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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참사를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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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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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의 청년이 전동차에 치어 죽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뜨거웠던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도 거의 사라지고 국민들도 잊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잊어서는 안 되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되씹어 봐야 한다. 똑같은 참사가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에서 일어났다. 구의역은 세 번째이다. "한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는 말이 그대로 맞은 셈이다. 즉, 구의역 사건은 예상되었던 사건을 방치했다는 점에서 아주 나쁜 일일 뿐 아니라, 그 본질이 한국 사회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구의역 사건의 본질을 자본 중시, 인간과 노동의 경시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은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꼼꼼히 생각해보면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먼저 표면적이긴 하지만 사건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서울메트로 사장은 자본과 반대쪽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분이었다. 감독관청의 수장도 인간중심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단체 출신이다. 이런 분들이 자본을 중시하고 자본의 논리만을 따랐을 것 같지는 않다. 다음으로 자본의 논리대로라면 스크린도어 수리업체 직원뿐 아니라 계속 적자가 나는 서울메트로의 사장이나 간부직원도 가능한 급여를 적게 주고 생산성이 높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서울메트로의 사장이나 간부직원은 대부분 퇴직관료와 정치권 출신으로 전문성이나 업무성과와 관계없이 1억 원이 넘는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만약 기업, 금융기관, 사회단체 등의 경력자들 중에서 받고 싶은 희망연봉을 경쟁시켜 서울메트로 사장을 공채한다면 경영능력이 훨씬 뛰어난 사람을 절반 이하의의 연봉으로도 얼마든지 뽑을 수 있다. 서울메트로 사장의 일은 위험하지도 크게 어렵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일은 아주 위험해서 가끔 전동차에 치어 죽을 수 있고, 너무 일이 많아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워야 한다. 이런 일에 주어져야 할 적정한 급여는 얼마일까? 자본의 논리로 보아서도 월 144만 원은 아닐 것이다.

한국은 편하고 안전한 일은 고액 연봉, 힘들고 위험한 일은 저임금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것은 자본의 논리나 시장의 논리 때문이 아니고, 힘 있는 사람들의 탐욕이 전혀 통제되지 않아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에서 힘 있는 사람들의 탐욕은 서울메트로 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성공한 정치인, 재벌과 임대사업자, 관료와 교수, 검사와 판사, 전문직 등에서부터 대기업 정규직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갖고 있는 힘을 자신의 이익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이들은 권력, 금력, 단결된 힘을 이용하여 법과 제도를 불공정하게 만들고 끼리끼리 이익을 챙겨 국민경제의 성과를 과다하게 가져간다. 이러다 보니 힘 있는 집단에 끼지 못한 다수 국민은 죽기 살기 식 경쟁에 내몰리고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도 저임금을 받고 할 수밖에 없다.

구의역 참사와 비슷한 사건이 고압선 위에서, 맨홀 속에서, 고층건물에서, 위험물저장탱크 안에서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자본의 논리, 돈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람은 문제해결 의지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거대한 논리 뒤로 숨으면 책임을 쉽게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 있는 사람들의 탐욕과 약자의 고통은 공산주의 국가에도 조선시대에도 아주 많았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 등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이들이 우선 자신의 탐욕을 줄이고 문제의 작은 부분이라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문제해결의 방향은 힘 있는 집단의 종류에 따라 달라야 한다.

정치인, 관료, 전문직 등 권력과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이익을 챙기는 집단은 오히려 경쟁을 확대하고 시장의 원리를 더 집어넣어야 탐욕을 줄일 수 있다. 한편 돈의 힘으로 탐욕을 키워가는 재벌이나 임대사업자와 같은 집단은 독과점방지, 징벌적배상제도, 정상적인 과세 등이 답이다. 답은 있지만 해결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문제 해결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지지 세력의 탐욕을 자제시킬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가 계속 이야기하여야 조그만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