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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둔 내 동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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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형아. 얼마 전, 네 수능을 앞두고 우리 다들 모였었잖아. 외국인 친구들에게 내 동생 '브라더'가 이번에 수능을 봐서 같이 밥 먹으러 간다고 했더니 다들 그러더라. 너 형제 없잖아?

그래서 나는 "이모가 낳은 브라더야" 와 같은 어딘가 콩가루 냄새가 나는 이상한 말을 하고야 말았어. 그냥 커즌이라고 하면 되는데 그래도 왠지 우리가 그냥 커즌은 아닌 것 같더라.

똥기저귀 갈아가며 돌보았다고 하면 오바, 업어 키웠다고 하면 그야말로 개오바가 되겠지만 한 집에서 살며 똥기저귀도 갈아줘 봤고 업어도 봤던 네가 어느새 커서 수능을 본다니. 그 날 식사자리에 모였던 왕형, 욱이형도 모두 비슷한 감정이었을 거야. 준빵이 수능을 본다니 우리가 안 늙을 수가 있겠어? 10년 전 다 같이 캠핑을 갔을 때 내가 볼일을 보고 밤중이 되어서야 혼자 캠핑장에 도착하자, 우리 누나 밥 줘야 한다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열 살의 네가 이제 곧 성인이 된다니.

그 날 그 식사 자리에서 누나는 어떤 의식 같은 걸 떠올렸어. 내가 2007년에 수능을 보았을 때, 그때도 욱이형이랑 왕형은 그 자리에 있었거든. 욱이형은 군대에 있었을 때인데 수능 전날 밤(군인이 어떻게 그 시간에 전화를 했지?)에 응원 전화가 왔었어. 왕형도 무언가 응원의 메시지를 줬었지. 사실 왕형의 역할은 그 이후에 더 의미가 있었는데, 누나가 수능을 망치고 집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눈물 바람을 해대니 밖으로 불러내서 소주를 사주며 그러더라.

"니가 수능을 잘 본다고 우리한테 무슨 슈퍼 정소담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수능을 망친다고 우리한테 X밥 정소담이 되는 것도 아니야."

아마 왕형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그 한마디는 빈속에 털어 넣은 내 인생 첫 소주보다 더 뜨거웠었다.

그리고 그게 어떤 꾸며낸 위로의 문장 같은 게 아님을 이번에 알았어. 정말로 그렇거든.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너의 수능 성적 같은 것에는 정말이지 큰 관심이 없어. 그게 아무것도 아닌 걸 우리는 알게 되었거든.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기보다는, 우리 모두 수능이 전부인 줄 알았던 시기를 다 지나왔고,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만. 인생은 언제나 우릴 위해 더 주옥같이 험난한 일들을 준비해두고 있는 탓에, 수능과 대학 입시 따위의 흥망은 어차피 이내 놀라우리만치 작은 문제가 되어버릴 거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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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가 관심 있는 건 너의 마음이야. 수능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 미래에 대한 걱정들. 그로 인한 것일까 어쩐지 어두워보이던 너의 얼굴. 혹시나 수능의 결과에 따라 네가 겪을 과정들이 너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참으로 걱정이 된단다. 오두방정으로 널 웃기려던 둘째 이모한테 "쟤 왜 저래?"하던 세 살의 너, 현민이형을 깨우는 외숙모의 말을 흉내 내며 "이 새끼야! 일어나! 벌써 여덟 시야!" 하던 네 살의 너, 새 청바지를 입혀놨더니 거울 앞에 가서 짝다리를 짚은 채 주머니에 손을 꽂고 똥폼을 잡아 우리를 웃기던 다섯 살의 너. 그 아기가 행여나 앞으로 좌절하고 절망할 일이 너무 많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런 것들이 못내 불안하고 안쓰럽단다.

그러니 그날의 식사는, 사실 너의 '수능 대박 기원'이 아니라 그냥 그런 의식이었어. 수능을 잘 보아야 한다는 파이팅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진짜 어떤 대박을 염원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어. 그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의식. 왕형이 누나한테 해줬던, 욱이형이 누나한테 해줬던, 몇 년 더 일찍 태어나 몇 가지를 먼저 경험해 본 사람이 몇 년 늦게 태어난 사람에게 해주는 그런 의식.

네 수능이 끝나고 나면, 니가 마실 첫 번째 소주를 사주기 위해 우리는 또 모일 거고, 그 자리에 모일 우리 중 누구도 너의 수능 점수 같은 것에는 관심조차 없을 거야. 네가 드디어 그 긴 과정을 마쳤다는 것에 관심이 있겠지. 드디어 끝냈구나, 하는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벅차겠지.

수능 시험이란 건 이 나라에서는 성인식과도 같은 의식이더라. 어떤 시대나 어떤 문화권에서는, 특히 원시의 사회에서는 들소를 잡아온다든가 맹수와 맞서 싸운다든가 혼자 동굴에서 하루를 보낸다든가 하는 것이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가 된다고 하잖아. 대한민국에서는 수능이 얼추 그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수능은 대학 입시를 위해 보는 시험이지만, 그 시험을 보기까지의 시간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12년의 시간들은 사실 꼭 수능을 보기 위한 것만은 아니야. 새벽에 눈떠서 꾸역꾸역 학교에 가는 것, 입맛에 맞든 안 맞든 다 같이 모여 그저 평범한 급식을 먹는 것, 매 시기마다 시험을 보는 것, 좋으나 싫으나 담임이라는 것을 갖고 같은 학급 내의 친구들과 생활해야 한다는 것. 하나같이 결코 녹록지 않은 일들이지만, 지속되는 삶을 위해 또 생존을 위해 그게 다 꼭 필요한 것들이더라. 그래서 수능은 그 시험 자체보다는 준비과정에서의 인내와 결과에 대한 압박감을 견뎌내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어. 시험 자체는 그냥 그 긴 과정의 마지막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아.

수능을 못 보면 12년의 시간을 허송세월 한 것 같고 나태한 학창 시절을 보냈어도 운 좋게 성적이 '대박'이 나면 그걸로 다 된 것 같고. 나두 그런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살아보니 그게 정말 아니더라.

그러니까 그냥 마음 편히 보고 오면 돼. 누나가 국어 가르치는 강사랍시고 수업을 핑계로 몇 번 불러내긴 했는데, 왜 더 자주 만나지 못했는지, 왜 니 마음을 더 살피지 못했는지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

그래도, 맞은 문제를 두고도 "누나, 맞긴 했는데 사실 왜 맞았는지 모르겠어..." 하며 틀린 표시를 해두고 머리를 긁적이던 너의 정직함을 항상 기억할게. 해도 해도 어려운 문법 앞에서 졸린 눈을 부벼가며 몇 번이고 문제를 다시 풀던 너의 성실함을 기억할게. 누나가 쬐끔 더 살아보니까, 그런 정직함과 성실함을 가진 사람은 결국 잘못되지 않더라.

여기까지 묵묵히 온 네가 참 장하고 대견하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매년 수능 치러 가는 학생들을 보는데도 매번 마음이 이상하고, 올해는 특히 네가 수능을 본다니 어쩐지 묘한 기분 감출 길이 없네. 그래서 이렇게 장황한 말들을 늘어놓아보았어. 올해는 지진 때문에 수능 날짜가 미뤄졌다니, 수능 날 아침에는 비행기도 안 뜬다는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놀라운 일이니? 몇 년만 지나면, 아니 불과 내년만 되어도 우리 술 마실 때마다 그 이야기를 곱씹고 있을 거야.

의연히 잘 다녀와, 준형아. 수능을 잘 보든 못 보든 넌 그냥 항상 우리의 사랑스러운 막둥이 준빵이야. 형들이랑 누나가 항상 여기에 있을게.

2017. 11. 16.

원래 수능이 치러졌어야 하는 날의 새벽에,
누나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