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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Headshot

마흔 살 피터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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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생물학적 남성(이성애자 남성, 동성애자 남성 등)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애인이나 배우자를 고를 때 '미모'를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의 미모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나의 배우자인 김조광수 감독을 처음 만난 건 2005년 2월 '친구사이' 사무실에서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광수 형은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 아니라 '친구사이' 형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름도 본명이 아닌 '피터팬'이라는 자신과 딱 어울리는 닉네임을 사용했고, 그 누구보다 발랄하고 유쾌한 형이었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 광수 형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첫 만남에서 초록색 빵모자에 보라색 잠바, 은색 스키니 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당시 게이들 사이에서조차 굉장히 파격적인 의상이었기 때문에 소심한 게이었던 내가 가까이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두 번째 보았을 때 광수 형은 매우 얌전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한때 그의 별명이었다는 '오십 미터 장국영'처럼 장국영을 연상시켰다. 퀴어 영화 <패왕별희>에서 그가 분한 '데이'라는 역할에 매료되어 게이 커뮤니티에서 '데이'라는 닉네임을 쓸 만큼 장국영 팬인 나에게 그런 그의 외모는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나는 장국영을 연상시키는 그의 외모와 발랄함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인연이었는지 그 역시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친구사이'에서 주최하는 행사나 엠티에서 꼭 내 근처에 머물며 눈에 띄려고 하는 그의 적극적인 모습이 귀여웠다. 그렇게 서로 설레는 감정은 연인의 감정으로 발전했다.

서로 사귀기로 결정한 후부터 주말마다 열심히 데이트를 했다. 그는 지방 출신인 나를 위해서 과거에 자신은 이미 여러 번 가본 적 있는 서울의 명소들을 전혀 지겨워하지 않으며 안내했다. 또 이미 여러 번 가본 맛집에도 나를 데리고 다니며 내가 서울을 구석구석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사귄 지 백 일이 된 날 우리는 제주도로 단둘이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내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여행 방식, 바로 일명 '호텔 로비 투어' 형식으로 제주도를 안내했다. 광수 형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어려워 전세 오백만 원에 월세 삼십만 원짜리 옥탑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저렴한 숙소에 머물렀다. 대신 처음 함께 간 여행인 만큼 식사며, 부대시설 이용 등은 꼭 유명 호텔에서 하는 신기한 여행을 했다. 심지어 나는 호텔 로비에 있는 피아노를 어설픈 실력으로 살짝 연주하고 광수 형은 사진을 찍는 용감한 행동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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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 형과 함께한 데이트는 늘 즐거웠다. 그동안의 연애와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자기 친구나 지인에게 나를 당당하게 애인으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대다수 지인들은 광수 형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연인이라고 소개받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늘 그냥 친한 친구, 아끼는 동생 등으로만 소개받다가 정식으로 관계를 인정받고 함께 노는 자리는 마음이 편할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즐거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영화인을 알게 되었다. 또...... 광수 형의 나이도 알게 되었다.

소개받은 광수 형의 친구들 가운데 꽤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광수 형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광수 형의 나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게이커뮤니티에 '데뷔'하던 2004, 5년만 하더라도 게이들끼리 오랜 시간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서로의 이름이나 나이 같은 인적 사항을 물어보는 것이 실례였다. 누군가가 아웃팅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상대방의 나이나 인적 사항을 대충 알았고, 나 역시 광수 형의 나이를 외모에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했다. 삼십 대 초반일 것이라고 생각한 형이 알고 보니 나보다 무려 열아홉 살이 많은 마흔 살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상당히 놀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당시 연애하며 쌓아온 감정을 무너뜨릴 만큼 영향을 주진 않았다. 단순히 나이 차이가 예상보다 많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지기에는 그가 매력적이었고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기 때문에 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감정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관계는 연애에서 동반자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 이 글은 <광수와 화니 이야기>(김조광수 김승환 저, 시대의창)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