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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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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나에 대해서 착각하는 것이 바로 부모님에 대한 커밍아웃 과정이 매우 순탄했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2011년 3월에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고, 2013년 5월에 공개 결혼식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불과 이 년만에 이 모든 걸 하려면 부모님이 매우 생각이 열려 있고, 심지어 처음부터 지지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보수적인 지역에서 자랐고, 부모님 역시 지극히 일반적인 경상도 출신의 평범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셨다. 부모님은 당연히 동성애나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셨다. 동성애자는 외국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다만 운이 좋게도 나의 부모님은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다. 실제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 내에는 불화가 거의 없었다. 가족 간에 솔직한 대화를 많이 했고,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가정적인 아버지와 늘 헌신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나는 비교적 평온하게 자랐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가족 분위기 속에서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만약 가족 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더라면 많은 성소수자처럼 성인이 된 이후에 커밍아웃하지 않고 가족들과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거리를 두었겠지만 나는 가족 간의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 삶에서 가족은 굉장히 큰 정신적 뿌리이고 지지 기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단 한 번도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죄나 불효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편견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는 역사적으로 늘 일정 비율로 존재해왔으므로 가족들에게 올바른 사실을 전달하고 편견을 깨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내가 숨어 살며 가족들과 멀어질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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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는 것은 매우 두렵고 주저되는 일이었다. 커밍아웃하는 순간 그때까지의 유대 관계마저 사라지고, 다시는 부모님을 못 뵈지 않을까 두려웠다.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며 나보다 먼저 커밍아웃한 형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또 형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 커밍아웃할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마음에 그런 확신이 들었다. 바로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들이 하게 될 성소수자에 대한 그 어떤 질문이나 왜곡된 생각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흔들림 없이 차분히 이성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는 바로 그 확신. 아마도 이십 대 초반부터 '친구사이' 활동을 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고 성소수자로서의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긴 시간을 거치면서 나의 자아가 완성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이제 성인으로서 진정하게 알을 깨고 나오는 단계를 밟아야 했다. 바로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는 단계 말이다.

그런 만큼 부모님께 커밍아웃할 때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머니나 아버지 어느 한쪽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양친이 모두 한 자리에 계시고, 주변에 나를 포함한 우리 세 명만 있어야 하며, 식당 같은 곳이 아니라 반드시 집 안이어야 했다. 그리고 두 분의 건강 상태가 좋고 다른 큰 걱정거리가 없어야 했다. 즉, 부모님 주변에 신경 써야 할 요소가 없고, 오로지 이것만 깊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는 커밍아웃을 했다. 또한 지나치게 감정이 올라올 것을 대비해서 가능한 한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몇 가지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한 후 자리를 비워 부모님 두 분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열차 예약까지 마쳤다. 마지막으로 고민하는 시간 동안 참고하실 수 있게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담긴 책 한 권을 준비했다.

이렇게 준비를 철저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백 번, 아니 만 번의 망설임 끝에 겨우 부모님께 커밍아웃했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처음에 부모님 반응은 매우 실망한 듯 감정적으로 격렬하셨지만, 내가 일단 자리를 비우고 두 분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자 치열히 고민하셨다. 그리고 그 어떠한 경우라도 내가 당신들이 사랑하는 자식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시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등을 돌리지 않으셨다. 여전히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어머니가 그날 보내주셨던 문자를 받은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또 나를 열차 역으로 배웅해주며 자신한테만 이야기하지 몸이 아픈 어머니한테까지 왜 이야기했냐며 염려하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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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광수와 화니 이야기>(김조광수, 김승환 저, 시대의창)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