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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성에서 탈출하라' 원더우먼의 정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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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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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은 대놓고 변태스러운 캐릭터다. 과장이나 비유가 아니다. 1940년대 오리지널 원더우먼은 탱크를 장난감처럼 집어던지는 슈퍼히어로였지만 옷은 핀업걸처럼 입었고 툭하면 악당에게 결박당했다. 후자는 원작자인 윌리엄 몰턴 마스턴의 취향 때문이었다. 그는 본디지 페티시가 있었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기 취향을 아이들도 보는 코믹스에 반영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 페미니즘적이고 심리학적인 핑계를 꼼꼼하게 달았는데, 머리 좋은 사람들의 장황한 핑계가 그렇듯 처음엔 좀 재미있지만 자꾸 나오니까 속아지지도 않고 좀 질린다. 변태 성향은 그냥 핑계 없이 변태 성향으로 남겨두는 게 더 건강한 것 같다.

원더우먼은 그래서 참 이중적이다. 4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자기 목표를 전혀 숨기지 않고 만들었던 페미니즘의 아이콘이지만 그만큼 선정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나는 이후에 나온 70년대 〈원더우먼〉 텔레비전 시리즈의 린다 카터에게 향수를 품고 있고 이에 대해 온갖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이 미스 월드 출신 배우의 섹시한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었는지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이를 커버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의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늘 실패로 돌아갔고 원더우먼은 다시 원래의 의상으로 돌아갔다. 수정된 첫 번째 의상이 나왔을 때는 심지어 70년대 미국 페미니스트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맹렬한 반대를 받았다. (물론 스타이넘은 의상이 덜 야해졌다고 불평한 건 아니었고 뒤의 이야기는 그보다 복잡하긴 하다.) 하여간 오래된 슈퍼히어로 의상들이 대부분 그렇듯, 원더우먼의 의상은 바꾸기도 그렇고, 바꾸지 않고 내버려두어도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이번 패티 젱킨스의 〈원더우먼〉을 기다리며 수많은 사람이 걱정했던 것도 그 선정성이었다. 이번에도 주연배우는 미인대회 출신이고 원더우먼의 복장은 색깔이 많이 죽고 조금 더 갑옷처럼 변형되긴 했어도 노출도는 여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용과 이미지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결국 〈원더우먼〉이 나왔는데, 결과는 단순 명쾌하면서도 놀랍다. 선정성이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말을 할 수 없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잘생긴 배우의 몸은 그 자체로 선정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그 선정성을 과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익숙한 옷을 입은 원더우먼은 끊임없이 달리고 점프하고 탱크를 박살내고 총알을 막고 올가미를 던지고 적군을 두들겨 패며 카메라는 육체 자체보다 그 육체를 통한 액션에 집중한다. 액션이 나오지 않을 때는 최대한 복장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원더우먼 복장은 늘 액션과 연결된다.

어떻게 보면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공법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인데, 사람들이 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여전사'나 '여성 슈퍼히어로'의 캐릭터를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데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런 비정상성이 정상의 위치를 차지했고 우린 그 때문에 지금까지 정상적인 다른 길이 있었다는 걸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다른 길을 찾은 것이 여성감독인 패티 젱킨스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원더우먼〉의 성공은 지금까지 남자들이 독점해왔던 블록버스터 장르에 좀더 많은 여성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