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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일제강점기'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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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이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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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 일제강점기는 해방구였다. 한 번 여러분이 박정희 정권 시절 영화쟁이라고 상상해보라. '현대배경'의 한국인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일단 지리적으로 북쪽이 막혔으니 남한은 실질적으로 섬이 됐다. 그걸 무시한다고 해도 직접 맞닿아있는 나라인 중공, 소련 모두 공산국가다. 그걸 또 잊는다고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 사상적으로 획일화되었다. 실제 사람들이 어떻건, 영화 속에선 냉전시대와 독재가 만들어놓은 흑백 논리에서 남북 모두 자유롭지 못했다. 아, 그리고 6, 70년대 서울이 얼마나 못생긴 곳이었는지 기억하는가? 당시 영화를 보면 그 못생김에 숨이 막힌다.

일제강점기는 그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는 우회로와 같았다. 현대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면 주인공은 좁다란 남한땅에 갇혀 고만고만한 고민밖에 할 수 없었지만 일제 강점기가 배경이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다른 길이 뚫렸다. 물론 당시 조선 사람들 대부분은 비루하고 비굴하게 살았다. 하지만 이야기꾼이 마음만 먹는다면 주인공은 만주벌판에서 말을 달리고 러시아와 중국을 열차로 질주하고 다양한 사상을 가진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만나서 온갖 장르의 액션과 드라마를 펼칠 수 있었다. 대하 멜로, 서부극, 스파이물, 액션물, 무협, 전쟁... 다 가능했다. 만주 벌판까지 가는 건 당연히 불가능해서 대부분 한강 고수부지로 만족해야했지만 중요한 건 한강 고수부지에서 대륙을 보는 상상력과 기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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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가 배경인 영화 <아가씨>.© 씨제이이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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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가 배경인 영화 <밀정>.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일제강점기 영화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비교한다면 요새 할리우드에서 코믹북 원작 슈퍼히어로 영화가 늘어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숫자가 아닌 비율을 따진다면 일제강점기 영화 쪽이 압도적이다. 특히 올해는 일제강점기 시절 영화가 걸리지 않았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동주> 다음엔 <해어화>가 있었고 <해어화> 다음엔 <아가씨>가 있었고 <아가씨> 다음엔 <덕혜옹주>가 있었고 <덕혜옹주> 다음엔 <밀정>이 있었고....

지금의 일제강점기 영화는 6, 70년대와 어떻게 다른가? 의외로 그렇게 다른 게 없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분명하게 드러난 주제들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을 포함하는 공통된 정서는 현실로부터의 (그리고 아마도 허구의 세계를 향한) 도피이다. 식민지인이었지만 동시에 세계인일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 백성들이 따르는 예쁜 공주님에 대한 판타지, 이국적인 무대와 장르에 대한 갈망. 이들 상당수는 번역되었다. 영국소설 <핑거스미스>를 번안한 <아가씨>도 그렇지만, 장 피에르 멜빌 식 캐릭터들을 히치콕 열차 안에 던져놓고 막판엔 브라이언 드 팔마 흉내로 흘러가는 <밀정>에서 의열단과 민족주의는 외국 영화나 소설에서 보았던 모험을 위한 핑계일 뿐이다. 물론 이런 영화들 중 상당수는 핑계만 생기면 조선 땅을 뜨거나 뜨려고 발버둥치고 주인공들은 대부분 탈주를 꿈꾸고 그러는 게 가능한 사람들이다. 상하이, 만주, 도쿄, 블라디보스톡, 하와이. 목적지는 어디라도 상관없다. 이러니 이 영화들이 내민 진지한 주제보다 <아가씨>의 숙희가 속으로 내뱉는 독백이 가장 솔직해보이고 또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한 밑천 잡아서 조선 땅 뜬다. 조금만 참자. 이 시골뜨기 종년들." 하긴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