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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떠나가는 영화와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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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gregory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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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영화불평] 〈옥자〉를 둘러싼 칸의 논란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봉준호의 〈옥자〉가 영화제가 시작하기도 전에 논란에 휩싸였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옥자〉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이기 때문이다. 〈옥자〉와,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노아 바움백의 〈메이어로위츠 스토리〉는 칸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곧장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옥자〉의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극장에서 상영된다고 한다.) 프랑스극장협회(FNCF)는 이에 대해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넷플릭스 작품이 극장 상영을 원칙으로 하는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반발했고, 칸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내년에 열리는 제71회 칸 영화제부터는 프랑스 내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들만 경쟁 부문에 초청하도록 규정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극장용 영화의 경계가 흐려진 건 꽤 오래됐다. 잉마르 베리만의 〈파니와 알렉산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였고,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파일럿으로 제작되었다가 재촬영 뒤 극장용으로 재편집됐다. 극장용으로 만들어졌다가 텔레비전으로 직행한 영화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통로들은 늘어만 갔다. 이제 영화는 극장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휴대전화, 태블릿, 피시(PC) 속으로 몸을 뻗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프랑스극장협회의 반발은 고리타분해 보인다.

난 여전히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싶다. 텔레비전과 피시는 집중하기 어렵고 최상의 화질과 음질을 확보하려면 돈과 노력과 공간이 필요하다. 관객이 약간의 돈을 지급하면 영화 감상을 위한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극장의 역할이다. 이론상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세계에서 단순히 영화를 트는 것만으로 만족해선 곤란하다. 당연히 극장은 영화를 보여주는 서비스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 갖추어야 한다. 이 철학은 영화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영화관을 책임져야 올바른 영화 상영에 대한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에 대한 기대를 가진 관객들이 유지된다. 그런 경험을 가진 관객들이 줄어든다면 그 결과는 영화의 질적 퇴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영화관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최상의 상영 조건보다는 관리와 운영의 편의가 더 중요해졌고 모든 게 점점 유원지스러워지고 있다. 심지어 요새는 뻔뻔스럽게 떡볶이를 파는 체인점까지 생겼는데, 정말로 그걸 사들고 오는 관객이 내 옆자리에 앉을까봐 벌써부터 두렵다. 영화제를 가는 것도 이전만큼 즐겁지 않은데, 상영관의 전반적인 질적 하락 속에서 영화에 맞는 상영관을 선택하는 것은 거의 복권 당첨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년 부천영화제에서는 절대로 영화 상영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공간들에서 (송내어울마당 송안아트홀 같은 곳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영화를 틀었는데, 올해도 걱정이 된다.

나는 지금 21세기 중후반이 배경인 에스에프(SF)를 쓰고 있다. 사건 중 일부는 옛날 스페인 영화를 트는 영화관에서 일어난다. 쓰면서 과연 이게 설득력이 있는 설정인지 의심하고 있다. 극장 밖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매체의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언젠가 이들이 앞에서 영화관만이 제공해줄 수 있다고 말한 환경을 제공해줄 날이 올 것이다. 영화관 운영자들이 기초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관객들에게 떡볶이나 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기다리는 건 멸망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