다. 도입부에서 〈브이아이피〉는 최악의 길, 그러니까 포르노의 길을 택한다. 그 결과 영화는 최악의 방식으로 위선적이 된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감추는 대신 전면에 드러내놓고 다른 의도라고 변명하는 것이다. 박훈정이 각본을 쓴 〈악마를 보았다〉에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과 연결해 보면 이는 더 불쾌해진다. 그는 여성 캐릭터를 죽이는 장면은 아주 공들여 그리지만 정작 살인자가 단죄되는 장면은 싱겁고 카타르시스가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만큼 후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자가 분노 촉발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후자에 더 힘이 들어가야 할 텐데. 여기서 알리바이는 깨지고 만다.

박훈정과 주연배우들은 자신들이 만든 '남자영화'가 몰고 온 역풍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내용인 줄 알고 찍었고 완성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왔으면서도 그들이 만든 영화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게 '남자영화'의 독이다. 욕하고 구타하고 오열하고 분노하는 자신의 남자다운 멋에 취해 있으면 그 그림자에 무엇이 가려져 있는지 끝까지 보지 못한다. 이런 '알탕' 영화들이 부글거리는 한국 영화계가 위험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