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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를 보는 눈을 보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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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아가씨>를 칸영화제에서 먼저 본 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표현은 '메일 게이즈'(male gaze·남성의 시선)다. 이 영화의 동성애 베드신이 남성 시선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알 것 같다. 처음부터 박찬욱이 <캐롤>의 섹스신처럼 온화한 것을 찍을 거라고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그랬다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당연히 이 영화의 섹스신은 선정적이고 적나라할 것이다.

하지만 베드신에서 '메일 게이즈'란 무엇일까? 이성애 베드신이라면 어떻게든 방정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남성 시선에 갇힌 영화라면 아마 남자 쪽에 감정이입할 것이고 여자의 육체를 대상화할 것이다. 공식을 세우기 쉽기 때문에 보정을 하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가씨>처럼 여성 동성애를 다룬 영화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아마 많은 이성애자 남성 관객들이 이 베드신에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이들을 모두 남성 시선에 갇혔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극단적인 예를 드는 건 어렵지 않다. <간신>에 나오는 여성 동성애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의 성행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탕한 왕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공연되었고 당사자인 두 여자의 욕망은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분명한 경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섹스신이 좀더 관계중심적이고 선정성보다는 두 캐릭터의 화학반응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남성 시선'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몰아붙이면 오히려 여성 관객들과 예술가의 가능성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선정성은 남자들만의 독점물인가? 퍼트리샤 로지마의 <밤이 기울면>처럼 여성 감독이 만든 동성애 영화의 베드신에 반영된 강한 쾌락주의는 남성 감독이 만든 영화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만약 이들을 놓고 익명 테스트를 하면 관객들은 여성 감독의 영화를 완벽하게 가려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아가씨>의 원작인 <핑거스미스>는 여성작가 세라 워터스의 작품이며 이 소설에 반영된 욕망은 전적으로 여성의 것이다.

물론 워터스의 소설과 박찬욱의 영화는 같지 않다. 워터스가 1차 당사자의 입장에서 쓴 묘사가 이성애자인 영화쟁이들의 각색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의미를 갖고 다른 모양이 되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칸에 간 똑똑한 사람들이 '남성의 시선'이란 단어를 이유 없이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칸에 간 모 여성 트위터 사용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읽은 적이 있다. "저 많은 남자 비평가들이 <아가씨>의 '남성의 시선'에 대해 불평하는 걸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이 '남성의 시선'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쓰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영화를 직접 봐야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박찬욱이 <핑거스미스>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면서 섹스 이외의 것에도 공을 들였길 바랄 뿐이다. 섹스가 동성애의 전부가 아니고 세라 워터스의 원작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다른 것들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루었기 때문이니.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